유달산 끄트머리를 휘감듯 돌면 유달동, 만호동 해변과 만나게 된다. 목포를 제대로 알려면 이 길, 대반동 다음으로 이어지는 길을 그냥 지나치면 안된다. 꼭 내려서 유달산을 끼고 있는 유달동, 만호동, 남양동, 북교동, 대의동 골목으로 들어가 목포 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샅샅이 볼 필요가 있다. 이 일대는 그야말로 목포 전통문화의 보물이 숨겨져 있다. 유달산의 유명세도 유명세려니와 유달산 자락에 펼쳐진 '역사문화의 길' 걸어보지 않으면 목포의 진면목을 알 수가 없다.
우선 유달산을 보자. 유달산은 워낙 많이 알려진 산이라 한번쯤 가보지 않을 사람이 없지만 기존에 유달산 여행을 해봤더라도 테마별로 다시 돌아보면 그 의미가 남다를 것이다. 유달산에는 크게 4가지 테마가 있다. '기묘한 바위를 따라가는 기행', '누정에서 바라본 목포', '유달산에 스며있는 일본불교', '삼학도의 전설 무대'가 그것이다. 이 4가지 테마 이름에서도 느껴지듯이 목포 사람들은 낭만을 안다. 유달산에 대한 애정이 얼마나 깊으면 보는 각도에 따라 각기 다른 이름과 주제를 불어넣었을까.
--- 목포시 중에서
서남해안 일주도로는 없는 길을 뚫고 알려지지 않은 바닷길을 세상에 내놓으면서 남도의 지도와 풍물을 바꿔갈 것 같다. 특히 빙빙 돌아갔던 향화도와 도리포를 자동차로 1분 안에 뚝딱 건너게 되면 함평만은 영광, 신안에 둘러싸인 내해, 하나의 호수가 될 판이다. 그러면 도리포-향화도 연륙교에 서서 섬과 바다, 육지가 만들어낸 정말 환상적인 바다를 보게 되고 동그랗게 원을 그리며 해변드라이브 코스가 탄생하는 것이다.
육지 해변을 돌아 다리를 건너고 섬을 지나 다시 육지 바닷가로 돌아오는 길, 이곳이 아니면 경험할 수 없는 최상의 바닷가 여행이다. 얼마나 재미있겠는가. 다리 하나를 놓은 것에 불과한데 이렇게 멋진 자연공간이 탄생하다니.
영광 향화도-함평 손불 해변-함평 돌머리-무안 현경-해제-도리포-향화도를 돌면 중간에 둥둥 떠있는 대도, 소도와 무명의 섬들이 시계추처럼 중심을 잡아주고 갈매기는 가까워졌다 멀어지면서 작은 배들을 따라간다. 내해에서만 느낄 수 있는 인간 군상들의 다양한 어촌 삶, 개발의 손길이 미치지 않아 아직도 풋풋한 포구와 작은 항구, 긴 수건모자를 쓰고 등을 구부린 채 조개를 캐는 아낙들, 바닷빛에 검게 그을린 어부의 단단한 모습 등 바다사람과 바다생활의 편린이 다정다감하게 비칠 것이다.
--- 무안군 중에서
강진만 해안도로는 신전면에서 바로 도암면으로 이어진다. 813번 지방도로와 3번 군도에 보동마을, 귤동마을, 덕산마을, 덕동마을이 이어지는데 유명한 백력사와 다산초당이 이 마을들을 끼고 만덕산과 해안 사이에 펼쳐져 있다. 다산초당은 보동마을을 지나 귤동마을을 접어올라가면 된다. 유자나무가 많아서 귤동이라는데 지금 유자나무가 그렇게 많이 보이진 않는다. 이 귤동마을은 해남 윤씨가 가장 많이 살았던 동네, '다산초당'은 그 해남 윤씨 자손들이 천여 권의 장서를 보관하면서 공부를 했던 곳이다. 그런데 정약욕이 이 초당에 와서 1808년부터 1818년까지 10년간 살면서 초당에서 호를 따 '다산'이라 한 것이다. 원래 이 초당에 '다산'이란 이름을 붙인 것은 이 산에 야생차나무가 많기 때문이다. 지금도 다산초당 근처에는 야생차나무 고목이 많아 봄에는 야생차를 따려는 사람들이 몰려온다.
간혹 관광객들은 다산초당을 보러 왔다가 초당이 아닌 기와당이 있는 것을 보고 놀랜다. 초당은 오랫동안 방치해 놓아 무너져 폐가가 돼 버렸고 1958년 다산유적보존회가 복원한 것이 현재 모습이다. 본 건물을 빼고는 옛날 다산 정약용 시절 것들이 그대로 남아있다. 초당 초입의 축대, 솔방울을 지펴 차를 끓였던 다조, 초당 오른쪽에 있는 적송 한 그루, 연못과 비류폭포, 초당 옆의 약천, 바닷가의 돌을 주워 만든 연지석가단 등이 옛 모습 그대로다. 이 초당 안에는 추사 김정희가 쓴 '다산초당'과 '보정산방' 이라는 두 점의 현판이 그대로 걸려 있는데 추사 김정희와 다산 정약용의 절친함이 어느 정도였는지 엿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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