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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일본의 종교담론과 계보

근대 일본의 종교담론과 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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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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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16년 02월 25일
쪽수, 무게, 크기 488쪽 | 152*225*30mm
ISBN13 9788963574226
ISBN10 8963574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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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관련자료 보이기/감추기

저자 : 이소마에 준이치
시즈오카대학 문학부를 졸업한 후, 도쿄대학 대학원에서 종교학을 전공했다. 하버드대학, 런던대학, 취리히대학 등에서 객원교수를 지냈고, 일본여자대학을 거쳐 현재 국제일본문화연구센터 교수로 재직 중이다. 포스트구조주의 및 탈식민지주의를 기반으로 주체와 타자, 문체와 표현 행위의 의미를 묻는 작업을 진행하는 등 일본 종교학과 역사학의 분야에서 탁월한 업적을 남기고 있다.
최근에는 식민지조선에 대한 연구와 함께 인간의 불안과 구제에 대한 재해지 신앙론의 분야로까지 연구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주요 저서로 『近代日本の宗敎言說とその系譜』(2003), 『宗??念あるいは宗??の死』(2012), Religious
Discourse in Modern Japan: Religion, State, and Shinto(2013), 『종교와 식민지 근대』(공저, 2013), 『死者のざわめき 被災地信仰論』(2014) 등이 있다.
역자 : 제점숙
동서대학교 일본어학과를 졸업, 리쓰메이칸대학 대학원에서 역사학을 전공했다. 현재 동서대학교 일본어학과 조교수로 재직 중이다. 한국과 일본의 근대불교에 대해 연구를 진행해왔으며 최근에는 식민지조선과 일본제국을 아우르는 근대종교의 다양한 양상에 주목하고 있다.
공저로 『종교와 식민지 근대』(2013), 『한일종교문화 교류의 최전선』(2011)이 있으며, 주요 논문으로는 「식민지 조선과 불교-근대기 대처승 문제를 둘러싼 한일 불교계의 동향」(2014)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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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는 자명하게 여기는 존재가 아닌 어디까지나 근대서양에서 탄생한 역사적 인식양식에 불과할 뿐이다. 나아가 종교라는 개념이 어떻게 근대서양에서 산출되었는지 그 과정이 역사적 비판이라는 형태로 문제시 된다. 동시에 서양에서 시작된 개념이 비서양 사회를 분석함에 있어 적합한 것인가에 대한, 개념의 적절성의 음미와 재정의의 시도가 현실적으로 종교현상의 분석적 측면에서 요구받게 된다. 또한 종교라는 개념이 역사적 경위 안에서 창조된 것이라면, 그 담론을 창출하는 데 관여한 것이 당연 존재한다. 물론 이러한 개념은 개인 혹은 특정집단이 의도적으로 창출한 것이 아닌 기본적으로 인간 행위를 초월하여 시대와 사회 상황에 의해 창출된다. 그러나 현실 사회 안에서는 특정 개념이 구상적(具象的)인 형태로 결정화(結晶化)될 때, 직접적 추진자로서 중심적 역할을 하는 집단이 존재한다. 종교개념의 경우를 보면, 이신론(理神論)이나 신플라톤주의자, 낭만주의자 등이 그 선구자로 종교현상 인식을 유일한 작업으로 하는 종교학자가 마지막을 장식하게 된다. 러셀 T. 맥커천이 ?‘종교’ 카테고리를 둘러싼 최근의 논의?(McCutheon 1995)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종교’를 정의하고 구축하고 이론화시키는 것은 누구인가”라는 의미에서처럼 종교개념이라는 담론의 선구적 역할로서의 종교학 학문이 나아갈 방향, 그 가치규범과 방법을 검증할 필요가 있다. ---「종교개념 및 종교학 성립에 관한 연구현황」중에서

‘종교’라는 말은 원래 한역불전(漢譯佛典)의 조어(造語)에서 유래되었지만, 오늘날의 개념은 구미 ‘릴리젼(Religion)’이라는 말에서 그 출발을 보고 있다. 이 점에서 보자면 릴리젼의 번역어로서 종교는 오래전부터 존재한 언어가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막부(幕府)말 개국(開國)의 시작과 함께 일본은 서양의 문명세계 속으로 편성되어 갔고, 이 ‘종교’라는 말은 이와 동시에 일본 사회 속으로 정착하게 된 실로 근대적인 인식양식의 소산(所産)인 것이다. 이 장에서는 ‘릴리젼’이라는 말이 ‘종교’로서 일본에 정착하게 된 과정, 즉 막부 말부터 메이지(明治)시대 말까지의 시기를 초점에 맞추어 일본에서 종교적인 것을 보는 관점이 어떤 변화를 보였는지 고찰하고자 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종교개념을 둘러싼 고찰은 근대 일본인들이 종교라 부르는 인식방법, 즉 오늘날 당연하게 생각하는 일본인 스스로의 종교에 대한 관점을 되짚어 보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은 단순히 관념상의 문제로 결론내리는 것이 아닌,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종교를 둘러싼 정치·사회제도의 형성과정을 시야에 두고 고찰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지금까지 일본 근대사 분야를 비롯한 기독교사나 불교사 등에서 축적해 온 국가와 종교에 대한 정치·제도사적 연구성과를 바탕으로 한 고찰이 필요하다. 또 서양 세계와 부득이하게 관계해야만 했던 일본이 처한 상황을 중심으로 릴리젼으로 대표되는 서양의 모든 종교적 개념이, 근대 일본의 종교 상황을 어떻게 범세계적인 서양 구조 속으로 편입시켰는지, 또한 이를 일본 사회가 어떻게 수용하고 분절시켜 나갔는지, 이러한 서양적 세계와 일본 사회와의 상호 관계를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근대 ‘종교’ 개념의 형성과정」중에서

이 장에서는 메이지시대의 대표적 철학자인 이노우에 데쓰지로(井上哲次?)가 도쿄제국대학(東京帝國大學)에서 강의한 「비교종교 및 동양철학(比較宗敎及東洋哲學)」에 대해 소개하고자 한다. 이노우에(1855-1944)는 메이지시대 독일철학을 도입한 연구자로, 또는 우치무라 칸죠 불경사건(?村鑑三不敬事件)에서 기독교를 배척한 자로, 이른바 국가주의적 성향이 강한 강단(講壇)철학자로 평가받아 왔다. 하지만 그의 이러한 학문은 철학 이전에 ‘절충주의(折衷主義)’의 영역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하여 정치적 문맥과는 별도로 학문의 장에서는 그다지 언급되질 못했다.
이노우에 학문을 시대적 주류와의 긴장관계 측면에서 살펴본다면, 많은 논자들이 지적한 바와 같이 그의 학문은 사상적 심오함이 결여되어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일본사회의 서구화 과정 속에 학문적 담론을 편성한 선구적인 인물로서 이노우에를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럴 경우, 그의 언어와 행동은 메이지시대 지식사회의 지배적 담론 그 자체라 할 수 있다. 특히 메이지 20년대부터 30년대까지는 도쿄제국대학 철학과의 첫 일본인 교수로 채용되었고, 또한 독일유학에서의 귀국은 사회제도적인 영향력도 물론 상당했지만 학문적으로 이노우에가 일본의 지식사회를 주도한 시기였다.
이 장에서는 학문적이고 역사적으로 귀중한 의미를 지닌 「비교종교 및 동양철학」 강의 내용을 복원함과 동시에 이노우에의 비교종교학의 구상을 그의 사상경력과 당시 일본의 사상동향 속에서 고찰하고자 한다. ---「메이지 20년대의 종교·철학론」중에서

오늘날 우리가 흔히 사용하고 있는 ‘종교’라는 용어는 어휘 면에서는 근세 이전에 성립된 불전(佛典)에서 그 기원을 보고 있다. 하지만, 에도막부(江?幕府)말 서양 개국 이래 전래된 ‘Religion’이라는 서구어의 번역어로서 성립되었다는 역사적 경위가 있음을 최근의 다양한 연구를 통해 인식하기 시작했다. 이 가운데 ‘ 불교’라는 용어 역시 ‘종교’의 범주에 속한 하나의 종교였다. 이른바 ‘종교’라는 번역어가 일본사회 지식으로 정착되기 시작한 메이지 10년대를 거쳐 근세까지 사용되어 왔던 ‘불법(佛法)’, ‘불도(佛道)’를 비롯한 ‘법(法)’, ‘도(道)’가 ‘교(敎)’로 바뀌어 성립된 근대적 호칭이었다. 여기서 말하는 근대란, 에도시대 때까지의 중국·조선·네덜란드로 국한된 형태의 교류와는 다른, 서양 열강의 제국주의 경쟁 속에 포섭되었던 시대를 일컫는다. 엄밀히 말하자면 기독교와 불교가 이른바 종(宗) ‘교(敎)’의 중핵을 이루게 되었고, 반면 신(神)‘도(道)’나 유교(儒敎) ―유(儒)‘학(學)’이라고도 불리는― 는 종교라는 범주에 전혀 부합되지 않는 도덕이라는 범주로, 종교라는 영역의 외부나 그 주변에 위치하게 되었다. 하지만 불교도 완전히 종교의 범주에 부합된 것만은 아니었다. 메이지 10년대에는 종교와 철학이라는 서로 다른 범주 틈새에서 스펜서(Herbert Spencer)의 종교진화론을 바탕으로, 기독교에 대한 우위 확립을 위해 불교의 범주를 정하려는 논의가 이미 진행되고 있었다. ---「다중화하는 근대불교」중에서

최근 컬트(Cult)라 불리는 종교집단이 일으킨 사건을 접할 때마다 종교 의미에 대한 의구심은 점점 높아져만 간다. 이때 저널리즘과 대중매체에 등장하여 이 알 수 없는 의미의 종교에 대해 설명하는 사람은 변호사나 저널리스트뿐이다. 종교를 직업으로 삼는 종교학자의 목소리는 어디에도 없다. 이러한 배경에는 종교학이란 어차피 종교를 옹호하는 학문에 지나지 않다는 세상 사람들의 실망이 내재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본디 종교학이라는 세상과 동떨어진 학문이 세상 사람들의 주목을 받기 시작하게 된 계기는, 1995년 발생한 옴 진리교 사건이 발생하고 난 뒤부터다. 그리고 이와 더불어 종교학이 세간의 냉소와 비난을 받게 된 계기 역시 이 사건 이후다.
종교학이 일본 사회에 깊숙이 관여했던 일은 지금까지 두 번 정도 있었다. 한번은 메이지(明治)·다이쇼(大正)기로 신교의 자유(信敎自由)를 둘러싼 논쟁이 있었던 시기, 다른 한 번은 패전(敗戰) 직후 신도지령(神道指令)이 내려졌던 시기이다.
전자는 종교학의 여명기, 후자는 종교학의 전환기에 해당된다. 이러한 시기에 핵심적 역할을 한 사람이 아네사키 마사하루(姉崎正治)와 기시모토 히데오(岸本英夫)라는 도쿄제국대학 교수이다. 이 장에서는 두 학자 중 종교학의 기초를 다진 아네사키 마사하루의 종교학에 대해 고찰하고자 한다. ---「종교학적 담론의 위상」중에서

일본 사회는 어떠한 근대를 경험했을까? 막부(幕府) 말 개국으로 서양의 자본주의와 제국주의 체제로 편입된 일본은 이러한 변화에 어떻게 대응했으며 어떠한 영향을 받았을까? 이 장에서는 아네사키 마사하루(姉崎正治)라는 일본의 전전(戰前)을 대표하는 지식인을 통해 근대 일본사회가 안고 있던 문제의 한 측면을 고찰하고자 한다.
도쿄제국대학에서 일본 최초로 종교학 강좌를 개설한 아네사키는 일본 종교학회 초대회장을 역임하는 등 근대 일본의 종교학 성립에 기여한 인물이다. 또한 귀족원위원과 종교제도조사회위원, 조선교육심의위원 등 정부 관련 직무를 담당했으며 국제학예협력위원과 태평양문제조사위원처럼 국제평화를 촉구하는 활동에도 참여했다. 나아가 성덕태자봉찬회(聖?太子奉讚會)와 귀일협회(?一協會) 간사 등을 역임하면서 지식계급을 중심으로 종교와 도덕운동에도 적극 관여했다.
이 장에서는 아네사키의 사상적 편력을 당시의 사회 상황 속에서 파악하고, 이를 통해 부상하는 근대라는 문제에 대해 고찰하고자 한다. 아래에서는 아네사키 생애를 크게 세 시기로 구분하여, ‘종교와 국가’, ‘서양체험과 일본표상’, ‘동서조화와 그 파탄’이라는 제목으로서 차례로 검토하겠다. ---「서구의 체험과 내셔널리즘」중에서

인문·사회과학과 마찬가지로 일본의 종교학 역시 자체적으로 역사를 검증하는 일에 그다지 성실한 학문은 아니었다. 이유 중 하나로, 종교학은 연구 대상인 종교 현상을 인식하기 위한 학문이었기에 그 인식의 방법을 규정하는 자기 담론의 장(場)에 대한 관심이 그다지 없었기 때문이다. 종교학의 경우, 전전에는 국가의 국가신도체제를 신교의 자유에 대한 침범이라는 관점에서 비판을 했었고, 전후에는 사회 전반적으로 진행되는 세속화에 대항하여 비합리적인 영역의 확보를 위해 강력하게 주장을 해 왔다. 이른바 일본 사회에 대해 비판적 담론으로 지위를 대부분 확보해 왔기 때문에, 자신의 언표 행위가 사회적 책임을 추궁당하는 그러한 상황으로 치닫는 경우가 별로 없었던 것이다.
일본에서는 ‘종교학’이라는 통일된 호칭이 있으나, 그 내면은 다양한 현상을 내포하면서 성립하고 있다. 더욱이 시대적 분위기로 인해 학문 경향의 쇠퇴 또는 여러 대학 간 학풍까지 고려한다면, 일본의 종교학 역시 종교의 고유성을 유지한다는 입장에서는 공통적 입장이지만, 하나로 잘 결합된 담론이라고는 할 수 없다. ---「‘일본 종교학’의 재고」중에서

오늘날 일본에서의 국가신도에 관한 논의 중 연구자들의 주된 관심은 ‘국가신도(國家神道)’라는 명칭의 사용유무뿐만 아니라 만약 이 명칭을 사용한다면 과연 어떤 정의를 내릴 것인가이다. 국가신도라는 용어가 일반적으로 사용하게 된 계기는 무라카미 시게요시(村上重良)라는 일본의 종교학자에 기인한다. 그에 따르면 국가신도란 실제로 종교와 다름없는 신사숭경(神社崇敬)을 일본정부가 비종교적 행위로 규정함으로써 국민을 대상으로 강요했던 국교제도(國敎制度)로, 이는 종교적인 관용으로 보장된 신앙의 자유를 침범하는 행위라고 언급했다. 전후(戰後) 야스쿠니신사(靖國神社)의 국영화나 창가학회(創?學會)의 정계진출이 회자되는 가운데, 정교분리(政敎分離)의 이념이 침해되는 것을 우려한 무라카미는 전전(戰前)의 국가신도체제가 신앙의 자유를 어떻게 침범했는지를 규명함으로써 전후 일본사회의 종교정책의 지침을 확립하고자 하였다.
이 장에서는 종교라는 서양적 개념이 일본에 정착하는 여러 과정 속에 국가신도라 불리는 국민교화의 체제가 성립할 수 있는 사회적 기반이 마련되었음을 염두에 두면서, 천황제 및 신사와의 관계, 그리고 그 성립 과정에 주목하여 필자의 견해를 간단히 논하고자 한다. ---「국가신도에 관한 각서(覺書)」중에서

오늘날 다나카 요시토(田中義能)는 이미 오래된 이름으로 들릴지도 모른다. 다나카는 일본 고쿠가쿠인대학(國學院大學)에서 교편을 잡으면서 도쿄제국대학(東京帝國大學)의 조교수로 제국대학에서 유일하게 신도 강의를 담당한 전전(戰前)의 대표적인 신도연구자 중의 한 사람이다. 무엇보다도 신도학이라는 학문을 제창한 근대 신도학의 시조로 추앙받아 마땅한 인물이다.
현재 신도학을 국가주의를 지향한 반동(反動)적인 학문으로 회고하는 일은 거의 드물다. 그러나 전전의 상황을 보다 넓게 주시하면, 다양한 분야에서 다수의 연구자가 관여했으며 신사비종교론(神社非宗敎論)이나 ‘신교(信敎)의 자유’ 등 정치상황과 밀접한 관련 하에 성립된 새로운 학문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실제 다나카의 학문형성 과정을 더듬어보면, 신도학은 국학이 아닌 국민도덕론이라는 철학계의 사상운동에 근원을 두고 있다는 점과, 이와 관련하여 주된 역할을 한 이들도 지방의 신관(神職)이나 세간의 지식인이 아닌 대학의 연구자들로 구축되었다는 점 등 우리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근대 신도학의 성립 배경을 엿볼 수 있다. 이 장에서는 신도학이 근대의 사상·정치 상황과 어떻게 상호 밀접한 관련성을 가지고 성립해갔는지에 대해 고찰한다. 이를 통해 전전 신도학계의 요직을 차지하면서도 오늘날 우리들로부터 잊혀져간 다나카 요시토의 학문이, 당시의 신도학이 내포하는 의미에 대한 구체적인 윤곽을 그리는 단서였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근대 신도학신도학의 성립」중에서

이 장에서는 과거 저자가 복원한 도쿄제국대학 신도연구실의 옛 장서를 근거로, 근세부터 근대까지의 이행 속에 신도를 둘러싸고 일어난 담론의 재편성 과정에 대해 고찰하고자 한다. 신도를 학문적으로 다듬는 작업은 메이지 30년대 후반부터 본격화되어 1921년(다이쇼10) 도쿄제국대학 신도연구실의 설치와, 1926년(다이쇼15) 도쿄제국대학을 중심으로 한 신도학회 결성으로 정점에 이르렀다. 이 점으로 미루어 볼 때 도쿄제국대학 신도연구실 장서에는 근대 신도학이 신도 각파의 사상과 신앙을 과거 어떻게 선택하여 재구성했는지 근대 신도학 특유의 고유한 논리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분석 대상은 도쿄제국대학 신도연구실 옛 장서 중에서도 일본 재래식으로 제본한 화장본(和?本)이다. 구입이 쉽고 저렴한 양장본과는 달리 화장본은 입수가 힘들어 수집하는 주체의 의도가 명확히 드러난다. 화장본을 포함한 동일 장서 전체에 대한 고찰은 향후 고쿠가쿠인대학(國學院大學)과 고카구간대학(皇學館大學)과 같은 신도계 대학장서와 함께 지속적인 연구가 이루어지기를 기대한다.
---「근세 신도신도에서 근대 신도학으로」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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