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조 우리 모두는 태어날 때부터 자유롭고, 존엄성과 권리에 있어서 평등하다. 우리 모두는 이성과 양심을 가졌으므로 서로에게 형제자매의 정신으로 행해야 한다.
제 2조 피부색, 성별, 종교, 언어, 국적, 그리고 가지고 있는 의견이나 신념 등이 다를지라도 우리는 모두 평등하다.
제 3조 우리는 누구나 생명을 존중받으며, 자유롭게 그리고 안전하게 살아갈 권리가 있다.
제 4조 어느 누구도 사람을 노예처럼 다루거나 물건처럼 사고 팔 수 없다.
제 5조 사람은 누구나 고문이나 가혹하거나 비인도적 이거나 모욕적인 처우 또는 형별을 받지 않는다.
제 6조 우리는 모두 어디서나 똑같이 법의 보호를 받으며 인간답게 살아간다.
제 7조 법은 누구에게나 평등해야 하며 차별적이어서는 안된다.
제 8조 우리는 누구나 기본적인 권리를 침해당했을 때 법의 도움을 구할 수 있다. 그리고 재판을 해서 그 권리를 되찾을 수 있다.
제 9조 사람은 정당한 법률에 의하지 않고는 제멋대로 잡히거나 갇히거나 그 나라에서 쫓겨나지 않는다.
제 10조 우리는 어느 누구를 편들지 않는 독립되고 편견없는 법원에서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갖는다.
제 11조 공정한 재판으로 유죄가 결정될 때까지는 어느 누구도 죄인이 아니다. 또한 자신을 변호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보장받아야 한다. 그리고 사람은 죄를 범했을 때에 현재 존재하는 법률에 따라서만 벌을 받는다. 나중에 만들어진 법률로는 처벌받지 않는다.
제 12조 나의 사생활, 가족, 집, 편지나 전화 등 통신에 대하여 아무도 함부로 간섭할 수 없다. 나의 명예와 신용에 상처 입지 않는다. 만약 그런 일이 있을 때는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다.
(이하 하략)
--- pp.106~109
'내 죽음을 헛되이 말라.'
1970년 11월 13일, 청계천 평화시장에서 온몸이 불꽃에 휩싸인 청년이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라고 외치며 쓰러졌다. 그의 품안에선 <근로기준법>이란 책이 불타고 있었다.
이 불꽃의 이름은 전.태.일. 계속되는 가난 속에서 '그늘과 그늘로 옮겨 다니면서' 자랐고, 죽는 날까지 무허가 판자촌에 살아야 했던 청년, 열여섯 살부터 평화시장 봉제공장의 노동자가 되어 허리도 펼 수 없는 다락방에서 하루 14시간씩 노동해야 했던 청년, 열다섯살 정도의 어린 여공들이 겪는 고통을 자신의 고통보다 더 마음 아파했던 이 청년은 왜 불꽃이 되었을까?
전태일이 노동하던 당시 어린 여공들은 햇빛도 들지 않는 좁은 다락방에서 주린 배를 움켜쥐고 쏟아쥐는 졸음을 이기렺고 뾰족한 바늘 끝으로 제 살을 찍어대며 손발이 마비되도록 일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렇게 일을 해도 하루 생계를 이어가기가 벅찬 상황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한 어린 미싱사가 일을 하다가 피를 토했다. 전태일이 돈을 구해 병원에 데려가 보니 폐병 3기였다. 그러나, 그 여공은 아무 보상도 받지 못하고 해고만 당했다.
전태일은 그 충격으로 가혹한 노동조건에 대해 아무 일도 못했던 자신이 바보였다고 생각하며 동료들과 '바보회'를 조직하였다. '바보회'는 근로기준법을 공부하였고, 평화시장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을 조사하는 일을 시작하였다. 1주일에 98시간 근무, 한달에 휴일은 이틀 뿐, 형식적인 건강진단, 아무런 치료로 제공되지 않는 현실은 '근로기준법'에 명시되어 있는 고용주의 의무조항을 무시하고 노동자들의 정당한 권리를 침해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전태일은 조사결과를 토대로 근로기준법의 준수를 요구하는 청원서와 근로조건 개선 진정서를 노동청에 제시하였고, 이 사실이 신문에 보도되면서 큰 사회적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노동청은 아무 대책도 마련하지 않고 경멸에 찬 웃음만을 되돌려주었다. 계속되는 집회 방해와 당국의 수수방관을 마냥 지켜보고만 있을 수 없었던 전태일과 동료들은 청게천 노동자들앞에서 근로기준법 화형식을 하기로 결정하였다.
그러나, 불덩이로 나타난 것은 '전태일 자신'이었다. 근로기준법의 준수를 외치며 한 청년이 불길에 힙싸인 채 거리로 뛰쳐나왔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라는 그의 절규는 '내 죽음을 헛되이 말라'는 소망으로 이어졌다. 병원으로 옮겨져 어머니 품에서 그가 남긴 마지막 말은 '어머니......배가 고파요.' 였다.
--- pp.72~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