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4부로 구성되어 있는 이 책 『모더니티의 지층들』은 우리가 ‘지금’ 살아가고 있는 현대사회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모더니티(근대성)로 다시 눈을 돌려야 한다는 주장으로 시작한다. 현대사회를 일컫는 ‘탈근대’라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는 흔히 현대사회와 근대사회 사이에 어떤 근본적인 단절과 불연속성을 상정하지만, 그것이 사실일지라 하더라도 지금의 현대사회를 이해하려면 ‘근대’라고 불리는 세계의 특징이 ‘현대’라고 불리는 우리 시대에 어떻게 지속되고 있는지, 또 어떻게 달라지고 있는지를 이해해야 하기 때문이다(이진경, 「근대사회와 모더니티」, 19쪽).
1) 합리성-계산가능성-통제가능성의 폭력
『모더니티의 지층들』의 편저자인 이진경의 설명에 따르면, “모더니티, 혹은 근대성이란 근대적 형태의 합리성을 뜻하고, 그것은 계산가능성을, 그리고 계산에 따른 통제가능성을 그 원리로 한다”(같은 글, 38쪽). 즉, 근대성의 대표적인 특징으로서의 합리성, 그 원리로서의 계산가능성과 통제가능성이 근대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세 축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 세 가지의 축을 구체화한 것은 뉴턴에 이르러 절정에 오른 과학혁명, 그리고 그 과학혁명을 가능케 했으며 그 성공에 도취되어 자연뿐만 아니라 모든 것을 수학화하고자 했던 ‘보편수학’(mathesis universalis)이었다.
사실 계산가능성과 통제가능성 자체는 어떤 일을 매우 쉽고 편하게 할 수 있도록 해준다는 점에서 환영받을 만한 것이다. 가령 “내가 지금 2억 원 하는 저 아파트를 산다면, 그걸 갚기 위해 한 달에 100만 원씩 20년을 모아야 원금을 갚을 수 있을 것이고 이자까지 포함하면 얼마를 더 갚아야 할 것이다. 이런 계산이 서면 그게 내 수입으로 가능한 일인지, 혹은 그렇게 반평생을 빚을 갚으며 살 것인지 등을 예측해서 ‘합리적으로’자신의 삶을 선택할 수 있다”.
그러나 계산하는 것은 그저 계산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계산에 따라 생각하고 행동할 것을 요구하는 명령문을 함축”하고 있으며, 좀더 근본적으로는 “계산될 수 없는 것들을 우리의 사고나 삶에서 배제하고 제거하거나, 아니면 계산가능한 것으로 단순화된 방식으로만 살아남게 만든다”(같은 글, 39~43쪽). 손해가 날 듯한 일은 하려 하지 않으며 거꾸로 이익이 날 듯한 일이라면 무리해서라도 하는 경우가 전자의 예라면, 계산할 수 없는 갯벌의 생명체나 숲 속 나무들의 가치를 경제적 이득과 비교해 계산하려 들거나 아예 파괴하고 부수는 경우는 후자의 예에 속한다.
2) 자본주의:자본의 욕망=자본가의 욕망=대중의 욕망
『모더니티의 지층들』의 글쓴이들은 이런 공동의 문제의식 아래에서 합리성-계산가능성-통제가능성으로 이어지는 모더니티의 폭력이 이른바 봉건사회를 어떻게 근대사회로 변모시켰는지(제2부), 그리고 근대인의 모습과 습속을 어떻게 뒤바꿔 놓았는지(제3부) 차례대로 살펴본다.
우선 합리성-계산가능성-통제가능성은 인간이 먹고사는 방식을 뒤바꿔놓았다. 즉, 자본이 지배하는 사회, 혹은 자본가들이 지배하는 사회라는 뜻의 ‘자본주의’를 탄생시켰다(이진경, 「자본주의, 혹은 자본의 공리계」). 그런데 자본주의는 끝없이 자기가치를 증식하려는 자본의 욕망이 곧 자본가의 욕망이 되며, 그런 자본가의 욕망이 대중의 욕망이 되는 사회이기도 하다(“이윤을 추구하는 억누를 수 없는 정열, 금에 대한 거룩한 갈망”!).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해졌을까?
이진경은 들뢰즈와 가타리의 초코드화(overcoding)라는 개념을 빌려 이를 설명한다. 원래 봉건제에서는 사회를 구성하는 각각의 요소들, 즉 노동, 재산(부), 활동의 흐름에 일련의 규칙을 부과하는, 서로 통분불가능한 일련의 상이한 코드‘들’이 있었다. 가령 영주와 농민은 ‘인간’이라는 하나의 범주 아래 묶일 수 없었으며, 그에 따라 해야 할 활동도, 활동하는 방식도 서로 달랐다. 그러나 자본주의는 이 일련의 상이한 코드들을 하나의 단일한 코드 아래 포섭한다. 이것이 바로 초코드화이다. 가령 어른이나 아이나, 내국인이나 외국인이나, 농촌이나 도시나, 취업자나 실업자나 동일하게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도 말라”는 노동의 규칙 아래 종속되는 것이 바로 자본주의인 것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이런 초코드화가 바로 합리성-계산가능성-통제가능성의 결과이다. 더 많은 이윤을 거둘수록 좋은 것이라는 합리적인(rational) 이유(reason)를 위해, 어떻게 해야 이윤을 더 많이 얻을 수 있는지를 계산(calculate)하고, 그에 저해되는 요소들을 포섭하거나 파괴하는 식으로 통제(control)해서 나온 결과가 바로 자본주의이기 때문이다. 이런 과정이 평화적으로 이뤄지지 않았으리라는 것은 쉽게 예상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이를 위해서는 기존의 코드들을 분쇄해야 했기 때문이다.
3) 근대사회로의 변모와 근대인의 등장
예컨대 봉건제에 존재했던 노동의 코드를 분쇄하기 위해 자본주의는 모든 인간들을 신분적 제약 조건에서 해방시켜 자유롭게 이동하며 자신의 노동력을 자유롭게 처분할 수 있는 인간으로 만들었으며(이진경, 「자본주의와 이동의 문제」), 저 옛날에는 노동과 구분됐던 활동조차 이윤창출을 위한 노동으로 변모시켰다(이수영, 「자본주의와 노동의 체제」). 또한 서로 등가화할 수 없는 ‘선물’의 증여라는 기존 공동체의 원리를 서로 등가화할 수 있는 ‘상품’의 교환이라는 원리로 탈바꿈시키기 위해 모든 재화를 화폐라는 단일한 척도로 계산하도록 만들었다(디디, 「화폐의 권력, 반화폐의 정치학」).
이뿐만이 아니다. 자본주의는 도시를 생산·유통·서비스의 중심지로 변모시키고자 기존의 도시공간을 교통로 위주로 재편하면서 기능적으로 분할했다(장보혜, 「근대도시의 형성과 그 원천들」). 이런 도시의 급속한 산업화로 인해 인구가 도시로 집중되어 건강과 위생이라는 문제가 발생하게 됐을 때에는 “사회를 보호해야 한다”라는 미명 아래 인구를 관리하고 조절하는 메커니즘을 창안했으며(최진호, 「폴리스의 정치학」), 노동자가 저축을 통해 주거문제를 직접 해결하게 만들고 집을 소유케 함으로써 그를 ‘가장’으로 만드는 가족주의 전략을 고안해냈다(이진경, 「근대적 주거공간의 계보학」). 또한 자본주의는 노동력의 안정적인 수급을 위해 ‘장래의 직업, 혹은 경력에 적합한 학업’이라는 관념을 만들어내 아이들을 거리에서 쫓아내 학교나 집으로 밀어넣었고, “아이들을 찾아서 학교의 교실을 향해, 아이의 방을 향해, 사회 도처의 시선이 감시와 통제를 멈추지 않는” 상황을 만들어냈다(오선민, 「역사 속의 어린이, 어린이의 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