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하를 평정하는 것은 사리사욕 때문이 아니다. '풍요롭고 편리하며 화려하고 안심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든다는 노부나가의 이상理想을 이어받을 사람이 나밖에 없다는 확신이 생겼던 것이다. 그리고 그때부터 갑자기 적이 늘어났다. 노부나가의 아들인 오다 노부카쓰, 그를 지원하는 도쿠가와 이에야스, 옛날부터 반란을 자주 일으켜온 기이 지방의 네고로 사람들과 사이카 사람들, 교토의 정권에 편입되는 것을 거부하는 시코쿠의 조소카베, 규슈의 시마즈(島津), 간토의 호조, 무사들에게 권력이 몰리는것을 두려워하는 사찰들, 예로부터 이어온 권위를 침범당하지 않으려는 귀족 등 많은 적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 p.12
전국시대라는 난세를 제압한 히데요시도 그 예외는 아니었다. 이 남자의 머릿속에도 조선도 '규슈보다 좀더 먼 나라' 였고 '간토보다 좀더 넓은 지역' 이었다. 히데요시는 조선이나 명나라의 말이 규슈나 오슈의 말과 같은 일본어의 사투리가 아니라 완전히 별종의 언어라는 것도 이해하고 있지 못했다. 완전한 무지와 무감각을 가진 채 20만 명의 대군을 조석으로 파견한 히데요시의 거만함은 비난을 받아도 마땅한 것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히데요시가 전쟁을 결심하도록 가만히 내버려둔 가신들의 죄도 무겁다고 해아 할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이든 해야 한다' 고 초조해 하는 도요토미 정권의 조직적 분위기였다. 거품 경기로 한참 공중에 떠다녔던 1980년대의 일본 기업들과 마찬가지로 사람을 챙겨야 한다는 압박감과, 싸우면 반드시 이긴다는 망상으로 사업의 확대와 다각화를 서둘러야 한다는 초조감이 전국시대를 뚫고 살아온 다이묘들의 가문에도 팽배해 있었던 것이다. "아무튼 히젠의 나고야까지 출동한다. 다들 나고야로 집결하도록!"
--- p.197
'사람들도 시대도 변해 버렸어. 그러니 이제는 도둑놈인 도에몬도 보고 싶어지는 거지.' 히데요시는 좁은 돌계단을 하나씩 하나씩 천천히 내려가면서 그런 생각을 하였다. 지하에 만들어진 돌 감옥은 차갑고 습했다. 천수각의 거대한 나무 골조와 큼직한 바위로 쌓아올린 돌 축대 틈새로 들어오는 가느다란 햇빛이 유일한 빛이었다. 그것에 의지해서 20단 정도의 높은 돌계단을 내려가자 튼튼한 창살이 보였다. 그리고 그로부터 3자 정도 떨어진 곳에 목화 솜이 두껍게 들어가 있는 푹신한 방석이 깔려 있었다. 쇠창살 속의 죄수가 아무리 손발을 뻗어도 히데요시의 몸에 닿을 수 없도록 신중하게 거리를 재어 깔아놓았을 것이 틀림없었다. "고에몬, 거기 있는가?" 히데요시는 돌계단을 다 내려오기 전에 창살 속을 향해서 그렇게 외쳤다. "오오, 히데요시냐? 네가 올 줄 알았다."
--- p.317
1568년 정월, 히데요시의 주변은 들끓는 듯한 열기로 뒤덮여 있었다. "올해야말로 도큐가와 이에야스를눌러 없애고, 호조 우지나오를 굴복시킨 다음 오우 지방 끝까지 평정하겠다." 이런 의욕이 가문 구석구석까지 가득 차 있었기 때문이다. 작년 가을에 하리마와 아와지에서 성주가 된 후쿠시마 마사노리와 가토 기요마사, 가토 요시아키, 와키사카 야스하루 등의 청년 다이묘들은 내일의 공로와 미래의 이상을 가슴에 안고 부하를 찾는 데 열중하였다. 전통을 자랑하던 수많은 다이묘들이 고향에서 쫓겨나고 영토를 빼앗긴 바람에 들에는 무용을 자랑하는 무사들이 넘쳐났으며, 거리에는 박학다식한 사람들이 헤매고 있었다. 청년들은 서로 경쟁이라도 하는 것처럼 전통 있는 가문 출신이나 화려한 경력을 가진 이들을 자신들 밑으로 끌어들였다. 오늘날로 말하자면, 고성장 기업에 근무하면서 자회사를 맡게된 삼십대 청년들 밑으로 대기업에서 부장이나 연구소장을 지낸 일류대학 출신의 엘리트들이 들어가는 꼴이었다. 청년들이 너무나 기뻐서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지나치다는 것을 알면서도 부하를 늘려나가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 pp.50~51
"우리들은 히데요시가 파놓은 함정에 걸린 것일지도 모른다. 히고에서 반란을 일으키게 해서 대군을 동원하여 토벌한 하음, 그 책임을 물어서 삿사 나리마사를 할복 자살하게 만들었잖은가? 반란이 일어나면 목숨이 위험하다는 걸 알고는 다이묘들마다 전전긍긍하고 있어. 그러는 한편으로 대불전 공사에 못과 정이 필요하다는 이유를 내세워 각 지방의 칼 사냥을 하는 것이지. 다이묘들은 필사적으로 칼을 모을 것이니, 이것으로 백성들도 하루아침에 무력하게 될 것 아닌가?"
--- p.129
"우리들은 히데요시가 파놓은 함정에 걸린 것일지도 모른다. 히고에서 반란을 일으키게 해서 대군을 동원하여 토벌한 하음, 그 책임을 물어서 삿사 나리마사를 할복 자살하게 만들었잖은가? 반란이 일어나면 목숨이 위험하다는 걸 알고는 다이묘들마다 전전긍긍하고 있어. 그러는 한편으로 대불전 공사에 못과 정이 필요하다는 이유를 내세워 각 지방의 칼 사냥을 하는 것이지. 다이묘들은 필사적으로 칼을 모을 것이니, 이것으로 백성들도 하루아침에 무력하게 될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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