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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조선의 옻칠쟁이다

나는 조선의 옻칠쟁이다

: 일본 속에 우뚝 선 한 장인의 외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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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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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02년 01월 31일
쪽수, 무게, 크기 352쪽 | 668g | 크기확인중
ISBN13 9788986687620
ISBN10 8986687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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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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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무렵 내 작업일지 한 귀퉁이에 다음과 같은 메모가 적혀있다.

'옻칠은 절대적으로 완벽을 요구한다. 옻칠은 디자인과 장식성 등 표현의 문제뿐만 아니라 옻칠이라는 소재의 완벽한 이해와 인식이 바탕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 편의를 위해 대충 넘어가거나 얕은 술수를 일체 받아들이지 않아야만 옻칠이 가진 다양한 특질을 최대한 끌어낼 수 있는 가능성이 생긴다.'
--- p.195
개관을 앞둔 메구로가조엔은 흡사 전장을 방불케 했다. 직원들은 퀭한 얼굴에 눈빛은 광채를 내뿜으며 자신과 처절하게 싸우고 있었다. 그때는 이미 고용된 직원으로서가 아니라 광기에 휩싸인 예술가들이었다. 그 모습은 아름답기까지 했다.

고개를 완전히 젖히고 옻칠을 하고 금을 붙이다보니 얼굴에 떨어지는 옻칠을 피할 도리가 없었다. 특히 생칠은 직접 피부에 닿으면 살갗이 벗겨질 정도로 독하다. 더구나 아무리 옻에 면역된 사람도 피곤이 쌓이면 견딜 재간이 없다. 우리 모두의 얼굴은 퉁퉁 부어올랐고 벗겨진 살에서는 진물이 흘렀다.

"자네 얼굴이 꼭 문둥이 같네."
"소장님은 어떻고요. 뭐 묻은 개가 뭐 묻은 개 나무라는 식이네요."
"나야 원래 보리문둥이 아닌가. 하하..."

우리는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낄낄거렸다. 허리가 끊어지고 목이 떨어져 나갈 것 같은 통증에다 얼굴은 생채기에 소금을 뿌린 것처럼 쓰렸지만 가끔 여유를 찾던 순간이었다.

어느 날 호소카와 도시로 사장을 비롯한 경영주들이 현장을 방문했다. 그들은 죽음을 무릅쓰고 사투를 벌이고 있는 직원들을 둘러보고는 혀를 내둘렀다. 비장한 분위기에 압도된 탓인지 '수고한다'는 말조차 섣불리 꺼내지 못했다. 사장이 내 팔을 잡아끌고는 신신당부했다.

"전 선생, 이러다가 사람들 다 죽이겠습니다. 오픈을 미루든가 아니면 부분적으로 오픈할 수도 있으니 제발 잠 좀 자면서 하십시오."

마음 한구석에서 찡한 감동이 밀려왔다. 그러나 나는 고맙다는 내색을 감추고 일부러 쌀쌀맞게 일축했다.

"그런 말을 하려거든 당장 돌아가십시오. 일에 방해만 될 뿐입니다. 우리가 결정한 일이니 죽든 살든 우리가 알아서 합니다. "

사실 메구로가조엔은 오래전부터 오픈 날짜가 잡혀 있었고 이미 수천 쌍의 결혼예약을 받아놓은 상태였다. 그런 상황에서 연기한다는 것은 비용의 손실뿐만 아니라 오랫동안 쌓아온 명성에 심각한 타격을 주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소카와 도시로 사장은 그것을 감수하겠다는 뜻을 전한 것이다 그는 진정 사람을 쓸 줄 아는 경영인이었다.

그 얘기를 듣고 나자 더더욱 고삐가 죄어졌다. 그러나 의식은 있었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켜켜이 쌓인 피로가 실핏줄을 타고 온몸 구석구석까지 퍼진 탓에 몸은 납덩이처럼 무거웠고 눈꺼풀은 천근만근으로 내려앉았다. 식사시간에는 밥이 어디로 들어가는지도 몰랐다. 어떤 직원은 숟가락을 입에 물고 고개를 떨구기도 했다.

여러 번 옻칠이 묻은 피부는 아예 새까맣게 타들어갔고 초읽기에 몰린 긴장감으로 내 마음도 숯덩이가 되어가고 있었다.
--- p.291~2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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