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미국의 전지구적인 기술첩보의 중심인 국가안보국(NSA)의 형성과 그 역할을 깊이 있게 다루고 있다. 저자는 이를 통해서 냉전시대 미국 외교의 가장 내밀한 얘기들을 드러내고 있다.
이 책의 저자 제임스 뱀포드는 1982년에 이미 『수수께끼의 궁전(The Puzzle Palace)』이라는 정평 있는 책을 쓴 바 있다. 1980년대 중반 유학시절 나는 지도교수가 담당한 '첩보와 비밀공작'이라는 수업을 통해서 뱀포드와 그 책을 접했다. 이번에 나온 『미 국가안보국 NSA』는 분량이나 내용의 깊이에서나 전작 『수수께끼의 궁전』을 크게 보강하고 발전시킨 책이다. 예컨대, 1967년 중동전쟁 발발의 진실과 이스라엘군에 의한 광범한 전쟁범죄를 감추기 위해, 이스라엘 근해에서 기술첩보활동을 하고 있던 미국 첩보선 Liberty호를 이스라엘 공군이 격침시킨 사태를 미국이 왜 스스로 극비로 취급했는가에 대해 보다 확정적인 분석을 제시한다. 또 1968년 북한 원산 앞바다에서 일어난 Pueblo호 피랍 사태 후에 미국 존슨 행정부가 계획했다가 결국은 포기한, 북한과의 전쟁을 유도하기 위한 작전 등에 관한 사실들을 밝히고 있다.
이 책의 저자는 그동안 새롭게 이루어진 미국 정부문서 비밀해제를 적극 활용하여, 일반인들이 충격적으로 받아들일 만한 냉전시대 미국외교의 감추어진 부분들을 공개하고 분석한다. 아이젠하워 행정부 말기 쿠바혁명 후에 미 군부가 기획했던 '노스우즈 작전](Operation Northwoods)'은 좋은 예다. 쿠바에 대한 전면 침공의 구실을 마련하기 위해, 미국 본토 내 워싱턴과 마이애미 등에서 대규모 테러공격을 감행하고 그 책임을 카스트로를 비롯한 공산주의자들에게 떠넘긴다는 구상이었다.
이러한 공작계획들은 단순히 미 군부 내의 골수 우파들에 의해서만 구상되고 지지되었던 일이 아니라 미 군부 전체의 광범한 적극적인, 또는 암묵적인 지지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뱀포드의 지적은 새삼스럽게 우리를 더욱 소스라치게 한다. 이것은, 예측 가능한 미래에 있어 여전히 유지될 것으로 보이는 미국의 전지구적 지배력의 물리적 토대인 미 군부 집단의 세계인식과 경영전략이 가진 내재적 위험성을 새삼 상기시켜준다. 그것은 세계평화에 대한 위협이기도 하며, 미국 민주주의의 내면적 취약성에 대한 끊임없는 경계를 요구하는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 책은 단순히 미국 기술첩보의 궁전이라 할 국가안보국 자체의 역사에 대한 서술을 뛰어넘는 의미를 갖는다. 국가안보국이 냉전의 한가운데에서 그 중추적 기능을 담당했기에, 냉전사 전체와 그 본질에 대한 진지한 질문을 던지게 한다. 냉전은 인간으로선 그 누구도 어떻게 할 수 없었던 초인적 역사현상이 아니라, 그 질서 속에서 기생하고 번성한 인간과 인간집단들의 계획적인 기만과 조작과 폐쇄적인 자기중심적 세계관이라는, 인간 자신의 함정들이 쌓아올린 인간의 바벨탑이었다. 뱀포드의 책은 적어도 나에게는 그러한 생각을 새삼 일깨워준다.
이 책은 미국 국가권력의 본질을 이해하는 하나의 빠트릴 수 없는 앵글을 제공하며, 냉전의 기원과 전개라는 지난 반세기 세계사의 내면을 들여다보고자 하는 사람들이 꼭 읽고 가슴으로도 느껴야 할 기록들을 담고 있다. 뱀포드는 성실한 관찰자인 동시에 미국민주주의의 내면을 우려의 눈초리로 들여다보는 나름의 철학을 가진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 이삼성 (가톨릭대 국제학부)
1952년 트루먼 대통령의 대통령령에 따라 미 국방부 소속 정보기관으로 발족, 통신감청을 통한 정보수집, 암호해독을 전문적으로 수행해 왔으며, 메릴랜드주 포트미드에 '크립토 시티(비밀의 도시)'로 불리는 본부를 두고 있다. 현역군인 및 민간인으로 구성된 3만8천여 명의 조직규모는 CIA의 2배에 달하며 예산, 영향력 면에서도 CIA를 훨씬 능가한다. 연방기구이면서도 대통령 등 극소수만 알고 있었으며 창설 30년 후에야 그 존재가 공개될 만큼 지금까지 철저히 비밀에 부쳐져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