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어도 난 거기 꼭 가보고 싶은데……." 세계 최대·최고의 고원인 티베트에서도 '세계의 지붕'이라고 불리는 서장. 히말라야와 에베레스트 같은 높은 산맥과 빙하로 이루어진 고원의 남쪽, 하늘과 가장 가까운 땅. 그런 서장을 산골에 붙박여 살아온 어머니가 대체 어떻게 아셨을까. 왜 그곳에 가고 싶다고 하셨을까. 도무지 그 연유를 알 수 없었다. 하늘과 맞닿은 그곳에서 가슴 한번 쫙 펴보고 싶으셨던 것일까. 하늘과 가장 가까운 땅이니 그곳에서 하늘로 가기 편하겠다 싶으셨던 것일까. 전생에 그곳과 어떤 인연이라도 있었던 것일까.
어쨌든 어머니는 계속해서 서장을 고집하셨다. 자신이 없었다. 아무래도 턱없는 일 같았고, 어머니의 건강이 걱정되는 것도 사실이었다. 내가 머뭇거리고 있는 사이 어머니는 더 재촉하지 않고 순한 아이 같은 눈빛으로 내 대답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눈을 뜨자마자 '그래, 어머니가 가보고 싶어 하시는데, 일단 갈 수 있는 데까지 가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대로 어머니를 실망시킬 수는 없었다. 어디까지나 어머니를 위한 여행인 만큼 어머니가 원하는 곳으로 가는 게 정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어머니, 세상구경 가실래요?" 중에서
"애비야 설렌다." "저도 그래요. 어머니를 모시고 세상구경을 떠난다고 생각하니 즐겁고 신나는데요?" 페달에 힘을 주자 자전거수레가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수레를 따라오며 손을 흔들며 어머니와 아들의 동행에 행운을 빌어주었다. 어머니에겐 어쩌면 이 첫 여행이 마지막 여행이 될지도 모르고, 또 어쩌면 지금 이 뒷모습이 어머니의 마지막 모습일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우리 모자를 전송하는 마을 사람들의 표정에서 읽을 수 있었다. 나 역시 생각했다. 어쩌면 그럴지도 모르겠다고…….
그렇게 아흔아홉 살의 어머니와 이른네 살 아들의 기나긴 여행은 시작되었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끝날지 아무도 모를 우리네 인생과도 같은 여정이.
--- "소풍을 가니까 곱게 차려입어야지" 중에서
"어머니, 오줌 싸셨어요?" "오줌은 무슨……. 나 안 쌌어." 나는 어머니를 나무라려는 게 아니라 새 옷을 꺼내드리려고 한 말이었다. 당연히 그러실 수 있는 연세이셨고,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기에 대수롭지 않게 한 말이었다. 그러나 그건 내 입장만 고려한 짧은 생각이었다. 어머니는 버럭 소리를 지르셨다. "나 오줌 안 쌌다는데도!" (중략)
"괜찮아요. 어머니 연세에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이에요." "나쁜 자식!" "어머니, 제가 나쁜 자식이에요?" "오줌을 안 쌌다는데도 쌌다고 하는 자식이 그럼 나쁜 자식이지, 좋은 자식이냐?" "예, 맞아요. 나쁜 자식이에요. 어머니는 오줌을 안 싸셨어요. 제가 잘못 알고서 그랬어요." 그로부터 또 하루 내내 어머니는 말이 없으셨다. 자전거 페달을 밟으며 어머니의 화를 풀어드리려 무수하게 말을 건넸지만 어머니는 마치 잠든 사람처럼 말이 없었다.
--- "나 오줌 안 쌌다는데도!" 중에서
"네가 한 일이 큰일인가 보다. 텔레비전에도 나오고 사람들이 이렇게 알아보는 걸 보면." 어머니는 우리가 텔레비전 뉴스에 나오고, 우리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더해가자 기뻐하셨다. 효자라는 말에 내가 부담스러워 고개를 못 들자 어머니는 말씀하셨다. "애비를 따라올 효자는 없지. 그 기자 눈이 똑바르다." 자식으로 부모를 위하는 것은 당연한 일인데 그걸 인정받는 세상이니 더 할 말이 없었다. 내가 여느 자식과 굳이 다른 것이 있다면 어머니께 세상구경을 시켜드리겠다고 수레를 끌고 길을 나선 것뿐인데…….
--- "세상의 화젯거리" 중에서
"에비야, 물을 더 부어!" 나는 더 이상의 군말 없이 물을 조금 더 붓는 시늉을 했다. 적당한 반죽이었지만, 물을 붓는 시늉을 해야만 어머니의 잔소리를 피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중략) 반죽을 밀기 위해 찾아낸 것은 신문지였다. 신문지를 땅에 깔고 일단 손으로 반죽을 최대한 눌러 넓힌 다음, 내가 마시던 술병을 꺼내 밀가루반죽을 밀기 시작했다. 궁하면 통한다더니 그 말이 꼭 맞았다. 그러나 욕심이 과했던지 밀가루 반죽을 좀 더 얇게 하려다가 신문지가 찢어지고 반죽에 흙이 묻어버렸다.
"에이, 안 먹는다!" "흙 묻은 데는 조금 떼어내면 돼요. 정말 안 잡수실 거예요?" 그래도 드시고 싶었던 칼국수였던지라 끝까지 뿌리치진 못하고 어머니는 계속 내가 하는 양을 지켜보고 계셨다. "너는 뭐든지 잘하는 줄 알았더니만, 그게 뭐냐? 재주가 메주다." "그럼 밥을 할까요?" 그러자 어머니는 돌아앉아 반대편 창문으로 말없이 시선을 돌렸다.
--- "흙 묻은 칼국수"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