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 주전부리
꽃샘추위가 한창이던 2011년 3월 초 저녁 무렵, 민주노동당 국회의원 강기갑과 소설가 공선옥이 안국동 헌법재판소 옆 골목 서해성의 집필실 겸, 사무실 겸, 거처에서 만났다. 강씨, 공씨 둘 다 서씨를 아는 사이고 두 사람은 초면이다. 서씨는 두 사람이 같은 농촌 출신이고 농민 자식들이라 '통'할 것이라 했다. 과연 두 사람의 대화는 서씨 바람대로 이어질 것인가. 먼저 온 공씨가 나중에 도착한 강씨를 맞으면서 강씨가 내놓은 주전부리로부터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강: 백문이 불여일견이라. 백견이 불여일식이라, 떡입니다.
공: 어디 길에서 팔던가요?
강: 어이, 참, 우리 집에서 한깁니다.
공: 집에서 만든 떡!
강: 예.
공: 옛날에 엄마한테, 엄마 떡해 묵자, 엄마 떡해 묵자 노래를 불렀어요. 밥해먹을 쌀도 없으면서 그랬죠. 떡은 명절 때나, 제사 때만 먹는 건데 속없이, 맨날 떡해묵자, 떡해묵자, 그러면 엄마가, 느그 엄마를 떡해묵어부러라, 후후.
강: 오죽 떡이 귀한 거였으면 자다가 떡얻어묵다는 말이 나왔겠습니까.
공: 하여간 오늘 의원님 만나서 그 귀한 떡을 먹네요.
강: 요새는 맘만 묵으면 얼마든지 사 묵는 기 떡입니다.
강씨가 떡을 먹다가 갑자기 죽염을 입에 털어 넣었다.
공: 뭘 잡수세요?
강: 죽염입니다. 내는 이렇게 죽염을 상시복용합니다.
공: 의원님은 주전부리가 소금이네요, 소금.
강씨는 이를 죽염으로 닦는다. 그리고 물로 헹구지 않고 그냥 삼켜버린다고. 실지로 시범을 보이는 강씨를 보며 공씨는 철없는 소녀마냥 깔깔 웃었다.
삶1 / 보이지 않는 걸 찍어야 진짜 사진
어렸을 적 공씨가 두 동생과 사진을 찍을 때 어머니는 세 딸 매무새를 고쳐주고 앵글 밖으로 나갔다. 떠돌이 사진가는 한 해에 한두 번씩 시골을 찾아오곤 했다. 단발머리 공씨가 엄마도 같이 찍자고 하자 공씨 어머니는 한 걸음 뒤로 물러나면서 너희들이나 얼른 찍으라며 딸들 쪽으로 손짓을 했다. 한 사람이 더 찍으면 사진 값이 더 나온다고 여긴 공씨 어머니였다. 흑백사진에는 세 딸과 어머니 두 손이 찍혀 있다.
삶2 / 내가 점 이야기 하나 해 줄게
내가 점 이야기 하나 해 줄게. 이리로 와봐. 얼굴에 있는 이 점 하나.
이걸 빼야 된다고 다들 그랬지. 들어봤을 게야. 눈물점이라고.
눈물 받아먹고 자라야 눈물점. 울면 점 커진다, 점 커진다.
누이가 놀리고, 마실 가면 동네 아줌마들 놀리고, 학교에서 선생님이
꾸중할 때 놀리고, 놀릴수록 더 자라는 점, 눈물점. 슬플수록 잘 크는 점,
배고파 울 때도 홀로 배부른 점, 눈물점.
어떤 뜸장이가 와서 이걸 없애 주겠다고 했지.
불붙은 쑥을 눈 밑에 올려놓고 점을 태웠어. 뜸이야. 뜸 들여야 뜸이지.
위로 타는 불이 뜨거운 기운을 내려 보내서 뜸을 들이지.
한 번 두 번 세 번 뜸을 떴다네. 날마다 떴다네. 뜸을 뜨면서 누워 있노라면
울던 날들이 더 자꾸 떠올라 또 눈물점이 자라지나 않을까. 저녁마다 뜸을 떴지.
점이 점점 줄어들어 반쯤 줄어들 때였지. 점이 울었어.
거울 속에서 점이 우는 소리. 양치질을 하면서 문득 우는 소리가 나서
고개를 들어보았을 때 점은 더 작아지고 있었지. 들어오는 복을 막아낸다던 점.
눈물점이 있으면 평생 울고 산다던 점. 오십 년을 같이 살아온 점.
점아, 점아 어디로 가니. 뜸장이는 모르지. 음악가도 몰라.
점이 우는 소리 듣지 못하지.
이리로 와봐. 내가 점 이야기 하나 해줄게.
가슴에 점 하나 콕 박아줄게. 눈물 먹고 자라는 눈물점 이야기.
‘그래서 뜸을 안 떴더니 다시 점이 살아나더라고!’
사람 / 사람, 사람을 묻다
“길에서 만난 사람들은 뭐라 불렀나요.”
“오토바이 맨.”
“머리칼 안 자르고 수염 길고, 도포자락 날리고 가노라면.”
“어, 예수 간다.”
“산에서 인연이 닿은 사람들은.”
“수사님!”
“들에서는.”
“농민, 천상 농민.”
“지금은?”
“마음으로는 이명박이를 위해서도 기도하면서 입으로는 욕하는 정치인.”
사천읍 노정산 개간 10년, 수도승 7년, 곡식농사 27년, 아스팔트 농사 23년, 정치농사 7년.
강씨의 뚝심은 삶에서 나온다. 그를 만나거든 때와 장소에 따라 원하는 사람을 불러낼지어다.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