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퍼 타운에 산다는 건 달나라에서 사는 거나 마찬가지다. 사방에 나 있는 침식된 도랑 때문에 온 마을이 울퉁불퉁, 벌거벗은 맨땅 천지였다. 지평선을 바라볼 때면 마치 구겨진 갈색 부대 자루를 보는 것만 같았다. 덤불은커녕 풀밭도 없었다. 집 사이사이마다 자라 풍경을 한결 푸근하게 해 주고, 집을 더 집처럼 보이게 해 주는 파릇파릇한 것이라고는 눈을 씻고 봐도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포스트 선생님은 왜 우리가 구경도 못 해 본 나무를 가르치지 못해 안달일까?
백 년 전 이곳에서 구리 채굴을 시작하면서 광부들이 나무를 죄다 써 버렸다. 제련 전에 광석을 가열하는 옥외 제련소에 연료를 공급하기 위해 나무를 베어 냈다. 굴뚝에서 나오는 연기는 산성비를 만들어 냈고 산성비 때문에 다른 식물들까지 다 죽어 버렸다.
이제는 그런 방법을 쓰지는 않지만 한 번 망가진 자연은 결코 되돌아오지 않았다.
그런데도 포스트 선생님은 우리더러 테네시 주를 대표하는 나무인 튜울립나무의 생김새를 아는 건 기본이고, 소나무와 참나무, 사사프라스, 단풍나무와 구분할 줄도 알아야 한다고 했다. 우리 눈엔 익숙할지라도 나무가 없는 건 정상이 아니라면서.
선생님은 프로젝터로 연달아 나무들을 보여 주었다. 굵은 갈색 몸통에다 꼭대기에 무성하게 나뭇잎이 달린 나무도 있고, 길고 가느다란 나뭇가지에 붓처럼 생긴 바늘잎이 달린 나무도 있었다. 차라리 우리 모두에게 친숙한 우주선이나 보여 줄 일이지. 교실 창문 밖으로 보이는 거라고는 동네 사람들이 부르는 말로 ‘레드 힐스’가 전부였다. 구리를 캐고 비엠엑스* 타기에 안성맞춤이라는 것만 빼면 하등 쓸모없는 땅이었다.
어차피 내겐 그런 비엠엑스도 없지만.
나의 첫 자전거는 싸구려였다. 흙길을 내달리고 푹 팬 도랑들을 하늘을 나는 새처럼 점프하며 넘어 다니다가 완전히 박살이 났다. 열 살 이후로는 자전거가 없었고, 설령 아직까지 남아 있다 해도 지금 내가 타기엔 너무 작았다. 나는 크리스마스 선물로 광산 회사 매점에 진열된 비엠엑스가 갖고 싶다고 틈만 나면 엄마의 옆구리를 찔렀다. 하지만 엄마는 너무 비싸고 위험해서 안 된다며 계속반대했는데, 사실 그건 터무니없는 얘기였다. 나한테 자전거가 있었다면, 8월의 그날 피란과 함께 걸어갈 일도 없었을 테고, 엘리 패거리와 마주쳐서 팔이 부러질 일도 없었을 테니까.
내 단짝 피란의 이름이 주석 광산 수호성인의 이름이라고 해서, 이 녀석이 혹시 천사가 아닐까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도리어 녀석 때문에 악의 구렁텅이에 빠지는 일이 잦았다. 그날 내가 철교를 건넌 것도 다 피란 때문이었다. 피란이 부추기지만 않았다면 난 애당초 거길 건널 생각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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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토끼 발을 문지르며 락 시티에서 나와, 외할머니가 단풍나무라고 불렀던 나무 그늘 아래에 서 있었던 그때를 떠올렸다. 줄곧 목을 쭉 빼고 종잇장 같은 잎들이 지붕처럼 우거진 틈 사이로 나무 꼭대기를 보려고 안간힘을 썼던 그날의 기억을. 겹겹이 쌓인 나뭇잎 사이로 빠져 나온 햇빛은 백만 가지가 넘는 초록빛으로 비추었고, 그 모습이 꼭 스테인드글라스처럼 보였다. 한 손을 나무 기둥에 대고 꼿꼿이 선 그 순간, 나는 맹세컨대 나무의 흥얼거림을 느꼈다. 예배당에 있는 기분이었다. 왠지 나무가 나에게 말이라도 거는 양, 경건한 무언가를 경험하는 기분이 들었다.
그 여행을 마치고 약 한 달 뒤, 우연히 나무 포스터를 발견했다. 〈내셔널 지오그래픽〉에 실린 단순한 나무들 사진인데, 나는 그 포스터를 내 방 벽에 잘 붙여 놓았다. 이따금씩 나는 그 모든 초록빛을 한껏 들이쉬며 우거진 숲 위를 날아다니는 한 마리 새가 된 꿈을 꾸었다.
아버지는 땅 밑의 모든 것을 사랑했고 외할아버지 역시 같은 마음이었던 것 같지만, 나는 땅 위의 모든 것을 사랑했다. 땅 위에 있어야 마땅한 모든 것들을.
그 포스터를 보면 아몬 삼촌이 돌아가시던 날, 포스트 선생님이 한 말이 떠올랐다. 나무뿌리가 흙을 고정시킨다던. 그런데 코퍼 타운에는 나무가 하나도 없었다. 나무가 있었다면 삼촌은 지금도 살아 있을까? 나무가 있다면 아버지를 무사히 지켜 낼 수 있을까?
숲이 생겨나려면 대체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할까?
씨앗이 싹을 틔우고 땅 밑으로 뿌리를 내리는 사이, 위로는 하늘을 향해 뻗어 나가는 나무를 상상해 보았다. 잔가지로 시작해서 몸통이 점점 더 굵어지고 커지는 모습을. 나뭇가지들은 사방으로 뻗어 나가고, 가지를 따라 쑥쑥 솟아난 나뭇잎들은 초록빛 물결을 만들어 낸다. 나뭇잎들은 그늘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레드 힐스를 가로지르며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낸다. 공기는 청량하고 새들은 둥지를 틀고, 나와 피란은 폐 속에 먼지 한 톨 없이 숨을 깊이 들이마시며 나무를 타고 높이 더 높이 올라간다.
하지만 나의 상상 속에서조차 숲을 이루기까지는 한참이 걸렸다. 더구나 코퍼 타운은 고사하고 엄마가 가꾸는 텃밭에서도 지금껏 무엇 하나 성공적으로 길러 내지 못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생각보다 훨씬 더 오래 걸릴 게 분명했다. 한숨이 절로 나왔다.
문득 오늘이 무슨 요일인지 떠올랐다. 금요일. 주말을 앞둔 날이자 팔의 깁스를 푸는 날이었다. 드디어!
나는 침대에서 나와 순식간에 옷을 갈아입었다. 복도를 걸어가는데 프라이팬에 소시지를 굽는 냄새가 나를 에워쌌다. 배 속이 요동을 쳤다.
엄마가 말했다.
“아침은 비스킷과 그레이비다. 우유는 따라 마셔.”
“달걀은 없고요?”
달걀은 말할 것도 없고 닭도 먹어 치울 수 있을 것 같았다.
“마지막 남은 달걀은 아버지 드렸다. 있다가 매점 가서 좀 사 올게.”
엄마가 창밖을 내다보고 덧붙였다.
“오늘 아침은 안개가 심하네. 빨래는 못하겠다.”
엄마는 한숨을 내쉬었다.
“지난번엔 안개 때문에 스타킹을 죄다 버렸는데, 필요할 때마다 매번 새로 사 신을 수도 없고, 참.”
우리 마을 안개는 끈끈하게 내리는 산성비나 마찬가지였다. 몇 시간도 안 돼서 엄마 스타킹에 숭숭 구멍을 냈다.
“내 방 창문은 닫았어요.”
문을 닫으면 습기를 차단할 수 있었다.
“잘했다. 그래도 오늘은 좀 덜 더우면 좋으련만. 꼭꼭 닫아 놓으면 숨이 탁탁 막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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