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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눈깨비

진눈깨비

: 구자명 짧은 소설

[ 양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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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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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6년 03월 25일
판형 양장?
쪽수, 무게, 크기 244쪽 | 458g | 153*224*20mm
ISBN13 9788993632538
ISBN10 8993632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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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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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두 해가 그로서는 국내에서 대사관 출입이나 하며 지낸 드물게 평화로운 시기였는데, 결국 또 근성이 발동한 것이다. 게다가 시리아라니! 나는 소꿉친구로서 이건 절대 말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근데 낼 떠난다고? 맙소사! 날 친구로 여기긴 하는 거야? 갑자기 걷잡을 수 없이 화가 치밀어 올랐다.
---「순례자는 강가에서 길을 떠난다 3」중에서

소년 골리앗의 장렬한 분신을 바라보는 다윗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 갔다. 수십 년 전 그 어떤 날 밤에도 야영하던 막사에 잠입한 한 소년이 활활 불타는 몸으로 그를 덮치려다 실패하고 혼자 숯덩이로 변해 가지 않았던가. 어째서 똑같은 광경이 지금 또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지 그는 이해할 수 없었다.
---「골리앗은 죽지 않는다」중에서

Z씨는 진료실에서 나와 간호사가 건네주는 처방전을 받아들고 병원 밖으로 나왔다. 골통은 여전히 전기침으로 찌르는 듯 쑤셔댔고, 거리는 바삐 다니는 행인들과 차량의 물결로 속절없이 붐벼댔다. 그는 간호사가 일러준 약국 이름이 좀 의아하게 생각되었으나 시킨 대로 병원 건물 지하로 내려가 약국 ‘쉼터’를 찾았다. ---「진통제」중에서

술은 왕왕 우리 안의 반역을 부른다. 꽁꽁 동여지거나 숨어 있던 내부의 정열을 자극하는 성향이 있는 술이 뜨겁기까지 하다면 그 정열은 불온한 충동을 수반할지도 모른다. 아, 그 일이 내게 일어났던가…….
---「오블리비온」중에서

“사모님, 다 됐싱게 어서 일어나시요이. 다른 손님 또 받아야 항게.” 그제야 정신이 든 그녀는 미안해하며 평상에서 내려와 목욕탕 중앙으로 나가다가 아주머니한테 맡겨둔 옷장 열쇠를 깜빡 잊고 온 것이 생각났다. 다시 때 미는 곳으로 가노라니 옆자리에서 일하는 동료에게 웃으며 얘기하는 아주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놀러만 댕기는 사모님들은 우리거치 일하는 여자들 사정을 통 모른당게. 글씨 쓰는 취미 활동 겉은 거야 시간 다툴 일이 뭐 있간디.”
---「일의 개념」중에서

어느 토요일 오전, 그녀는 청소기를 돌리며 소파에 지극히 편안한 자세로 앉아 신문을 뒤적이는 남편을 보며 함 들어오던 그날을 떠올린다. 자칭 페미니스트인 그는 한 주 내내 직장 일에 시달린 아내가 주말에 청소기를 돌릴 때면 소파에서 다리를 번쩍번쩍 잘 들어 준다. 여전히 자기붕괴도 잘 하여 이따금 같이 칵 죽어 버리고 싶게 만들기도 한다. 하지만 그와의 삶에는 시인 아버지도 벽안의 금발 지니도 수용하지 못했던 소통의 자유가 있다.
---「그녀의 선택」중에서

그러나 초월적 힘들은 또 한 번 은사를 베풀기로 했는지 그녀는 위세척도 없이 그 위기를 넘겼다. 아빠 없는 아이가 될 뻔했다가, 태어나지 못할 뻔했다가, 엄마 없는 아이가 될 뻔도 했던 딸은 명자 부부가 그 난리를 치는 동안 자 기 힘으로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 엄청난 재앙의 위협들 앞에서 그 아이는 전적으로 무력했다. 파워리스Powerless! 아이는 요즘 세상에서 P세대로 불리기 이미 오래전부터 P세대였다.
---「우리 딸은 P세대」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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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집 《진눈깨비》는 담백하면서도 은은한 향기를 지닌 나무들로 울창한 숲이다. 우람하지 않지만 기품이 있는 나무, 휘었지만 뒤틀리지 않은 나무, 상처 입었지만 울지 않는 나무, 윤기 나지만 알아주기를 바라지 않는 나무. 구자명의 소설을 읽는 일은 그런 나무들 사이를 걷는 일이다. 현란한 언어를 끝내 경계하는 작가는 숲을 나서는 우리에게 낮은 목소리로 말한다. ‘네 시간을 이기거라.’ 이야기들은 짧지만 울림은 길고도 깊다. 우리는 어떻게 우리의 시간을 이길 수 있을까.
- 방현석 (소설가·중앙대 교수)

이 작품집을 정독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는 ‘종횡무진(縱橫無盡)’이다. 작품의 주제의식이나 형식미학, 나아가 장르 등이 그야말로 종과 횡의 한계를 무한히 넘어서며 다채로움의 끝을 보여주고 있다. 때로는 차분하게 때로는 진중하게 삶의 진실을 천의 얼굴로 전달하고 있는 구자명의 《진눈깨비》는 우리 시대 미니픽션의 운명, 나아가 서사 장르의 운명을 측정해 볼 수 있는 하나의 시금석이라고 보아도 큰 무리가 아닐 것이다.
이경재 (문학평론가·숭실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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