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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리프

빌리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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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6년 04월 15일
쪽수, 무게, 크기 400쪽 | 416g | 130*190*20mm
ISBN13 9791159609749
ISBN10 1159609748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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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저 만난 적 있죠?”
“응, 있어.”
역시 기억하고 있었다. 일개 팬을. 무서운 기억력.
“언제 알아봤어요?”
“그날 바에서 너와 처음으로 눈이 마주쳤을 때.”
바꿔 말해, 날 보자마자……란 소리다. 심장이 기분 좋은 소리를 내며 크레셴도와 프레스티시모로 속도를 높인다. 나는 기회를 놓칠세라 바쁘게 다음 질문을 이었다.
“우리 카페엔 왜 가입했어요?”
“찾을 게 있어서.”
의외의 대답이다.
“뭘 찾는데요?”
이안은 으음, 하고 고민에 잠겼다가 고양잇과 동물의 나른한 움직임처럼 상체를 길게 빼고 내 눈을 빤히 들여다보았다.
“Belief.”
“네?”
갑작스럽게 튀어나온 본토 발음에 나는 멍하게 되물었다. 뒤늦게 ‘그래, 이안은 영국 사람이었지’라는 바보 같은 생각을 하며 뇌세포에 저장된 영어 단어들을 죽죽 넘겼다.
빌리프. 확신.
별 두 개짜리라고 밑줄까지 그어 놨다.
“찾았어요?”
우리 카페에서 찾을 확신이란 게 도대체 뭔지 감도 잡지 못하면서 물었다.
이안이 눈을 내리깔며 미간에 주름을 만든다. 북슬북슬 고수머리, 진지하게 고민하는 듯 아래를 향한 시선, 술에 젖어 매끈한 입술, 관능적이다 싶을 정도로 적당하게 솟아오른 입술 산.
진짜 고양이 같다. ‘이래 보여도 난 사실 길고양이야’라고 주장하는 자존심 센 집고양이. 이 얘길 이안에게 하면 화를 낼까. 미간을 찌푸릴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을 하며 취기에 달아오른 양 볼을 봉긋 부풀리고 웃음을 삼키는데 어느새 날 보고 있던 이안과 눈이 딱 마주쳤다.
크지 않은 눈. 짧지도 길지도 않은 속눈썹과 무서울 정도로 짙은 검은 눈동자. 눈동자가 눈꺼풀에 살짝 올라붙은 게, 삼백안 기가 없지 않아 있다.
또 뭐가 있으려나……. 다른 사람들은 모르는 나만의 것을 발견하기 위해 골몰하는데 이안의 얼굴이 불쑥 가까워진다. 그리고 눈 깜빡할 사이에 입술이 부딪쳤다.
촉, 하는 소리와 함께 입술은 금세 떨어졌다. 어안이 벙벙했다. 몸에서 힘이 빠져나가며 어깨가 축 늘어졌다. 바보처럼 입까지 벌렸는지도 모르겠다. 너무 마셨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나는 그럴 시간에 숨이라도 한 번 더 쉬었어야 했다.
잠시 물러났던 이안이 다시 입술을 부딪쳐 왔다. 순식간이었다. 묘한 각도로 고개를 기울이고 입을 크게 벌리더니 말 그대로 내 입술을 삼켰다. 부드럽게 입술을 빨고, 아주 살짝 이가 부딪치고, 이미 벌어진 입안으로 너무나 매끄럽게 혀가 들어왔다.
(중략)
키스는 차갑고 뜨겁고 쓰고 달콤했다. 어쩌면 착각인지도 모르겠다. 정말은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단지 상대가 이안이었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 키스에 대한 나의 모든 기억이 뒤집어졌다.
맞은편에 앉아 아까처럼 한 손으로 턱을 받치고 날 보는 이안.
나는 멍하니 입을 벌리고 가까스로 물었다.
“왜?”
이안의 눈썹이 위로 슬쩍 들리며 이마까지 흘러내린 앞머리 속으로 사라졌다 나타난다. 여유로운 몸짓. ‘뭐 그런 걸 묻냐’는 표정.
“왜, 라고 물으면서 네가 방금 떠올린 거. 그게 답이야.”
저녁 먹으면서 내가 했던 말이다. 바보 같다. 무책임하다. 장난치냐고 따지고 싶다. 하지만 화가 나지 않는다. 갑작스럽고 일방적이었지만 억지로 한 건 아니었다. 좋았다. 머리가 텅텅 비어 버릴 정도로 좋았다. 겁이 날 정도로 좋았다.
“키스하면 사귀는 거예요.”
덤덤하게 말했다.
그러니 일시적인 기분으로 한 거면 당장에 실토하는 것이 신상에 좋을 것이다, 하는 눈으로 이안을 봤다.
이안이 웃는다. 눈이 조명을 받아 보석처럼 반짝반짝 빛난다.
“그래.”
이안은 눈초리까지 휘며 이제껏 본 중에 가장 환한 미소를 지었다.
---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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