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년의 라마승 생활과 2년의 군인 경력은 서로 너무나 큰 차이가 있어 늘 투얼지를 괴롭혔고 항상 마음을 졸여야 했다. 그의 사적인 일은 시캉에서 함께 입대한 고향 친구들 중에서도 아는 이가 드물었다. 불교도와 군인을 비교한다면, 그에게 전자는 고기를 먹지 않고 불경을 읽으며 모든 생명과 함께하는 착한 사람이며, 후자는 총을 들고 사람을 죽이는 전사였다. 물과 불처럼 서로 섞일 수 없는 둘을 영혼 속에 한꺼번에 담고 있자니 그의 생명 역시 혼란과 무질서 속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무질서 속에서 그는 자신의 용맹함과 지혜를 바탕으로 군대를 떠나지 않으면서 동시에 선행을 할 수 있는 누이 좋고 매부 좋은 방법을 찾았다. (중략)
그 후 관(關) 사단장의 배려로 투얼지는 의무병이 되었다. 그는 자신의 선택이 받아들여져서 대단히 기뻤다. 이 선택으로 그는 살상무기인 총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또 불교 신앙을 지키고, 자신의 생활을 유지하고, 부상당한 전우들을 고통에서 구해줄 수 있으니 일석삼조였다.
---「프롤로그」중에서
마이탕 초원. 그곳에 늦여름과 초가을 사이의 여명이 밝아오고 있었다. 아직 어슴푸레한 하늘과 초원은 점차 어렴풋이 두 가지 색으로 구분되었다. 그 순간의 마이탕 초원은 유난히 고요했다. 심지어 무릎보다 높게 자란 피감초(披?草)는 모두 가지런히 풀끝을 늘어뜨리고 있었다. 공기를 움직이는 사자(使者)인 바람이 여전히 졸고 있는 게 분명했다.
바람은 시간의 품속에 누워 꿈쩍도 하지 않았다. 유일하게 앞을 향해 서둘러가는 시간은 하늘 위쪽의 색을 밀어내고 천천히 짙은 푸른색으로 물들여가고 있었다. 아래쪽의 색은 여전히 암흑이었다. 이 두 색이 결합한 부분은 어두컴컴한 빛과 그림자의 경계선으로, 희미하고 깊숙함 속에서 모든 초원의 생명체를 암시하고 있었다. 시간은 판에 박힌 듯하지만, 시간을 엄수해 고요함 속에서 새로운 하루로 나아가고 있었다. 초원의 민첩한 낮이 곧 시작될 것이다. (중략)
마이탕 초원의 지평선이 흑백의 빛과 그림자로 분명히 나뉘는 때, 궁부의 가족들이 사는 검은색 천막의 문이 걷히고 빛 한 줄기가 새어 나왔다. 그 빛은 근육이 잘 발달되어 튀어나온 궁부의 가슴팍과 오른팔 위를 비추고는, 팽창된 근육 위에 짙은 갈색의 금빛을 칠해놓았다. 그는 밤색 말의 고삐를 끌어당기고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얼굴을 양가죽 짱파오의 털 깃에 바싹 갖다대고는 인내심을 가지고 조용히 기다렸다. 뒤에 있는 말 세 필의 윤곽은 그와 천막의 윤곽과 함께 밝아오는 초원의 여명 아래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마치 탕카(티베트족의 독특한 두루마리 그림-역주) 화가가 선을 그릴 때의 간략한 스케치 같았다.
---「1. 카포러! 」중에서
삽시간에 “건헤이헤이, 건헤이헤이!” 하고 외치는 함성과 지축을 울리는 말발굽소리가 유목민족의 호방한 기질과 뒤섞였다. 기병들이 적들의 진지를 향해 공격하는 것 같았다. 말들을 응원하는 힘찬 고함이 초원 위에서 폭발적으로 쏟아져 나왔다. 천지를 뒤덮은 함성에 궁부는 번뇌가 싹 가셨다. 그는 우승에 대한 열망을 불태우며 번뇌를 떨쳐버린 채 결승점을 향해 돌진했다. (중략)
약동하는 말발굽소리가 끊임없이 울려 퍼지면서 유목민족의 호방함과 야성적인 매력, 섬세함과 따뜻함도 잘 드러났다. 설상비는 시작부터 소년 기수가 모는 흰색 말과 함께 선두를 달리고 있었다. 푸른 들판에서 달리니 흰색과 검은색이 더욱 두드러져 보였다. 두 말은 나는 듯이 질주하며 말머리를 나란히 하여 우열을 가릴 수가 없었고, 나머지 말들이 그 뒤로 바짝 따라붙었다.
---「 4. 난투전」중에서
나흘 동안 미친 듯이 달린 검은 말은 투얼지와 사내를 낯선 마을로 데려왔다.
투얼지가 지금 할 수 있는 유일한 생각은 슝둬 초원에서 멀어지는 것뿐이었다. 멀면 멀수록 좋았다. 초원의 속담에 ‘단칼에 생사를 가르고, 돌아서 뛰어내렸더니 땅이 아니었다’라는 말이 있다. 지금의 심정을 가장 잘 말해주는 표현인 듯싶었다. 달리는 내내 리드미컬하게 따각거리던 말발굽소리에 투얼지는 거싸얼 왕에게 서신을 전하기 위해 눈 덮인 설원을 달리던 그 필마를 연상했다. 서신이 대왕의 손에 도착했을 때, 말발굽은 놀랍게도 하얗게 변해 있었다. 지금 자신의 사타구니 밑에 있는 말발굽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속으로 흑마에게 ‘하얀 네 발굽’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요 며칠 간 하얀 네 발굽의 말발굽소리는 투얼지를 이 생명의 은인과 연결하여 미지의 세계로 안내하는 소나타가 되어주었다.
---「 9. 동행」중에서
《개로경(開路經)》을 그곳까지 읽었을 때, 갑자기 궁부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건헤이헤이’ 하는 함성이 목까지 나왔다. ‘전쟁의 신’ 궁부는 캉바 남자의 독특한 응원소리인 ‘건헤이헤이’와 함께 승천(昇天)하고 있었다. 투얼지는 감았던 눈을 뜨고, 세상을 떠나는 궁부를 보았다. 붉은 노을빛이 궁부의 머리를 가리고 있는 듯했다. 그 빛이 궁부의 몸 안으로 들어가 그의 몸과 영혼을 정화해주었다. 궁부는 죽음의 혼란과 고통에서 벗어나 영원한 안식을 얻었다. 투얼지는 옆에서 까맣게 타버린 쑥을 뜯어 급히 궁부의 입에 넣었다. 티베트인은 입에 쑥을 넣으면 죽은 자가 다시 살아 돌아온다고 믿었다. 그러나 이미 때는 늦었다. 궁부는 천천히 두 눈과 입을 다물고 있었다. 평온한 표정에서는 극락왕생 독경을 들은 모종의 만족감이 나타났고, 전혀 고통이 없었다. 그는 고개를 돌려 투다오와 보마에게 말했다.
“이제 궁부는 편안히 천당으로 갔어요. 가족의 원한을 풀기 위해 이렇게까지 멀리 쫓아왔지만, 여기서 궁부의 마지막을 지켜봤으니 풀기 힘든 천고의 한이 풀어졌을 거예요. 궁부는 부락의 원한을 뛰어넘은 항일 대영웅이에요. 우리 함께 그를 위해 기도해요!”
---「 20. 두 가지 부탁」중에서
566고지에서 벌어진 ‘목숨 뺏기 경쟁’이라 불린 전투에서 승리한 후, 투얼지는 자신에게 ‘영원히 바모에 정착하겠다’는 평생의 맹세를 했다. 나머지 인생은 566고지에서 전사한 전우들의 넋을 돌보기로 결심했다. 티베트인의 방식대로 그들의 제사를 지내고, 그들을 위해 《도망경》을 읽었다. 앞으로 자신이 두 다리로 걸을 수 있는 한, 극락왕생을 비는 독경소리는 경당에서 불공을 드릴 때 늘 켜놓는 등잔불처럼 항상 계속될 것이다. 육십 번의 여름과 겨울이 눈 깜짝할 새 지나갔다. 티베트족 원정군 노병인 투얼지는 의지와 체력으로 자신의 맹세를 실현했다.
566고지를 감싸고 있던 짙은 ‘화학연기’가 줄곧 그의 기억 속에 가득 차 있었다. 기억 속에서 그는 전우들과 어깨를 맞대고 있었다. 그는 종종 난조분에 있는 전우들과 통백(산 사람이 죽은 혼에게 하는 말)을 했다.
“헤이헤이헤이, 친구들. 내 여생에는 그저 사명밖에 없네. 혈관 속의 혈액이 더 이상 돌지 않을 때가 되면, 자네들이 천당 입구에서 줄을 서서 나를 맞이해주게나.”
---「 21. 투얼지의 사명」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