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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상관이에요

무슨 상관이에요

채영주 저 | 문학과지성사 | 2002년 02월 28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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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02년 02월 28일
쪽수, 무게, 크기 327쪽 | 495g | 153*224*30mm
ISBN13 9788932013152
ISBN10 8932013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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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기억 속에는 참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습니다. 많은 날들을 함께 보냈던 사람도 있고, 하루 혹은 몇 시간을 스쳐가듯 만났던 사람도 있습니다. 저를 아프게 한 사람도 있고 제가 큰 상처를 안긴 사람도 있습니다. 그들 중 누군가가 그리울 적이면 저는 가만히 눈을 감습니다. 그를 불러옵니다. 만일 그가 바쁘다면 제가 찾아가기도 합니다. 우리는 많은 얘기를 나눕니다. 안부를 묻고, 지난 일들을 묻고, 현재의 고충을 털어놓고, 앞으로의 계획을 의논하기도 합니다. 서로를 격려하는 일도 잊지 않습니다. 언제나 서로가 서로를 지켜보고 있음을 잊지 말자며. 나중에 진짜 한자리에 모여 부둥켜안을 수 있게 되었을 때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삶을 살자며. 최선을 다했노라고. 더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삶을 낭비하지 않기 위해, 언제나 더 많은 사람들을 사랑할 수 있기 위해, 최선을 다했노라고.
--- 표지글
어디 있니. 도대체 어디 있는 거니. 대답 좀 해봐. 어떻게 그렇 수가 있었지. 이 세상에 네 몸 하나 의지할 데가 없었니. 이 넓고 따뜻하고 화사한 세상에...먼저 떠나면 떠난다고 얘기라도 해야지. 꿈속에라도 잠깐 찾아와서 알려주었어야지. 18년이 넘도록 그렇게 무심할 수가 있었니. 대답 좀 해봐. 도대체 내 얘기를 듣고나 있는 거니....
--- p.316
'쓸쓸해 보이는군요. '

'그래요. 쓸쓸해 보여요. '

그녀의 대답이었다.

'쓸쓸할 수밖에요. 저 사람은 사람을 사랑하지 않으니까요. '

'유경씨를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았던가요?'

그렇게 말하며 나는 그녀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중략)…

'저 사람이 사랑하는 건 제가 아니에요. 기억일 뿐이죠. '

그녀는 다시 커튼 틈으로 시선을 돌렸다.

'옛사랑의 기억, 자기 가슴 속의 상처, 회한... 비를 흠뻑 맞으며 처량하게 서 있다는 사실도 조금은 사랑할 테구요. 저 사람은 아마 언제나 저런 식이었을 거예요. 전 그런 건 질색이에요. 제 속에도 쓸쓸하고 처량한 건 넘쳐나고 있거든요. '
--- p.2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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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을 수 있을까.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20년 전의 첫사랑이 그 옛날 그 모습 그대로 당신을 찾아온다면. 맑고 촉촉한 눈망울을 깜박거리며 빤히 당신을 쳐다본다면. 그건 아마 꿈속에서도 신비로운 황홀이리라.(p.`5)아내 정지수와 이혼한 후 청소년 문제 상담소에서 전화 상담 자원 봉사를 하던 서른아홉 살 먹은 소설가 장오산은 고아원 출신의 윤은소라는 여고생으로부터 원조교제 제의를 받는다.전화 통화를 빌미로 은소를 만난 장오산은 당차고 고집 있어 보이는 그녀의 모습에서 그때까지도 소식을 알지 못해 애를 태우고 있는 첫사랑 강성연을 발견하고 은소가 강성연의 딸일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리고 그녀가 조직 폭력배의 일원인 형배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려 한다는 것을 알고는 고아원 총무의 허락을 받아 자신의 집으로 피신시킨다.그렇게 해서 함께 살게 되지만, 첫사랑의 피붙이라고 확신하는 장오산과 그 확신을 깨기 위해 애쓰는 윤은소는 사사건건 충돌을 일으킨다. 하지만 장오산은 은소의 도움으로 강성연의 행방을 알 수 있는 단서를 건진다. 그 단서를 통해 강성연이 운동권의 핵심 멤버인 남자와 함께 일본으로 밀항했다는 소식과 함께 그 당시의 일본 주소를 알아낸다.가기 싫어하는 은소를 설득해 일본으로 향하는 장오산. 하지만 우여곡절 끝에 일본에서 알아낸 것은 임신 중독증으로 비참한 최후를 마친 강성연의 죽음. 그리고 어렵게 털어놓는 은소의 과거를 통해 강성연과는 아무 관련도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더불어 은소가 자신을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까지도. 그리고 늘 충돌을 일으키던 은소와 화해를 한다.은소의 뒷바라지를 약속하고 함께 한국으로 돌아오기 위해 간사이 공항으로 가지만, 비행기 탑승 시간 몇십 분 전에 은소는 사라진다. 그리고 2년 만 지나면 성인이 되니까 그때까지 기다려달라는 은소의 전화를 받는다.
* * *
잃어버린 사랑을 되찾으려는 속절없는 충동을 중앙에 배치하고 있는 『무슨 상관이에요』의 가두리에는 적어도 네 가지의 이질적인 이야기들이 엉켜 있다. 이 가두리에 놓여 있는 네 개의 이야기들을 야콥슨적인 의미에서(문맥과 메시지를 구별하고, 전자에 지시 기능을, 후자에 시적 기능을 할당한) 문맥 이야기라고 할 수 있는데, 이 문맥 이야기들은 사랑 이야기가 아니다. 그것들은 정치적인 이야기이고 또한 똑같은 밀도로 개인적인 이야기들이다. 그 이야기들을 열거하면 다음과 같은데, ‘혹은’은 정치와 개인 사이의 대칭면을 가리킨다:첫번째 맥락: 1980년대 학생 운동의 의미 혹은 정치적인 것에 짓눌린 자의 무기력(→배경 이야기)두번째 맥락: 세대 간의 단절 혹은 변화를 준비하지 못한 자의 죄의식(→전경 이야기)세번째 맥락: 붕괴된 사회 혹은 위험에 처한 개인(→표면 이야기)네번째 맥락: 예술의 기능 혹은 회의에 수몰된 소설가(→내면 이야기)첫번째 맥락은 중심 이야기의 직접적인 원인을 형성하며 따라서 배경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나’ 자신은 영문도 모르는 상태에서 성연과 ‘나’를 영원히 이별케 한 것은 학생 운동권의 결정이다. 뿐만 아니라, 둘의 만남을 지속적으로 방해하는 것은 모두 학생 운동과 관련된 각종의 문제들이다. 이 문제들은 결국 성연-나의 관계를 성연-운동권/나의 관계로 바꾼다. 세대 간의 차이와 갈등의 층위에 놓인 두번째 맥락 이야기는 그러니까 한편으로는 되풀이되는 앞 세대의 ‘죄악’을 사회적 본질로 굳히면서, 다른 한편으로 미래의 가능성을 현재의 시간대와 계속 어긋나게 한다. 후자의 어긋남은 어긋남 자체로서 배경 이야기에 묶인다. 세번째 맥락 이야기는 첫번째 맥락 이야기, 즉 배경 이야기의 문제를 연장한 것이자 동시에 전치시킨 것이다. 연장했다는 것은 배경 이야기가 과거의 사건이었던 데 비해 세번째 맥락 이야기는 현재의 사회적 상황을 다루고 있다는 것을 가리키며 후자가 전자의 결과로서 제시되고 있다는 점에서 쓰인 것이다. 전치했다는 것은 각각 과거와 현재를 다루었지만 구조적으로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사회의 이야기로 옮김으로써 사회적 맥락을 드러내고 있다는 것을 가리킨다. 현재의 사회적 상황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이 맥락을 표면 이야기라고 부르자. 표면 이야기에서 무엇보다도 두드러진 것은 현재의 사회는 법과 질서가 붕괴되었다는 전언이다. 마지막 맥락 이야기는 소설가인 ‘나’를 둘러싸고 있다. ‘나’가 소설가라는 것은 아주 다양한 방식으로 자주 지적된다. 그런데 텍스트의 사건에 ‘소설 쓰기’가 기능하는 바는 거의 없다. 소설가-‘나’에 대한 타인들의 지적은, 후반부의 유경의 감탄을 제외하면, 모두 조롱적 혹은 자조적이다. 이 조롱 혹은 자조가 텍스트의 행동 속에 특별한 관여성 없이 빈번히 등장하는 것은 거꾸로 ‘나’가 소설에 대한 자의식으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을 반증한다. 그 자의식은 텍스트의 전반부에 이미 모습을 드러낸다.“아니면, 뭐 소설이라도 쓰시는 건가요? 커피 한 잔을 옆에 두고?”나는 가슴이 뜨끔했다. 기실 나는 소설을 쓰는 사람이었다. 유명하지도 않았고 잘 팔리는 글쟁이도 아니었기에 소설가라는 직함을 붙이기는 껄끄러웠지만, 어쨌든 나는 소설을 쓰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녀의 그 말이 왜 그렇듯 가슴을 찔렀던 것일까. 뭐 소설이라도 쓰시는 건가요? (p.`13)게다가 ‘나’는 자신이 겪는 사건을 본능적으로 ‘소설화 가능성’에 연결시킨다: “소설가의 속성상 나는 귀가 솔깃해지고 있었다”(p.`83); “만약 은소라는 아이를 주인공으로 소설을 쓴다면 나는 그 방법밖에 생각해낼 수 없을 것이었다.”(p.`91). 텍스트 내에서 ‘소설’은 오직 ‘나’에게만 관계가 있는 것이다. 그 점에서 이 네번째 맥락 이야기는 ‘내면 이야기’라고 지칭할 수 있을 것이다. 중앙 이야기는 이 네 개의 맥락 이야기들의 총화로서 출현한다. 그런데 이것은 맥락들의 종합적 합성물이 아니라 그것들을 연료로 삼아 대기권 밖으로 치솟는 로켓과도 같다. 다시 말해, 중심 이야기는 맥락 이야기들로부터 태어났지만, 그것들의 어느 것과도 닮지 않았다. 맥락 이야기들이 사실의 차원에 속한다면 중심 이야기는 환각인 소이이다. 가장 핵심적인 것은 배경 이야기가 나머지 세 개의 이야기들을 절대적인 자기력으로 밀치는 듯 흡인하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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