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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피 creep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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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피 creep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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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16년 04월 0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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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용량 EPUB(DRM) | 1.13MB ?
글자 수/ 페이지 수 약 16.9만자, 약 5.3만 단어, A4 약 10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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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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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나를 ‘선생’이라고 불렀다. 도라쿠 대학 문학부 교수. 이것이 나의 사회적 지위다. 전공은 범죄심리학. 특수한 사건이 발생했을 때, TV나 라디오에 출연해서 사건에 대해 분석하는 경우가 있어 세상 사람들에게 그럭저럭 얼굴이 알려져 있다. 나이는 마흔여섯. 어엿한 중년이다. 니시노에 비하면 다소 젊어 보이긴 하지만 솔직히 말해 그의 나이는 짐작이 되지 않는다. 자녀들이 아직 중?고등학생인 걸 보면 그렇게 나이가 많은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그 또래의 자녀를 둔 부모들보다는 조금 더 나이가 든 것 같기도 하다. 그때 강한 바이탈리스 냄새가 코를 찔렀다. 1970년대에 가장 인기 있었던 헤어크림 냄새다. 세련돼 보이는 사람이 왜 이런 헤어크림을 사용할까? 그것이 가장 명백한 중년의 증거처럼 보였다. --- p.13

‘도쿄 도 히노 시 혼마치 4번가 자택에서 일가족 세 명이 행방불명되었습니다. 누군가에 의해 납치되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행방불명된 사람은 혼다 요헤이(당시 45세), 혼다 교코(당시 39세), 혼다 요스케(당시 16세). 사건 발생 일시 19××년 8월 5일. 정보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히노 경찰서.’
몇 번을 보아도 똑같았다. 무기질적인 활자의 나열에서 새로운 정보를 발견하는 일은 불가능했다. 사건이 발생한 현장의 지도도 실려 있었다. 문제는 혼다의 집이 상당히 고립된 환경에 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도만 보아서는 그런 사실을 알 수 없었다. 다시 주거 환경을 떠올려보았다. 모퉁이였다. 서쪽 옆에는 집이 없다. 정면은 다마가와 강의 제방으로 앞에도 집이 없다. 뒤쪽에 집이 한 채 있었지만 집 주인인 고령의 부부와는 거의 교류가 없었다. 유일하게 교류가 있었던 것은 미즈타라는 동쪽 옆집 사람으로, 그마저도 얼굴만 알고 지내는 정도였다. --- p.43?44

“앞집에는 누가 살고 있지?”
나는 잠시 입을 다문 채 그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마치 우리 집 주변을 조사하러 온 것 같은 질문이 이어지고 있었다.
“고령의 모녀야. 따님이 어머니를 돌보고 있지. 따님도 이미 칠순쯤 됐을걸.”
“역시 그렇군.”
“뭐가?”
“비슷하지 않나? 이런 생활환경이 말이야.”
순간 숨을 들이마셨다. 그제야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가 됐다. 히노 시에서 행방불명된 가족도 뒤쪽에는 고령자 부부가, 동쪽 옆에는 중년 부부가 살고 있었다. 니시노의 집을 중심으로 보면 앞쪽과 뒤쪽, 동쪽과 서쪽을 바꾸면 생활환경이 매우 유사하다. 더구나 니시노의 집과 행방불명된 가족의 집은 가족 구성과 남녀비율까지 똑같다. --- p.59?60

“끔찍한 일이 벌어졌네요. 앞집 어르신들이 걱정입니다.”
나는 인사말도 없이 그렇게 말했다.
“걱정할 것 없습니다. 이 정도라면 우리 집까지 불길이 미치진 않을 테니까요.”
나는 어이가 없어서 할 말을 잃었다. 무섭도록 냉혹한 말이었다. 다나카 모녀의 안부에 대해서는 입도 벙긋하지 않고 엉뚱한 대답을 한 것이다. 나도 모르게 그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소름 끼칠 만큼 차가운 표정이었다. 눈에서 탁한 빛이 뿜어져 나오는 것 같았다. 정서결핍. (중략) 정서결핍이란 무섭도록 일그러진 성격을 가리키는 말로, 흉악한 범죄자의 공통적인 성격으로 볼 수 있다. 쉽게 말하면 다른 사람의 불행을 보고도 동정을 느끼지 못하는 성격. 그것이 정서결핍이다. 지금의 니시노는 그 말에 딱 어울리는 사람처럼 보였다. --- p.101?102

그보다 더 마음에 걸린 것은 “이런 환경이라면 옆집 사람이 다른 사람으로 바뀌어도 아무도 모르지 않을까 생각했네.”라는 노가미의 말이었다. 이제 와서 생각하니 그것은 우리 옆집에서 일어날 일을 미리 예언한 듯한 말이기도 했다.
“그 사람은 아빠가 아니에요.”
“전혀 모르는 사람이에요.”
나는 소녀의 말을 몇 번이나 곱씹었다. 문제는 노가미가 어떤 과정을 거쳐서 우리 옆집에 도달했느냐는 것이다. 그는 동료에게도 말하지 않고 단독으로 수사를 했다. 그가 왜 단독수사를 고집했는지가 사건을 푸는 열쇠라는 생각이 들었다. --- p.145

불안이 아직 공포로 바뀌지는 않았다. 나는 현관 안으로 상반신을 밀어 넣은 채 불편한 자세로 왼쪽 벽의 전등 스위치를 눌렀다. 환한 불빛 아래 모든 것들이 명백하게 드러났다. 귀를 찢는 비명이 울려 퍼졌다. 내 입에서 터져 나온 비명이었다. 얼어붙은 듯한 사람의 눈이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목울대 부근에서 엄청난 피가 솟구쳐 시커먼 종양 덩어리처럼 굳어 있었다. 얼굴에는 이미 말라붙은 피가 기이한 모양을 이루었다. 여자였다. 그러나 그 얼굴은 성별을 초월해서 인간임을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었다. --- p.172

“다카쿠라 씨, 노가미의 행방불명과 지금 당신이 관여하고 있는 사건, 그 두 가지가 관계가 있지 않나요? 알고 있겠지만 다니모토라는 경시청 형사를 만나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었어요. 노가미의 후배 같은데, 노가미에 대해 묻기만 할 뿐 아무 말도 해주지 않더군요. 그래서 당신과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실은 노가미가 당신에게 전해주라고 한 게 있어요. 하지만 내가 원하는 정보를 주지 않으면 줄 수 없어요. 그게 노가미가 내건 조건이에요.” --- p.201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고 나서 말하기 시작했다. 최근 들어 기묘한 꿈을 꾼다. 짧은 꿈이다. 장대비가 쏟아지고 있다. 쏟아지는 빗발을 뚫고 키 큰 남자가 파란 비닐주머니에 싸인 길고 가느다란 물체를,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주택가의 나무 대문 안으로 운반하고 있다. 좁은 문을 통과하지 못해서 남자는 몹시 애를 먹고 있다. 빗발이 더욱 거세져서 거의 앞이 보이지 않을 때, 꿈에서 깬다.
“흔히 말하는 데자뷰 현상과 비슷해요. 그 광경도, 그 남자도, 그 주택도, 특히 그 문도 어디선가 본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어디서 봤기 때문에 그런 기억이 무의식에 남았다가 꿈에 나오는 게 아닐까요?” --- p.252?253

그런데 더 이상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니……. 난 모든 것을 잃은 것이나 마찬가지였어요. 인간의 육체적 열등감은 쉽게 극복할 수 있는 게 아니란 걸 절실히 깨달았어요. 사람은 한 가지 나쁜 생각이 들면 모든 걸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법이죠. 그러다 보니 예전에 나를 사랑했다는 것조차 믿을 수 없게 됐어요. 처음부터 진심이 아니라 단지 가지고 놀았던 게 아닐까, 나와 결혼한 것도 당시 피아니스트로서 잘나가기 시작했기 때문에 장래의 경제적 이익에 눈독을 들인 게 아닐까. 물론 지나친 생각이라는 건 알아요.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을 만큼 내 결혼 생활은 비참하게 끝났지요.
--- p.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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