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상준(laughter@yes24.com)
"나는 우리의 국력, 우리의 야망이 두렵다. 나는 우리가 엄청난 두려움의 대상이 되어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두렵다. …우리 입으로야 전대미문의 이 엄청난 국력을 남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지만 다른 나라들이 우리의 이야기를 그대로 믿겠는가!"
고삐 풀린 망아지정도면 좋으련만, 9.11 테러 이후의 군사대국 미국의 최근 행보는 불길하다. 20세기에 들어서 10년에서 15년을 주기로 끊임없이 세계 각 지역에서의 전쟁에 참여한 단련된 전쟁국가 미국이지만, 원주민에 대한 토벌전쟁 이래, 처음으로 겪게 된 자국내에서의 '전쟁상황' 경험은 미 전역을 감정적인 애국주의의 물결로 뒤덮고, 그들의 '힘센 주먹'에 대한 외부의 견제를 무마하고 무시하는 구실이 되고 있는 듯하다.
부시의 대통령 당선 후, 미국의 군비 확장과 일방주의적 외교정책은 예견된 것이었지만, 9.11 사건은 그것을 좀더 과감하고, 독선적인 방향으로 이끄는 도화선이 되었다. 그 흐름의 중심에 NMD(National Missile Defense), 즉 국가 미사일 방어망 계획이 있다. 이를 간단히 설명하자면, 미국을 향해 발사된 미사일(대륙간 탄도 미사일 ICBM)을 공중에서 미리 공격해 없애는 것이다. 즉 하늘에 배치한 위성으로 다른 나라의 미사일 공격을 초기에 알아낸 뒤 요격 미사일을 발사, 대기권 밖에서 적의 미사일을 폭파시킴으로써 우주 바깥으로 격추시키는 것이다.
얼핏 보면, 이 계획은 자국의 영토보호를 위한 방어전략에 근거한 것이기 때문에 다른 나라가 굳이 간섭할 것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하지만 미국의 잠재적 적국(?)이라 할 수 있는 러시아나 중국의 입장에서 보자면, 엄청난 공격력을 가진 미국이 MD 계획을 통해 완벽한 방어망까지 겸비한 명실상부 지구상의 지존이 된다는 사실은 크나큰 위협이 아닐 수 없다. 힘의 균형이 무너지기 때문이다. 미국이 마음먹기에 따라, 중국이나 러시아의 영토가 핵미사일 한방에 쑥대밭이 될 수 있지만, 그에 따른 보복공격의 가능성 자체가 미국의 MD 시스템에 의해 차단되는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다.
따라서 자신들만의 MD계획에 착수하게 될 것이고, 상대편의 방어망을 뚫을 수 있는 공격력(지속적인 핵무기, 장거리 미사일 개발 등)을 갖추기 위한 노력이 시도될 것이다. MD계획에 대한 미국 내부의 비판자들과 얼핏 직접적인 이해당사자가 아닌 듯 보이는 유럽의 국가들이 우려하는 바가 바로 이것이다. 그동안 억제되어온 전세계적인 군비축소의 흐름이 미국의 MD 추진으로 인해 단번에 역전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2001년 12월 3일에 실시된 요격미사일 실험발사 장면
이 책 『미사일디펜스』는 미국의 MD 계획에 대한 매우 자세한 보고서이다. MD계획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레이건 정부의 전략방위구상 SDI(Strategic Defense Initiative)에서부터 클린턴 행정부, 현 부시정부에 이르는 NMD 계획의 진행 과정에 대한 꼼꼼한 기술과 더불어, 이 책을 특징 짓는 핵심적인 흐름은 NMD 계획을 추진하는 자들의 뜻이 진정한 미국의 보호에 있지 않다는 분석에 있다.
그 근거는 크게 세 가지이다. 첫째, 다른 나라로부터의 미사일 위협이 과장되어 있다는 점. 둘째, MD 계획이 성공적으로 수행된다고 할지라도, 세계의 평화나 자국내의 안보에 그다지 큰 기여를 할 수 없다는 점 - 이는 9.11 테러에서 확실하게 드러났다 -. 셋째, 근본적인 기술적 한계로 인하여 MD 계획 자체의 성공 가능성이 매우 희박하다는 점이다.
이제까지의 개발 비용으로만 1000억달러 가까운 돈이 소요되었고, 앞으로도 600억 달러의 예산이 책정된, 그럼에도 그 성공여부가 심히 의심스러운 이 프로젝트에 미국이 그토록 매달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직접적으로는 보수적인 공화당과 군산복합체와의 커넥션이 그 요인이 될 것이다. 보잉, 록히드, 레이시언, TRW 등 빅4 군수기업은 정치자금의 중요한 공급자 역할을 해왔고, 관련업계 종사자들이 전체 취업 인구의 2%에 이른다는 점. 부양가족을 포함하면 5% 정도의 표가 이들에게 달려 있는 것이다. 전통적으로 미국의 군산복합체는 1940년대의 핵무기, 1950년대의 ICBM(대륙간 탄도탄), 1960년대의 우주개발, 1980년대의 SDI(스타워즈) 등 대형 프로젝트의 수혜를 받아왔다. 냉전종식 이후 별다른 건수가 없던 차에, 최소 600억 달러가 소요되는 NMD 같은 대형 프로젝트가 눈앞에 떨어져 있는데, 이걸 절대 놓칠 수 없는 것이 그들의 입장인 것이다.
또한 저자들이 지적하고 있는 것은 미국을 특징짓는 과학기술에 대한 무한한 신뢰, 그것의 선도자로서의 미국의 역할에 대한 나르시시즘이다. '무적'의 경지에 들어섬으로써 '진정한 세계'의 주인이 되고자 하는 미국의 패권 정책은, 자신들은 '선'하기 때문에, 가지고 있는 힘을 정의롭게 쓸 수 있다는 도덕적인 우월감을 바탕으로 한다. 힘은 합리적 이성과 '선'에 대한 실천적 의지를 함께 가진 이들이 절대적으로 갖춰야 하는 것이며, 그 적임자는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미국인 것이다.
이 책의 의미는 바로 이 지점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미국민들이 보이고 있는 비이성적인 애국주의와 부시에 대한 지지는, 자신들이 가진 힘을 선한 방향으로 쓰고 있다는, 그것을 충분히 제어할 수 있는 능력을 자신들만이 지닐 수 있다는 도덕적 우월감에서 비롯된다는 지적으로 연결될 수 있는 저자들의 주장은 미국을 제대로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열쇠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