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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어 사전

가족어 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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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6년 04월 15일
쪽수, 무게, 크기 316쪽 | 440g | 146*205*30mm
ISBN13 9788971997185
ISBN10 89719971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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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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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 : 이현경
한국외국어대학교 이탈리아어과와 같은 대학원을 졸업한 뒤, 비교문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탈리아 대사관이 주관하는 제1회 번역문학상과 이탈리아 정부에서 주는 국가번역상을 수상했다. 현재 한국외국어대학교 이탈리아어 통번역학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친다. 프리모 레비의『이것이 인간인가』, 『주기율표』, 가브리엘레 단눈치오의 『쾌락』, 안토니오 타부키의 『다마세누 몬테이루의 잃어버린 머리』, 이탈로 칼비노의 『보이지 않는 도시들』, 『나무 위의 남작』, 『어느 겨울밤 한 여행자가』, 『힘겨운 사랑』, 알베르토 모라비아의 『권태』, 움베르토 에코의 『바우돌리노』, 『미의 역사』 등을 우리말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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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내가 기억하고 있는 것만 썼다. 그래서 시대를 기록한 소설을 기대하는 독자는 공백이 너무 많다고 반박할 수도 있다. 실제 이야기를 소재로 삼았지만 이 책을 소설로 읽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소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기대하지 말고 말이다.
--- p.6

우리 형제는 5남매다. 우리는 각기 다른 도시에 살고 있으며 어떤 형제는 외국에 산다. 그리고 편지 왕래도 자주 없다. 만났을 때도 서로에게 무관심하고 신경을 쓰지도 않는다. 하지만 우리들끼리는 단 한마디면 족하다. 단 한마디, 한 문장, 우리의 어린 시절에 수도 없이 듣고 반복했던 그 오래된 말 한마디면 우리들의 옛날 관계를 단숨에 되찾는다. (……) 이런 문장 하나 혹은 이런 말 중의 하나는 우리 형제들이 어두운 동굴 속이나 수백만의 사람들 틈에 섞여 있어도 서로를 찾을 수 있게 해준다. 이런 문장들은 우리들의 라틴어였고 지나간 날들의 사전이었으며 이집트 혹은 아시리아-바빌로니아의 상형문자, 존재하기를 멈추었지만 난폭한 물살과 시간의 부식 속에서 살아남은 생명세포들과 같은 것이다. (……) 우리 중 누군가가 “친애하는 리프만 씨”라고 말하게 될 때, 그리고 곧 “그 이야기 좀 집어치워! 도대체 몇 번이나 들었는지 모르겠군!”이라고 말하는 성급한 아버지의 목소리가 우리의 귀에 다시 울리게 될 때, 지구상의 이곳저곳에서 이런 말들이 다시 창조되고 살아날 것이다.
--- p.36~37

아버지의 다른 행동이 다 그렇듯이 중재 역시 폭력적이었다. 아버지는 달라붙어 상대를 두들겨 패고 있는 두 오빠 사이로 뛰어 들어가서 그들의 따귀를 때렸다. 그때 난 어렸다. 그런데 지금도 사납게 싸우던 그 세 남자를 떠올리면 겁이 난다. 알베르토와 마리오가 그렇게 서로 두들겨 패던 이유도, 아버지의 분노를 폭발하게 한 이유처럼 아주 하찮은 것들이었는데 가령 책이나 넥타이가 제자리에 없다든가, 누가 먼저 씻으러 갈 것인가 따위였다. 한번은 알베르토 오빠가 머리를 붕대로 감고 학교에 나타나자 선생님이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물었다. 오빠는 일어나서 대답했다. “저와 제 형은 목욕을 하고 싶었습니다.”
--- p.57

아버지는 음악을 사랑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증오하기까지 했다. 아버지는 음악을 만들어내는 모든 종류의 악기를 증오했는데 피아노, 아코디언, 탬버린 같은 것도 그에 포함되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에 아버지와 함께 로마의 식당에 간 적이 한번 있었다. 그때 한 여자가 구걸을 하러 식당으로 들어왔다. 종업원이 그녀를 내쫓으려고 하자 아버지는 그 종업원에게 화를 내면서 소리쳤다. “불쌍한 여인을 내쫓지 마시오! 그냥 놔둬요!” 아버지는 여인에게 적선을 했다. 모욕을 당해 몹시 화가 난 종업원은 팔에 냅킨을 걸친 채 구석으로 물러섰다. 그러자 여인은 외투 안에서 기타를 꺼내 연주를 했다. 잠시 후 아버지는 안절부절못하고 유리컵을 옮기기도 하고 빵이나 포크와 나이프를 옮기다가 냅킨을 무릎 위로 내던졌다. 그 여인은 자기편을 들어준 데에 대한 답례로 아버지 쪽으로 기타를 기울이면서 계속 연주를 했다. 기타에서는 우울하고 비탄에 잠긴 긴 음들이 흘러나왔다. 아버지가 갑자기 폭발했다. “음악은 그만하면 됐소! 나가요! 이런 연주를 참고 들을 수가 없어!” 하지만 그 여인은 연주를 계속했다. 그리고 의기양양해진 종업원은 구석에 꼼짝하지 않고 서서 그 광경을 구경했다.
--- p.62~63

아버지는 아들들의 장래를 걱정했고 밤에 눈이 떠지면 어머니에게 말하곤 했다. “지노는 뭐가 될까? 마리오는 뭐가 될까” 하지만 아직 중학교에 다니던 알베르토를 생각하면 걱정 대신 곧바로 분노에 휩싸였다. “그 악당 같은 알베르토! 사기꾼 같은 알베르토!” 아버지는 절대 ‘당나귀 같은 알베르토’라고 하지 않았는데 알베르토 오빠는 당나귀 그 이상이었기 때문이다.
--- p.94

오빠는 의과대학에 입학했다. 그래서 아버지는 해부학 강의실에서 오빠를 대하게 되었다. 아버지는 오빠를 강의실에서 만난다는 걸 조금도 달가워하지 않았다. 한번은 강의실을 어둡게 하고 아버지가 슬라이드를 돌리다가 어둠 속에서 빛나는 담뱃불을 발견했다.
“누가 담배를 피우나?” 아버지가 호통을 쳤다. “어느 개자식이 담배를 피우는 거야?”
“저예요, 아빠.” 오빠가 익히 알려진 경쾌한 목소리로 대답하자 모두들 폭소를 터뜨렸다.
--- p.126

알베르토 오빠는 얼마 뒤에 아주 훌륭한 의사가 되었다. 아버지는 그 사실을 절대 믿으려 하지 않았다. 어머니나 우리 형제 중 누군가가 몸이 좋지 않아 알베르토 오빠에게 진찰을 받고 싶다고 하면 아버지는 예의 그 천둥 치는 듯한 웃음을 터뜨렸다.
“무슨 알베르토야! 알베르토가 대체 뭘 안다고!”
--- p.127

그런데 어느 날 밤 아버지가 집에 돌아왔다. 감옥에서 다 빼앗겨버렸기 때문에 넥타이도 매지 않았고 구두끈도 없었다. 아버지는 겨드랑이 밑에 신문지로 싼 더러운 속옷 꾸러미를 끼고 있었다. 수염이 길게 자라나 있었는데 아버지는 수감되었다는 사실을 아주 만족스럽게 생각했다.
--- p.146

그날 아침, 멀리 북쪽에 떨어져 있는 내 부모 형제들을 생각하며 다시는 그들을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불안에 떨며 보낸 그 많은 고독과 공포의 시간 이후에 만난, 어린 시절부터 알고 있던 아드리아노의 친숙한 모습 앞에서 내가 느꼈던 그 큰 안도감을 영원히 잊지 못하리라. 그리고 겸손하고 친절하고 인내심 있는 선량한 태도로 허리를 구부려 방에 흩어진 우리 옷들과 아이들의 신발들을 모으던 모습을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우리가 집에서 빠져나올 때 아드리아노는 그 옛날 투라티를 데리러 우리 집에 왔을 때의 그 얼굴, 누군가를 구해낼 때의 숨이 차는 것 같기도 하고 놀란 것 같기도 하고 행복해 보이기도 하는 그 얼굴을 하고 있었다.
--- p.242

돈에 관한 아버지의 생각은 전쟁이 끝난 뒤에 더욱더 불확실하고 혼란스러워졌다. 한번은 아직 전쟁 중인데 알베르토 오빠에게 농축 우유 열 병을 사달라고 부탁했다. 알베르토 오빠는 암시장에서 한 병에 100리라 이상을 주고 아버지에게 우유를 사드렸다. 아버지는 오빠에게 얼마를 지불해야 하는지 물어보았다. “됐습니다.” 알베르토가 말했다. “괜찮아요.” 아버지는 오빠의 손에 40리라를 쥐어주고 이렇게 말했다. “나머지는 너 가져라.”
--- p.260

아버지도 그 당시 정치 집회를 한 번 열었다. 아버지는 인민전선의 후보자 명단에 아버지의 이름을 올려놓아도 좋겠느냐는 제의를 받았다. (……) 아버지의 의견을 말하라고 권했다. 아버지를 극장에 데려가서 무대로 오르게 했다. 아버지는 이런 말로 연설을 시작했다.
“과학은 진리를 탐구하는 학문입니다.”
아버지는 20여 분 동안 과학 이야기만 했다. 사람들은 어리둥절해서 입을 다물었다. 그러다가 아버지는 갑자기 과학 연구는 러시아보다 미국이 훨씬 더 앞서간다고 말했다. 사람들은 더욱더 당황해서 입을 다물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우연히 아버지가 즐겨 말하듯 무솔리니를 프레다피오의 당나귀라고 불렀다. 그러자 요란한 박수가 터져나왔다. 이번에는 아버지가 놀라고 당황해서 주위를 돌아보았다. 아버지의 정치 집회는 이랬다.
그 집회에 참석했던 발보는 그 기억을 떠올리면서 웃음을 터뜨렸다. 발보는 아버지를 아주 좋아했다. 2년 동안의 의과대학 생활에서 기억나는 거라고는 우리 아버지밖에 없었다. 학기 초에 대학 앞에서 신입생들끼리 싸움이 벌어졌는데 아버지가 모여 있는 사람들을 뚫고 지나가려고, 돌진하는 가축 떼에게 달려드는 들소처럼 고개를 숙이고 그 사람들 속으로 뛰어들었다고 발보가 말했다.
--- p.290~291

내가 기억하기로는, 아버지는 전쟁 때 거리에서 폭격을 만나도 그렇게 고개를 숙이고 들소처럼 달렸다. 아버지는 대피소로 내려가지 않았고 경보 사이렌이 울리면 대피소 대신 집 쪽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비행기들의 굉음과 소음 속에서 아버지는 고개를 숙이고 벽 쪽에 붙어 달렸는데 위험을 사랑했기 때문에 위험 속에서 행복감을 느꼈다.
“얼간이들 같으니!” 얼마 뒤에 아버지는 말했다.
“내가 대피소로 간다고 상상하지도 마! 죽음 같은 건 하나도 두렵지 않아!”
--- p.2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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