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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는 꽃도 아름답다

지는 꽃도 아름답다

: 일흔 살 문영이 할머니의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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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07년 06월 05일
쪽수, 무게, 크기 162쪽 | 221g | 138*205*20mm
ISBN13 9788990706171
ISBN10 8990706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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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관련자료 보이기/감추기

저자 : 문영이
1935년 전북 김제에서 태어났다. 고등학교를 마치고, 서울 유학에 설레었지만 어려워진 살림에 여자라는 이유로 희망을 접어야 했다. 그리고 다섯 해만에 혼인을 하고 아들 딸 넷을 기르기에 집안일에만 한세월 다 보냈다. 이제 아이들도 다 자라 하나둘 둥지를 떠나고 주름진 세월을 반추하듯 텃밭 하나를 가꾸노라 무더위도 마다하지 않는다. 한때 높고 바른 눈으로 세상일을 살펴보다가, 다 늙어 마음 밑바닥에 가라 앉은 알곡만 추려 책 한권 내리란 생각을 품고 몸살을 앓을 때도 있었으나, 스스로 내 눈은 높지 않다고 막일을 골랐다. 그러다가 1997년 우연히 전북예술회관에서 열리던 문학강의를 들어 본 것이 빌미가 되어 농사일 틈틈이 책을 찾았고, 지금도 우리말 우리글이 죽어간다는 돌아가신 이오덕 선생의 말씀을 가슴에 담고 글쓰기를 게을리 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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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어릴 때는 어른들 새벽잠 없는 내력도 몰랐고, 번개같이 움직이는 칼날 밑에서 실같이 이어져 내리던 실고추 내력도 몰랐다. 그리고 고단한 잠 깨워 이른아침 대참에 찬이슬로 얼굴 씻기시는 어머니 마음은 더더욱 몰랐다.
얼굴에 티끌 없이 자라라 비는 마음인걸.
뽀얀 베수건으로 얼굴 닦아 주시고, 그날 하루만 있는 일로 흰 박가분가루 코끝에서 남실대는 분단장 끝나면, 비단 옷고름 매 주시며,
“그네 뛸 때 조신하라.”는 당부는 귓전에 날리고, 마음은 송정 그네 밑으로 달려갔던 일들이 새삼스럽다.
--- p.13
우리 집 지붕을 굽어보는 사람은 대체 무슨 재주로 흙 한 줌 없는 지붕을 푸른빛으로 가득 덮었느냐고 묻는다. 방죽에 연잎이 가득 핀 것같이 푸른빛이 싱그럽다. 아침에 눈을 뜨면 그 싱싱함이 맨 먼저 나를 부른다. 덩굴손을 치켜들고 이슬방울 헤치며 달리는 듯한 호박순에선 물살 가르며 떠나는 뱃고동 소리를 떠올리기도 하고, 하늘로 오르는 용의 수염도 떠올린다. 호박잎에 맺힌 이슬방울에서 부서지는 햇살에선 내 어릴 적 할머니를 생각한다. 할머니는 맑게 빛나는 구슬을 이고 고개든 호박순에게 다가가 가느스름한 회초리를 높이 치켜들고 힘껏 내리치는 시늉을 하시다가 겨우 이슬만 떨구며,
“호박을 많이 내지 못하면 박살을 낼 것이다.”
하고, 사람에게처럼 엄포를 놓으셨다.
놀라는 나를 돌아보시며 할머니는,
“호박덩굴은 복날 매를 맞아야 호박이 많이 열리는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 p.78
아침에 창문을 여니 안개가 자욱하게 땅을 에워싸고 있다. 눈을 퍼붓듯 쏟아내고, 며칠 앞까지 쇳덩이로 얼려 놓더니, 이런 날도 오는구나!
“안개만 땅에서 올라와 온 땅을 적셨다”는 <창세기> 한 구절이 생각난다. 사람 힘으로는 어쩌지 못하는 조물주의 신비를 느끼는 마음이다.
지난가을 남편은 오른쪽 가슴으로 흐르는 큰 핏줄을 넓히는 수술을 받았고, 나는 봄부터 눈 속에 난 혹을 녹여내느라 병원을 들락거리다가 가을엔 어깨까지 다쳐 겨우 알곡만 챙겨 오고, 뒷마무리를 하지 못한 밭 생각이 난다. 거름으로 쓰려는 쌀겨도 깻묵과 섞어 물 뿌려 띄워야 하는데 겨우 받아만 놓았으니, 쥐들은 얼마나 잔치를 했을꼬……
--- p.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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