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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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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07년 06월 08일
쪽수, 무게, 크기 305쪽 | 456g | 140*209*30mm
ISBN13 9788932017860
ISBN10 89320178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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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관련자료 보이기/감추기

저자 : 김병언
1951년 대구에서 태어났으며, 서울대학교 언어학과를 졸업했다.
1992년 『문학과사회』에 「이삭 줍기」를 발표하며 문단에 나왔으며, 소설집 『개를 소재로 한 세 가지 슬픈 사건』 『천치의 사랑』과 장편소설 『木手의 칼』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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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지간히 지친 나는 일단 한숨을 돌려볼 요량으로 마른 풀 위에 주저앉았다. 서녘 하늘에서 노을이 꺼져가고 있었다. 전에 없이 서글픈 노을이었다. 설마 죽기야 할까 하는 근거 없는 낙관과 이러다 어이없는 죽음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절망감이 떨리는 가슴속에서 뒤엉켰다. 한편으로는 후회막급이었다. 하루 이틀도 아닌 단풍철을 빈둥빈둥 다 보내고 나서 왜 하필 춥고 낙엽 진 산에 올랐단 말인가. 나아가서 그동안의 내 삶이 얼마나 객기와 충동에 이끌려 왔던가…….
추위와 어둠이 내리는 겨울산은 참으로 막막했다. 만감이 교차하는 가운데 특히나 아직 미성년인 딸아이와 아들 녀석이 눈에 어른거렸다. 죽는 게 뭐 대수랴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다만 내가 죽더라도 누군가가 내 주검을 발견하기까지는 내가 사랑했던 사람들이 나의 죽음을 알지 못할 거라는 점이 다소 서럽게 느껴졌다.
그런데 그때, 그게 내 눈에 띤 사실이 너무나 황감하다. 거뭇거뭇한 잎사귀들을 매단 나뭇가지들과 윤곽이 흐려져 가는 능선들…… 실낱 같은 희망조차 찾아볼 수 없는 풍광 속에서 어떤 작은 사각의 빛이 문득 내 눈길을 끌었던 것이다. 나는 일종의 전율에 휩싸인 채 아스라한 그 빛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그것은 어떤 인공의 구조물 같았다. 그 구조물이 거의 다 소멸된 상태에 놓인 노을이 던지는 마지막 한줄기 빛, 그 빛을 한순간 반사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정신없이 그것을 향해 달려갔다. 그것이 익사 직전의 막막대해에 던져진 단 하나의 구명대처럼 느껴졌던 것이다. 그리고 그 앞에 섰을 땐, 실로 가슴이 벅차올랐다. 그것은 다름 아닌, 거기가 대승령의 정상임을 알리는 입간판이었다. 거기엔 친절하게도, 내가 하산할 방향으로 작정한 장수대까지 ‘2.7km’라는 화살표가 그려져 있었다.
고백건대, 요즘 내가 간절히 찾고 있는 것이 바로 그 대승령의 입간판 같은 것이다. 내 삶은 너무나 피폐하고 일그러져 버렸다. 나는 다시 길을 찾아야만 할 것 같다. 행여 이 소설집이 어떤 의미에서 그 입간판의 역할을 해줄까 기대하는 건 망상일까.

이 소설집을 발간해주는 문학과지성사에 감사한다. 그리고 해설을 써주신 양진오 선생님께도 깊이 감사한다. 마지막으로, 표제작의 실마리를 제공해주신 왕년의 협객, 김하영 숙부님께 머리 숙여 감사드린다.
2007년 5월
김병언
--- 작가의 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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