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자 파드마삼바바(32쪽 참조)와 관련된 여러 이야기에 따르면 그는 주술적 힘을 발휘하여 불교 전래 전의 티베트를 지배하던 토착 신들을 굴복시켰다고 한다. 그리고 토착 신으로 하여금 무서운 다르마 팔라('다르마의 수호자', 호법신)의 자격으로 불교 신앙을 지키게 했다. 수호신들은 티베트적 성격을 지니고는 있지만, 이름으로 미뤄볼 때 원래 인도의 신이었다가 히말라야 지역으로 신앙이 확산되면서 지방의 종교적 특징을 흡수한 것으로 보인다.
'위대한 시간' 이라는 뜻의 마하 칼라는 다르마 팔라 중에서도 인기가 가장 많다. 그는 처음에 힌두교의 시바 신 모습이었고, 시간ㅡ특히 필연적으로 모든 것을 파괴한는 시간ㅡ을 나타냈다고 한다. 티베트에서 마하 칼라는 과학이 수호자이자 천막의 수호자다. 천막의 수호자로서의 마하 칼라는 16세기에 몽골의 수호신이 되면서 현저하게 부각됐다. 몽골인은 천막에서 사는 유목민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하 칼라가 몽골의 수호신이 되도록 한 이는 3대 달라이 라마였다.
'죽음을 파괴하는 자'라는 뜻의 야만타카(대위덕大威德) 역시 다르마 팔라 중에서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전해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죽음의 신인 야마가 티베트의 지방을 휩쓸며 약탈하자 사람들은 지혜의 보살인 문수보살에게 용맹스러운 야만타카의 모습으로 나타났다. 야마는 그 힘에 굴복하여 다르마 팔라 중의 하나로 편입됐고, 지옥을 관장하게 됐다. 불교적 견지에서 이 이야기가 나타내고 잇는 것은 모든 무지를 영원한 지혜가 무찌른다는 것이며, 사물의 진면목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계속되고 있는 허상이 바로 죽음이라는 것이다. 야만타카는 학파의 창설자인 라마 총 카파가 문수보살의 화신으로 여겨지기 때문에 게룩 - 파의 수호신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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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다라는 불교적 우주관을 보여주는 지도와도 같다. 밖에 보이는 세계, 그 안에서 작동하고 있는 히, 세계를 주재하는 크고 작은 신들이 모두 나타나 있다. 우주의 모든 요소와 신적 존재, 그리고 작동하고 있는 힘은 곧바로 인간의 성격 및 신체와 대응된다. 외적 세계와 내적 세계가 긴밀하게 연관돼 있음을 앎으로써 수행자인 '시다Siddha'는 비상한 통찰력과 신비로운 능력을 갖게 도니다. 하지만 불교의 궁극적 목표는 지적 통찰과 신비스런 능력을 얻는 것이 아니라, 모든 존재가 결국 하나라는 것을 생생하고 흔들림 없이 깨닫는 것이다. 이 진리를 깨닫는 이는 지공의 지혜와 무한한 자비, 그리고 깊디깊은 평정함을 즐기게 된다. 만다라는 이런 깨달음의 상태를 추구하도록 도와주기 위한 것이다.
티베트 불교에서는 개인의 잠재력 계발을 종종 연꽃 모양의 만다라가 펼쳐지는 것으로 표현한다. 연꽃 잎마다 각각의 신들과 색깔, 신비스런 음音 혹은 만트라(진언)가 연결되어 있으며, 연꽃의 중앙은 절대적 존재의 자리다. 만다라와 함께 정교한 비의적 의례가 행해지며, 수행자는 오랫동안 영적 단련을 받는다. 그래서 만다라의 펼쳐짐은 수행자의 깨달음과 나란히 진행된다고 여져진다. 만약 제대로 수행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치러진 의례 전체가 슬모없어지며, 심할 경우에는 우주적 힘이 잘못 빠져나와 수행자를 갈가리 찢어버릴 수도 있다.
티베트 만다라는 규모와 형태가 매우 다양하다. 몇 장의 조그만 종잇조각에 인쇄된 것에서부터 입체적으로 정교하게 그려진 것. 그리고 갼체의 쿰붐 사원(36쪽 참조)처럼 사원 전체가 만다라인 것에 이르기까지 여러 모습을 지니고 있다. 종이에 그려진 만다라는 엄청나게 많이 만들어지곤 했지만 오래 보존되지 못했기 때문에 옛날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다. 반면 벽화와 탱화에 그려진 만다라는 비교적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탱화의 사면四面은 종종 천으로 장식되고, 그림을 보호하기 위해 덮개를 씌운다.
대부분 만다라의 공통점은 사각형안에 원이 있는 형태라는 점이다. 핵심적인 것은 그림 중앙에 있는 신이며, 만다라가 불러일으키려는 것이 바로 그 신이다. 그 주변에는 신의 후광 및 관련 신들이 있으며, 그런 존재는 흔히 연꽃 잎 위에 자리잡고 있다. 그런 신적 존재의 밖에는 사각형이 굵게 둘러져 있고, 사면마다 T자형 문이 그려져 있다. 문밖에는 몇 겹의 원이 연꽃 모양과 다른 문양(물결, 산)으로 장식되어 있다. 그 바깥에는 수호신과 성자를 나타내는 자그마한 상들이 일렬로 늘어서 있다.
놀랄 정도로 만다라의 모양이 다양한 까닭은 몇 가지 기본요소를 솜씨있게 서로 조합하고 정교화하기 때문이다. 이는 깨달음을 얻는 방법이 한 가지에 그치는 것이 아니며, 저마다의 만다라와 명상 기법을 계발해온 티베트 전통과 연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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