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인도에서의 마지막 오후를 뉴델리의 햇빛이 잘 드는 코나우트 광장 잔디밭에서 보내기로 했다. 자리에 앉자 광장의 나무 그늘에서 열두어 명의 몸이 일어나 나를 향해 움직이기 시작하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거지, 구두닦이, 마사지사, 점쟁이들이었다.
그들에게 둘러싸인 나는 준기라는 이름의 소년에게 구두를 닦도록 맡겼다. 다스굽타라는 남자는 내 목과 어깨를 마사지했다. 자기 이름을 알리 바바라고 말해 준 다른 남자는 내 손금을 읽었다.
“위가 안 좋은데 이젠 괜찮아요. 여자를 그리워하고 있군요. 곧 부자가 될 겁니다.”
이들 모두의 기술을 합친 요금은 2달러였다.
그들이 흩어지고 한 사람이 남았다. 사람들 뒤쪽에 서서 참을성 있게 미소를 지으면서도 말이 없는 그를 나는 진즉 알아보았다. 그는 두 걸음 정도 떨어진 잔디밭에 앉아 수줍게 웃고 있었는데, 그 표정은 꼭 뭔가 엄청나게 좋은 비밀이라도 있는 사람 같았다.
“안녕하세요, 바바.”
바바는 인도에서 힌두교 지도자를 뜻하는 존칭이다.
그는 속눈썹이 길고 이가 피아노의 상아 건반처럼 희고 고왔으며, 윗입술 위로는 세상에서 가장 가느다란 콧수염을 기르고 있었다. 그의 미소는 어찌나 달콤한지 인도의 관광포스터로도 잘 어울릴 것 같았다.
이름 또한 아주 그럴싸했다. 모하메드 알리. 그를 젊다고는 할 수 없었으니 아들이 셋이나 된다고 했다. 하지만 쾌활함이라는 것이 물물교환 될 수 있는 것이라면 나는 당장이라도 내 돈지갑과 바꾸고 싶었다.
터번 밑에 끼워 둔 면봉같이 생긴 것이 그의 거래 품목이었다. 그는 귀 청소부였다.
인도에서는 흔한 풍경으로, 귀 청소부들이 면봉과 기다란 족집게를 만지작거리며, 무릎을 꿇고 고개를 꼿꼿이 세운 서양인에게 실험실 연구원처럼 허리를 구부리고 있다. 인도 사람들은 이 돌팔이 의술에 몸을 맡기는 일이 거의 없고, 오직 관광객들을 상대로 하는 일이다.
이 일을 맡겨 본 관광객들의 말에 따르면, 하고 나면 분명 더 잘 들리더라는 것이었지만 나는 회의적이었다. 생각해 보라, 다른 곳도 아닌 인도의 공원이나 해변이나 기차역에서 처음 만난 낯선 사람에게 당신 귀에 뭔가를 쑤셔 넣도록 맡긴다는 것을!
모하메드 알리가 “귀 청소 하실래요, 바바?” 하고 물었을 때 나는 거절했다.
“아니, 내 귀는 내가 청소해요.” 나는 그의 터번 아래 삐죽이 나온 면봉을 가리켰다. “나도 그런 것을 쓰거든.”
“하지만 귀지는 딱딱해요.”
그는 주머니를 열어 작은 약병을 꺼냈다. 자리에 앉은 이래로 그의 얼굴에선 미소가 가시지 않았다.
“선생님의 귀에다 몇 방울 떨어트리고 나서 몇 분만 기다리면 제가 청소할 수 있어요. 어떤 사람들은 몇 년 씩 귀 속에 그걸 넣고 있죠, 그런 줄도 모르고요.”
하지만 그는 그런 식으로 다음에는 내 이마에다 크리슈나의 초상을 문신하겠다고 달려들지도 몰랐다.
“내 귀는 잘 들려요.”
그는 두 손을 모으고 거기 앉아서 미소를 머금은 채, 필요하다면 기꺼이 해가 지고 다시 새벽이 오고 다시 해가 질 때까지도 기다릴 태세였다.
“당신에게 일어난 일 중에 최고로 좋은 건 뭐였소?”
그는 잠시 생각했다.
“사람들이죠.” 그는 수첩을 꺼내보였다. “코나우트에 온 세계 모든 나라의 사람들 말이에요.”
“가장 나빴던 일은?”
그는 곰곰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의 미소로 보아 만일 그가 전혀 나쁜 일이 일어난 적이 없다고 말한대도 나는 그를 믿을 작정이었다.
마침내 그의 미소가 다소 흐려졌다, 알 듯 모를 듯.
“저는 읽지도 쓰지도 못해요.”
아주 어린 시절을 빼고 내 인생은 말로써 더럽혀졌다. 일간신문, 반납일자를 넘긴 책들, 반쯤 쓰다만 이야기들. 내 인생에서 글자를 빼면 뭐가 남을까? 그것들이 과연 무슨 소용이 있을까? 그런데 여기 모하메드 알리는, 세 아이를 둔 까막눈인 아버지는 나로서는 전혀 영문 모를 평온함을 온 몸으로 발산하고 있는 것이다.
<중략>
나는 똑바로 앉아 머리를 오른쪽으로 숙여 주었다. 모하메드 알리는 작은 약병의 코르크 마개를 열고 내 왼쪽 귀에다 맑은 물을 한 방울 떨어트렸다. 우리는 그것이 스며들기를 기다렸다. 우리 주위로 다시 시선이 집중되었다.
“조심해서 해요.”
모하메드 알리가 족집게를 꺼내자 내가 말했다.
“아주, 아주 조심할게요, 바바.”
그 순간 나는 아무런 느낌이 없었다, 단지 귓구멍이 조금 간질간질할 뿐. 그런데 놀랍게도 모하메드 알리는 족집게로 아주 섬세하게 잡아당겨 내 귀 속에서 고막 모양으로 돌돌 말린 갈색 부스러기를 빼내 내 눈앞에 보여 주었다.
내가 손바닥을 펴자 그가 그걸 손바닥에 놓았다. 양파 껍질 조각처럼 얇고 바삭바삭했다. 그가 내 간을 잘라내 내 앞에 보여 주었다 해도 그저 이보다 조금 더 놀랐을 것이다.
“거 보세요,” 그가 말했다. “모두들 놀란답니다.”
다시 모여든 남자들이 모두 웃음을 터트렸다.
“저 사람들 귀도 청소해 줍니까?”
내가 모하메드 알리에게 물었다.
“아니오, 저 사람들은 구경하기를 좋아해요.”
모하메드와 나는 잠시 강렬한 교향악이 울리는 것 같은 침묵 속에 조용히 앉아 있었다. 그때까지 꼭 누군가가 소라껍질로 내 귀를 덮어 씌워 놓았던 것만 같았다.
이제 모든 소리가 들려 왔다. 소들이 풀을 뜯는 소리, 뉴델리 저쪽 편에서 온 사람들이 이쪽 편 담벼락에다 오줌을 갈기는 소리, 기차역에서 소년들이 외치는 “차이! 차이! 차이(차 사세요)!” 소리, 공항 활주로에서 비행기 타이어가 구르면서 닳느라고 내는 비명 소리, 심지어는 저 위쪽 카시미르 지역의 빙하에서 눈이 녹아서 떨어지는 소리까지.
그 전까지는 절대로, 또 그 후로도 내 귀가 그렇게 시원하고 새롭게 느껴진 적은 없었다.
-‘뉴델리의 귀 청소부 알리’
--- 본문 중에서
여행을 뜻하는 ‘트래블(travel)’은 고통을 의미하는 ‘트래베일(travail)’에서 왔고, 트래베일은 어원을 거슬러 오르면 고대 로마인들이 고문 도구로 사용했던 ‘트리팔리움(tripalium)’이라는 라틴어에서 온 것이다. 이렇듯 사람들이 오랫동안 여행이라는 것을 인내와 고통이 따르는 일로 여겨 왔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방랑’이 즐기고 배우는 일이면서 동시에 정신을 고양시키는 일이라는 견해는 18세기가 되어서야 처음 나타났다. 그 시기에 ‘그랜드 투어’라는 것이 등장하면서 사람들은 비로소 즐거움과 경이로움을 찾아 더 넓은 세계로의 모험을 시작한 것이다. 최근까지도 여행 작가라는 많은 사람들은 여행문학을 인내심에 대한 실험 보고서로 생각하는지, 이미 3세기도 전에 나온 여행기들의 복사판이라고 해도 좋을 만한 여행기들을 써왔다.
이런 이유로 나는 한동안 너무 괴로워서 여행문학에 등을 돌리고 역사물을 쓰는 데 더 많은 시간을 보냈음을 고백한다. 사실 그 과정에서 나는 즐거이 탐닉할 수 있는 한층 더 편안한 세계를 발견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책에 실린 이야기들은 정말 다행스럽게도 다시 내 마음을 변화시켰다. 이들 글들이 강조하는 것은 경이로움과 즐거움이며,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놀라운 세계에 대한 놀라운 긍정이 연달아 등장한다.
이 모든 글들은 경험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인류와, 또 휴머니티가 존재하는 지구를 가장 고결하게 성찰하면서 쓰인 것들이다. 우리의 정신을 고양시켜 주는 보물 같은 몇몇 작품들은 끔찍한 고통의 산물이기도 한데, 앨리슨 라이트가 라오스의 교통사고에서 살아남은 과정을 기록한 이야기는 가장 좋은 본보기라 하겠다.
리처드 스털링이 이라와디 강에서 증기선을 타고 보여주는 낡은 풍속의 자취는 미얀마의 감춰진 아름다움을 사무치게 일깨워 준다. 브래드 뉴삼이 쓴 작은 달팽이관 속의 우주를 구원하는 천사, 뉴델리의 모하메드 알리에 관한 짧은 이야기는 또 얼마나 사랑스러운가.
이 책의 이야기 모두를 사랑한다고 나는 고백한다. 이 책은 아마 여러 해 동안 내 침대 머리맡을 지킬 것이다. 이 책은 정식으로 명예의 전당에 들어가 좋은 사람들이 쓴 좋은 책 시리즈에 오를 것이고, 작가나 편집자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오랜 동안 재미있고 가치 있는 책으로 인정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왜 세계가 본질적으로 놀랄 만큼 즐거운 곳인가를, 사람들은 어떻게 해서 한없는 즐거움을 계속 누릴 수 있는가를, 또 여행이 얼마나 재미있는 일인가를 보여 주는 생생하고도 즐거운 증거가 될 것이다, 그것도 아주 오랫동안을. 친애하는 앨리슨 양, 당신이 탄 버스가 똑바로 서서 길 위를 달리는 한은.
서문해설 - 사이먼 윈체스터
*옥스퍼드 대학에서 지리학을 공부하고 <콘데 나스트 트래블러>, <스미소니언>, <내셔널 지오그래픽>에 기고하고 있다. 여러 권의 베스트셀러를 낸 작가로 《옥스퍼드 영어 사전 이야기》, 《크라카토아》, 《세상을 바꾼 지도 이야기》, 《교수와 미치광이》, 《분열지대》 등을 발표했다.
--- 서문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