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29일
나는 지금 가족(아내, 아들(초5))과 함께 인도로 가고 있다. 비행기 안에서 보여준 항로는 '서울→제주→상해→무한→곤명→다카→델리' 이다. 중국 지나면 바로 인도다. 다카(방글라데시 수도) 역시 원래 '인도' 아니었던가. 불교가 중국을 거쳐서 우리에게 전해질 수 밖에 없었던 지리상의 이유가 새삼 느껴진다.
인도 시간(한국보다 인도는 3시간 30분이 늦게 간다)으로 자정이 못되어 델리의 '인디라 간디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출구 오른쪽의 환전 창구에서 여행자 수표 20달러를 855루피에 환전했다. 처음으로 루피(Rupee)를 구경했다. 공항 대합실로 나서는데, 훅 뜨거운 바람이 온다. 콧속을 파고드는 뭐라 말하기 어려운 냄새(인도 냄새)와 후끈한 공기로 인도는 우리를 맞이한다. 인도 사람들이 우루루 몰려서서 출구 쪽을 보고 있다. 그 사이에 건준(유학생)이 반가운 미소로 우릴 맞이한다.
건준이 맞춰온 택시를 타고 1시간도 더 넘게 달린다. 추적추적 비가 내리는 델리의 한밤이다. 올드 델리를 지나는데, 움막과 남루한 집들이 보이고, 잠 못 드는 사람들이 여기저기 모여 앉아 있다. 우리를 위해서 건준이 예약해 둔 왕덴 하우스(Wongdhen House)에 도착했다. (에어컨이 설치된 디럭스 룸 650루피)건준은 가고, 우리 가족은 눅눅한 침대 위에 피곤한 몸을 뉘였다. 그래도 쉬 잠들지 못한다. 낯선 땅의 첫날 밤이 불안한 탓이다. 그렇게 우리는 인도를 처음으로 만났다.
7월 30일
아침에 식당에서 10루피를 팁으로 주었다. 1루피가 30원이니까 300원을 팁으로 준 것이다. 그 일로 나는 아내에게 얼마나 '당했는지' 모른다. 처음 온 인도에서 불안에 떨고 있는 아내의 추궁인즉, 그렇게 후하게 팁을 주었으니 우리가 부자인 줄 알고 그들이 강도질이라도 벌이면 어떡하냐는 논리였다.
11시 30분, 건준이 왔다. 함께 점심을 먹고 원숭이 공원과 델리대학교를 갔다. 델리대학교 도서관 앞에 시꺼먼 옷을 입은 사람의 동상이 서 있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비베카난다(Swami Vivekananda, 1863~1902)이다. 아들과 나는 합장하여 절하며 존중의 뜻을 표하였다.
비베카난다는 엄밀한 의미에서 서양에 힌두교를 처음 전한 선교사이다. '가난한 자를 섬기는 일이 신을 섬기는 일'이라고 하면서 '실천적 베단타'를 주장한 힌두교의 개혁론자이다. 전통적 베단타학파는 오직 참된 실재는 브라만(아트만) 뿐이며 현실 세계는 모두 허깨비라 말한다. 그래서 현실 세계의 개혁을 위한 실천에는 소홀할 수 밖에 없었다고 비베카난다는 평가한 것이다. 그렇게 전통적 베단타가 소홀히 했던 '실천'을 비베카난다는 지향하게 된다. 그 길만이 인도 민중들을 구원하는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그런 맥락에서 비베카난다는 '붓다'를 높이 평가한다.
--- p.14
“자, 어디 가서 점심을 먹을까?”
인도에 와서, 한결같이 우리의 화두가 된 문제다. 아내는 그 답을 안내서속의 '모티마할' 에서 찾아낸다. 사이클 릭샤를 타고 모티마할로 갔다. 요금은 10루피다. 우리 셋, 도합 162kg을 싣고 힘겹게 페달을 밟는 마른 체구의 왈라에게 2루피 정도는 팀으로 더 얹어주자고 우리는 의논했다. 그러나 도착지에 이르러서 그는 느닷없이 30루피를 요구한다. 1인당 10루피라는 것이다. 그들이 즐겨쓰는 고전적 수법 중의 하나다. 언제 그가 그렇게 말했던가? 우리는 오토 릭샤도 15루피를 요구해서 안 탔는데 말이다. 결국 그가 우리에게 받아간 것은 10루피뿐이다. 여행 안내서의 가르침 대로, 우리는 10루피를 사이클 릭샤 위에 엊어놓고 우리 길을 가 벼렸다. 왜 그들은 그렇게 할 수 없는가? 2루피를 더 벌 수 있었는데…
--- 8월 24일 일기 중에서
“자, 어디 가서 점심을 먹을까?”
인도에 와서, 한결같이 우리의 화두가 된 문제다. 아내는 그 답을 안내서속의 '모티마할' 에서 찾아낸다. 사이클 릭샤를 타고 모티마할로 갔다. 요금은 10루피다. 우리 셋, 도합 162kg을 싣고 힘겹게 페달을 밟는 마른 체구의 왈라에게 2루피 정도는 팀으로 더 얹어주자고 우리는 의논했다. 그러나 도착지에 이르러서 그는 느닷없이 30루피를 요구한다. 1인당 10루피라는 것이다. 그들이 즐겨쓰는 고전적 수법 중의 하나다. 언제 그가 그렇게 말했던가? 우리는 오토 릭샤도 15루피를 요구해서 안 탔는데 말이다. 결국 그가 우리에게 받아간 것은 10루피뿐이다. 여행 안내서의 가르침 대로, 우리는 10루피를 사이클 릭샤 위에 엊어놓고 우리 길을 가 벼렸다. 왜 그들은 그렇게 할 수 없는가? 2루피를 더 벌 수 있었는데…
--- 8월 24일 일기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