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두 갈래의 시가 있다. 절망의 시와 희망의 시가 있다. 절망의 시는 모든 불안과 파국을 앞질러 제시함으로써 곧 닥쳐올지도 모를 위기상황을 지연시키고 방지한다. 안온한 현재를 들쑤시고 보장된 미래에 재를 끼얹고 덫을 친다. 희망의 시는 지치고 낙망해 이제 그만 그 자리에 주저앉으려는 이에게 한 바가지 시원한 생명수를 제공한다. 지금의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저 앞의 모퉁이만 돌아가면 환하고 따스한 새날이 펼쳐질 것이라 등을 두드린다. 그 두 갈래의 출발점은 서로 다른 듯 하나 가 닿고자 하는 종착점은 같은 하나의 갈망이다. 비극적 정황으로서의 절망을 미리 제시해 희망에 대한 갈구를 한층 드높이는 것, 꺼져가는 희망의 불씨에 쉬지 않고 추임새를 넣어 그 불씨를 잉걸불로 되살려놓는 것.
절망을 통한 변주는 세계가 너무 안일한 희망으로 들떠 있다는 인식에서 비롯되고 희망을 통한 변주는 세계가 너무 암울한 미궁 속을 헤매고 있다는 인식에서 비롯될 것인데, 이상인 시의 전략은 대체로 후자에 모아진다.
그대 살 속에 길이 있네.
그대 살 속에 절벽이 있네.
그대 살 속의 길 속에 절벽이 절벽 속에 길이
서로를 꽉 껴안고 있네.
아침 저녁
그대 살 속에 들면 화안한 그 절벽길.
- 「生」
시인의 첫 시집 『해변주점』(2001년, 문학과경계사)의 첫머리에 놓인 시다. 첫 시집은 대체로 시를 쓰게 된 동기와 동력, 시인의 세계관이 그 속에 녹아있는데 이 시에 배치된 길과 절벽이 나름의 무게로 다가온다. 길과 절벽은 공존할 수 없는 상반된 두 지향점이다. 길은 앞으로 펼쳐질 보랏빛 청사진을 제시하는 출발의 개념이며 절벽은 이제 그만 걸음을 멈추기를 종용하는 종착의 개념이다. 길은 무수한 꿈과 이상을 동반하지만 절벽은 그런 것들을 그만 포기하거나 수정하기를 지시한다. 길 위에서는 게으름을 피울 수도 뒷걸음질을 칠 수도 신이 나 펄쩍펄쩍 뜀뛰기를 해볼 수도 있으나, 절벽 앞에서는 뛰어내리거나 멈추는 단 두 가지 선택뿐이다. 딴전을 피우고 희희낙락할 겨를이 없다. 시 속의 ??그대 살??은 우리 생이 이루고자 하는 모든 목표일 것인데 그 목표는 때로 길이 되고 때로 절벽이 된다. 그것을 <시>라는 좁은 개념으로 바꾸어 읽어보면, 한 편의 시가 광활한 길을 열어주기도 하고 가파른 절벽의 위기를 제시해준다는 의미로도 읽힌다. 그것을 희망과 절망이라는 말로 바꾸어 읽어보면 의미는 더욱 분명해진다. 즉 시 속에 희망이 있고 시 속에 절망이 있다. 시의 희망 속에 절망이, 절망 속에 희망이 있다. 이번 두 번째 시집에 선보이는 이상인의 「산마을 학교」 연작시의 세계가 그러하다.
교실 한가운데 장작난로가 이글거리는
산마을 학교, 4교시 음악시간
키 큰 선생님의 오르간 소리를 타고
창 밖에는 싸륵싸륵 눈이 내리고
아이들은 비비새떼처럼 노래를 부른다.
송이송이 눈꽃송이 하얀 꽃송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하얀 꽃송이
아직도 도시락을 싸오지 못하는 몇몇과
서울 삼촌이 보낸 빨간 장갑 한 켤레를
서로서로 부러워하는 아이들,
앓는 꿈의 머리맡으로 눈이 내리고
바라 뵈는 산읍山邑의 한쪽 어깨가 다 젖는다.
나무에도 들판에도 동구 밖에도
골고루 - 나부끼네 아름다워라
교실은 열둘 더덕꽃 같은 입술 속에서
펑펑 쏟아지는 송이 눈으로 자욱해지고
전나무들이 파랗게 떨며 안을 기웃거릴 때
선생님은 오르간을 끄고
속살이 노란 고구마를 쪼개주면서
눈 녹은 목소리로 아이들에게 말했다.
눈은 하늘에서 내려와 골고루 나부끼지만
가 닿지 않는 삶의 골짜기도 있단다.
이 세상엔 그래서
깊은 가슴 속으로부터 내리는
따뜻한 사랑의 눈이 필요한 거란다.
선생님의 말씀 끝에 아이들은 다시
교실을 떠메 갈 듯 노래를 부르고
창밖의 나무들과 마을과 산들은
희디 흰 물감 속으로 서둘러 사라지고 있었다.
- 「산마을 학교 2 - 음악시간」
가난하지만 꿈을 잃지 않고 있는 아이들과 그런 아이들을 바라보는 선생님의 안쓰러운 마음이 교차하고 있다. ??창 밖에는 싸륵싸륵 눈이 내리고/아이들은 비비새 떼처럼 노래?? 부르는 정황은 한 편의 동화처럼 아름답지만 ??아직도 도시락을 싸오지 못하는 몇몇과/서울 삼촌이 보낸 빨간 장갑 한 켤레를/서로서로 부러워하는 아이들??의 처지에 의해 현실은 곧 슬픈 동화로 전락한다. ??나무에도 들판에도 동구 밖에도/골고루 - 나부끼??는 눈송이는 목청껏 불러보는 노래에서나 가능하다. 균등하게 꿈(눈송이)이 분배되지 못하는 현실에 대해 선생님은 ??눈은 하늘에서 내려와 골고루 나부끼지만/가 닿지 않는 삶의 골짜기도 있??다는 말로 아이들을 위로한다. 그런 ??선생님의 말씀 끝에 아이들은 다시/교실을 떠메 갈 듯 노래를 부르??는데 그 힘찬 합창은 현실을 극복하려는 의지가 담긴 것이기도 하고, 쉽게 달성하지 못할 목표 앞에 나약해진 스스로를 달래보는 합창이기도 하다.
「산마을 학교」 연작은 시골 분교를 무대로 한 것이지만 그 공간 안에 지금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여러 문제들이 투영되고 있다. <안개비>에서는 도시로 전학 가 변두리 삶에 편입되거나 병든 아버지를 간호하는 제자 생각에 마음이 무거워진 스승의 심정을, <탄광촌 아이>에서는 싱그럽던 꿈이 탄더미에 매몰되어버린 불행이, <한솔이 일기>에서는 산업재해 당한 아버지 이야기를, <가정방문>에서는 결손가정의 제자를 바라보는 스승의 마음이 담겼다.
이 우울한 풍경들과 더불어 「산마을 학교」 연작은 시골 분교에 피어나는 희망의 기운을 함께 제시하고 있다. <솜양지꽃>에서는 ??언 화단을 뚫고?? 어김없이 찾아온 ??솜털 보송보송한 노오란 봄??을, <아이들의 봄>에서는 아이들 수만큼 자꾸 줄어드는 꿈을 새롭게 길어 올리고 있는 교사의 노력을, <칡꽃>에서는 상처를 어루만지는 ??칡넝쿨 그 여린 손들이 받쳐 든/보랏빛 미소??를, <더덕꽃>에서는 분교 돌담에 피어나 ??더 맑고 향기로운?? 희망의 기운을, <태풍주의보>에서는 풍파를 이겨내려는 극복의 의지를, <호재의 책가방>에서는 비상하고픈 아이의 열망을, <도설봉>에서는 운동장까지 내려온 산봉우리와 악수하는 아이들의 호연지기를 그렸다. 「산마을 학교」 연작에는 이처럼 밝고 긍정적인 요소가 더 많고 결여와 훼손을 담은 시의 끝자락에도 대부분 희망의 출구를 마련해 놓고 있다.
시인의 희망 찾기는 고단한 오늘의 삶을 북돋우고 위무할 묘약을 찾아가는 과정으로 이해할 수 있겠는데, 그 현장에 직접 팔을 걷어붙이고 뛰어드는 실천력도 보여주고 있다.
장마가 활짝 걷힌 토요일 퇴근길
황길역을 지나 초남에 들어서기 전
다섯 분의 청둥오리 가족을 만났지요.
큰놈이 앞장서고 엄마오리 뒤에 서서
국도변을 걸어오시는데, 차란 차들은
씽씽 달리지, 사고 나겠더라고요.
그래 급정거하고 뛰어가서
새끼오리님들을 한분씩 도로 옆 풀숲으로
모셨지요. 도로가에 쳐둔 작은 돌담을
못 넘어가서 계속 걸어오고 있었던 거예요.
머리 위를 날며 울부짖는 엄마오리
내가 마지막 오리님의 볼에 입을 맞추자
행글라이더처럼 건너 논두렁으로 날아가 앉더니
새끼들을 애타게 부르는 거예요.
물론 새끼 오리님들은 장대 같은 풀숲을 헤치며
쏜살같이 달려들 갔지요.
다시 차를 몰다가 백미러를 보니
거기 엄마오리가 사뿐사뿐 날고 있었어요.
두 손을 너울너울 흔들어대면서
- 「참 아름다운 인연」
도로변에 친 시멘트벽에 막혀 위험한 행군을 하고 있는 청둥오리 가족을 안전한 풀숲으로 돌려보내고 있는 이 시는 시인의 자리가 어디여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같은 정황에서 무관심과 방관의 입장이 되기 쉽고, 시인들 역시 바라보는 자의 입장에 설 확률이 높다. 왜냐하면 몸을 움직여 행동하는 쪽에 비해 거리를 유지하는 견자의 입장이 훨씬 더 유용한 시적 상상력을 도출해 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행동하고 실천하는 쪽은 인간의 예의에는 합당할 수 있으나 여러 정황의 가능성과 상상들을 차단하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그런데 그는 급하게 차를 세우고 그들을 향해 뛰어간다. 질주하는 차량들 사이에서 오리 가족이 사고를 당할 것 같은 생각에 본능적인 행동이 뒤따른 것이었다. 그런 경험에 의해 쓰여진 이 시의 골격은 실제 상황에서 크게 벗어나 있지 않은 듯하다. 엄마와 새끼 오리들은 잠시 동안의 혼란을 거쳐 안전지대로 돌아갔고 그는 다시 차를 몰고 가며 어미 오리의 감사 인사를 받는다.
이와 같은 해피엔딩을 이끌어낸 시인의 실천은 훌륭했으나 독자에 따라서는 다소의 불만을 가질 수도 있다. 예측할 수 있는 정답보다는 미처 예측하지 못했던 우여곡절의 과정이 독자에게는 더 큰 재미로 다가올 수 있기 때문이다. 시인 또한 그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나 위와 같은 상황에서 그런 저울질은 전혀 의미가 없었다. 위험에 처한 오리들을 구출하는 것이 급선무였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이상인은 머리로 궁굴리는 시보다 몸이 시키는대로 받아 적는 정직한 시인이다. 머리는 가상의 조건들을 끊임없이 추리하고 생산하지만 몸은 현재와 과거의 실재했던 경험들 하고만 소통하고 반응한다. 이상인 시의 촉수는 그래서 미래보다는 과거와 현재를 향해 있다. 앞으로 나아가지 않고 다음과 같이 천천히 거슬러가고 돌아간다.
노을이 지는 강둑길을 걸어가는
당신의 뒷모습을 바라봅니다.
핏빛 노을은 쓰러지는 법을 일찍 배워버린
갈대들을 적시며 흐르고
하루의 노동을 마치고 돌아가는
무거운 그림자 끝으로
끝내 해결할 수 없는 아픔들이 부서집니다.
지푸라기 과자봉지 찌그러진 깡통을 안고
두껍게 얼어붙은 강심만큼이나
봄이 찾아와 줄 것 같지 않은
입춘 무렵
하루 종일 비닐하우스 속의 딸기를 매만지고
아직은 짱짱한 하늘 바라보며
노을 든 마을로 돌아가는 당신의 뒷모습에
시리도록 하얗게 피어나는 딸기꽃송이들
살아오면서 흘린 눈물만큼이나 하루의 끝은
항상 지쳐있어 더욱 휘청거리고
그래도 못다 피운 꽃들을 위하여
텅 빈 마을로 서둘러 돌아가는
당신의 이름을 힘주어 불러봅니다.
- 「귀로」
이 시에 등장하는 ??당신??은 지금 노을 지는 강둑길을 걸어가고 있는데 그것을 바라보는 시인의 위치는 당신의 뒷모습이 보이는 뒤편이다. 시적 대상보다 앞서지 않고 뒤처져 가는 행보는 그의 시에서 일관되게 보이는 관점인데 그 덕분에 시인은 갈대를 적시는 핏빛 노을과 하루의 노동을 마치고 돌아가는 무거운 그림자와 해결할 수 없는 아픔들이 부서지는 저녁풍경을 보는 행운을 누린다. 늦게 가고 나중에 가는 시인의 느린 행보는 빠르게 가고 먼저 가기를 원하는 세상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빠르게 가는 것은 느린 것들을 뛰어 넘거나 짓밟는 행위가 되기 쉽고, 먼저 가는 것 역시 자연의 규칙과 순리를 거스르는 폭력적 결과를 낳을 우려가 높다. 시인은 빠르게 먼저 가느라 배설해놓은 문명의 부산물들과 그 질주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해 도태된 농촌의 현실을 ??지푸라기 과자봉지 찌그러진 깡통??과 ??두껍게 얼어붙은 강심??으로 나타내기도 하고, 그 상실과 박탈감을 털고 다시 일어나는 모습을 ??하루 종일 비닐하우스 속의 딸기를 매만지고?? ??못다 피운 꽃들을 위하여/텅 빈 마을로 서둘러 돌아가는?? 바지런한 일상으로 포착하기도 한다. 앞의 입장이 농촌보다 앞서가는 도시의 시각이 낳은 결과라면, 뒤의 입장은 농촌을 우러러보며 농촌의 뒤를 따라간 결과로 얻어진 것이다. 대상보다 앞서고 내려다보는 세계는 보는 자에 의해 재편되고 왜곡된 세계를 낳고, 대상을 따라가며 우러러 보는 세계는 대상이 가진 속성을 귀하게 다루고 살핀다. 그 지극한 예의가 이상인 시에 있다.
모두들 둘러서서 바라보고 있었다.
포크레인 기사가 무쇠주먹을 들어 올릴 때
시장건물은 죽음을 앞둔 늙은 짐승처럼
몸을 부르르 떨며 잔뜩 웅크렸다.
바지락을 까서 팔던 진상댁
청과물의 성만이네, 떠벌이네도
숨죽이며 마른 침만 삼켰다.
무쇠주먹이 시장 입구 왼편을 치자
심하게 비틀거리더니 반대쪽 귀에서
푸석 매운 먼지가 피어올랐다.
그리곤 순식간이었다.
거죽이 뜯겨져 나가고, 능구렁이처럼
도사리고 있던 통로와 상점자리들이
십 수 년 묵은 욕지거리를 뱉으며 튀어나왔다.
추적추적 비가 내리기 시작했고
꽂히는 비수 사이로 무수한 생각들이
갈 곳을 몰라 털썩 털썩 주저앉거나
철거반에 쫓겨 이리저리 몰려다녔다.
시장바닥 속에 뒤죽박죽 매몰되어버린
끊일 새 없던 입소문과 장기농성,
시멘트로 봉합된 온갖 악다구니들이여.
이제 번듯하게 들어설 중마주차장에는
밤이면 형형색색의 차들이 모여들어
전혀 생소한 꿈을 꾸며 잠들 것이다.
- 「중마시장 철거기」
오늘의 기술문명 사회가 보여주는 변화의 속도는 시적 상상력을 추월하고 있고 어떤 면에서는 시적 세계관을 조롱하고 있기까지 하다. 시가 추구해온 꿈과 이상이 얼마나 보잘 것 없고 진부한 것인지를 최근 야기되는 엽기적인 사회현상들이 잘 말해주고 있다. 시의 위기는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기 싫어하는 시 내부의 문제와 함께 엄청난 속도의 파급력을 가진 새로운 장르들에 의한 외부적 요인에도 원인이 있다. 그것을 다 소화시키기에 시의 용량이 너무 작고, 그 당돌한 가치들을 순순히 받아들이기에 시의 정신이 아직 고답적이다.
앞의 시는 그런 옛것과 새것의 충돌이 빚은 잠시 동안의 혼란을 그리고 있다. 포크레인 기사의 무쇠주먹과 죽음을 앞둔 늙은 짐승 같은 시장 건물은 새 것과 옛 것의 대치상황을 보여주고 있다. 무쇠주먹 포크레인은 무엇을 때려눕히거나 부수기 위해 출몰했고 낡은 시장 건물은 두려운 순간 앞에 몸을 떨며 잔뜩 웅크리고 있다. 그리고 무쇠주먹의 철거반 앞에 재래시장의 힘은 너무도 미미했다. 숨죽이며 마른 침만 삼키다가 푸석 매운 먼지를 일으키며 주저앉는다. 그렇다고 낡은 것이 강건한 새것 앞에 그대로 굴복하고 물러난 것은 아니었다. ??십 수 년 묵은 욕지거리??가 튀어나오고, 곧 없어질 운명을 슬퍼하듯 ??추적추적 비가?? 내렸다. 그보다 앞서 ??끊일 새 없던 입소문과 장기농성/시멘트로 봉합된 온갖 악다구니들??도 있었다. 그리고 시인은 그 장기 농성과 악다구니 위에 반듯하게 들어설 새 시장에 깃들 ??전혀 생소한 꿈 ??을 예감하고 있다. 전혀 생소한 꿈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반듯하게 잘 정비된 화려한 꿈일 수도 있지만 수십 년 수백 년 동안 유지되었던 재래시장의 푸근한 삶을 짓뭉개는 아주 낯설고 허튼 꿈이 될 가능성이 높다. 옛것이 친숙한 수평의 꿈이라면 곧 들어설 새것은 생경한 수직의 꿈이 될 공산이 크다. 다음의 시에서 그런 우려는 보다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그는 몸속에 감겨 있던 길들을
일평생 멍석처럼 펴고 다녔던 것인데
이제는 더 이상 풀어줄 길이 없어서
죽어가고 있는 것이리라.
아침 햇살이 이마에 속살거리던
아름다운 출발을 기억하고 있다.
힘차게 가속페달을 밟으며
이 세상을 새로운 길들로 수놓으리라
다짐하던 목소리가 경쾌했었다.
누군가 펼쳐 놓은 길 위에
더 반듯한 길들을 깔기도 하고
도심을 벗어나 멋들어진 강변길을 내거나
들판을 지나 산길을 구불구불 펴며
조심조심 내려오기도 했던 것이다.
거의 대부분의 길들은
집과 직장을 오가며 깔아버려서
이제 자기만의 시간이 생기는가 싶자
낡은 팔다리에 순간적으로 마비가 오고
내장들도 삭을대로 삭아버려
크렁크렁 일방통행 길도 힘겨워했다.
남들은 그런 그를 보며
마음씨 좋게 세상에 길을 다 깔아주어서
그럴 거라고들 입을 모았지만
그는 숨죽인 듯 알고 있었다.
평생을 허둥대며 욕심껏 말아온 길들에게
꼼짝없이 눌려 죽어왔다는 것을
- 「폐차」
얼마 전 10여년 가까이 몰고 다닌 경차를 폐차하면서 큰절을 올린 적이 있다. 새 차 앞에 음식을 차려놓고 무사고를 비는 고사를 올리는 게 일반적인 관행이지만 나는 그동안 우리를 무사히 데리고 다닌 차의 노고에 감사하며 큰절을 올렸다. 이런 생각은 비단 자동차에 국한 된 것이 아니어서 나는 그동안 쓰던 물건을 버릴 때에도 몇 번을 주저하며 미루고 미루다가 어쩔 수 없는 상황이 되어서야 밖으로 내보낸다. 비록 말 못하는 물건이지만 우리를 도와 같이 살았던 한 식구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는 것이다.
이상인 역시 그런 모양이다. 폐차될 지경에 이른 낡은 차를 생각하는 방식이 깍듯하다. 여기서의 자동차는 생명이 다한 고철 덩어리가 아니라 ??몸속에 감겨 있던 길들을/일평생 멍석처럼 펴고 다??닌 하나의 인격체였다. 자동차의 종말은 기계 장치의 종말이 아니라 ??더 이상 풀어줄 길이 없어??진 존재의 종말이었다. 그 존재는 비록 낡고 녹슬었으나 ??아침 햇살이 이마에 속살거리던/아름다운 출발??과 ??힘차게 가속페달을 밟으며/이 세상을 새로운 길들로 수놓??던 기억이 내장된 엄연한 생명체다. 그리고 자신이 가고 싶었던 길보다 ??누군가 펼쳐 놓은 길??, 운전자가 이끌었던 길을 갔고 ??이제 자기만의 시간이 생기는가 싶자/낡은 팔다리에 순간적으로 마비가 오고/내장들도 삭을대로 삭아?? 폐기처분될 위기를 맞았다. 차의 소망은 세상에 좋은 길을 깔아주고 싶은 것이었으나 그 소망에 근접하지 못하고, 평생을 허둥대며 욕심껏 말아 올린 인간의 길에 꼼짝없이 눌려 죽는 운명에 처하고 만 것이다. 우리의 생이 대체로 그러하지 않을까. 애초 꿈꾸었던 길로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하고 줄곧 엉뚱한 길을 달려 폐차 지점까지 가고야 마는 경우가 허다하지 않은가.
이상인의 시는 이처럼 희망과 절망을 적절하게 변주해낸다. 그가 세운 시의 집에는 살짝 드리운 그늘을 밀어내며 환한 햇살이 비치고, 그 햇살에 나른해질 즈음 슬금슬금 그늘이 다가와 등을 두드린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그 모든 것을 감싸 안을 따스한 온기를 온돌방의 군불처럼 지펴놓고 있다.
절망에 감염되지 않고 희망에 인색하지 않은 이상인 시의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그것은 아마 다음의 시처럼 아직 그의 곁에 존재하는 착하고 바지런한 이웃과 그의 주변을 감싸고 있는 푸르고 건강한 자연의 작용일 것이다. 아직 훼손되지 않은 순정을 가진 이웃과 자연의 기운에 힘입어 앞으로 이상인의 시에서 ??바다의 귓밥??같은 깨가 ??먼 우레 같은 뱃고동소리??가 더욱 신명나게 터져 나오기를 바란다.
바다의 귓밥이 영글어 쏟아지고 있다.
허리를 반쯤 파도에게 주어버린
선무당바위 옆
남촌댁이 잘 익은 한 묶음의 바다를
거꾸로 잡고 털고 있다.
잔잔하게 쏟아지는 흰 물결들
수평선이 푸른 엉덩이를 몇 번 흔들더니
순한 눈을 끔벅이며 쳐다본다.
그동안 바다를 향해 활짝 열어놓았던
이쁜 깨꽃들의 둥근 통신망 속에는
우럭과 도다리들의 가쁜 숨결소리
먼 우레 같은 뱃고동소리와 갈매기소리
수년 전에 바다가 된 벌뫼양반의 기침소리까지도
낱낱이 잡히고
그것들은 뜨거운 한 계절을 그리움으로 여물어
남촌댁이 휘두르는 세월의 매를 맞고
쏴아 쏴아 쏟아지고 있는 것이다.
- 「참깨를 터는 남촌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