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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까닭에

사랑하는 까닭에

: 이효석 산문집

이효석 | 예옥 | 2007년 07월 26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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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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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07년 07월 26일
쪽수, 무게, 크기 228쪽 | 359g | 크기확인중
ISBN13 9788995761274
ISBN10 899576127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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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중대하고 긴요한 점은 그곳에서는 나는 다른 해수욕장에서와 같이 귀찮은 해수욕복을 입을 필요가 없었음이다. 몸에 실 한 바람 걸치지 않고 유유하고 자유롭게 모래 위를 거닐었다 바닷물에 잠겼다 하면서 긴 날을 결코 무료하지 않게 지낼 수 있었던 것이다. 무료하지 않음은 나의 결혼에서 왔던 것이다. 나는 원시적 자태로 처녀해변에서 날마다 결혼한 것이다. 태양과 바다와. (28쪽)

서글픈 생각을 부둥켜안고 돌아오노라면 풀밭에 매인 산양이 애잔하게 우는 것이다. 제법 뿔을 세우고 새침하게 흰 수염을 드리우고 독판 점잖은 척은 하나 마음은 슬픈 것이다. 이 세상에 잘못 태어난 영원한 이방의 나그네같이 일상 서마서마하고 마음 여리게 운다. 집에 돌아오면 나도 그 자리에 풀썩 쓰러지고 싶은 때가 있다. 산양을 본받아서가 아니라 알 수 없는 감상이 별안간 뼈 속에 찾아드는 것이다. 더욱 두려운 것은 벌레소리니 가을벌레는 초저녁부터 새벽까지 줄달아 운다. 눈물 되나 짜내자는 심사일까. 나는 감상에 정신을 못 차리리만치 어리지는 않으나 감상을 비웃을 수 있으리만큼 용감하지는 못하다. 그것은 결코 부끄러울 것 없는 생활의 한 영원한 제목일 법하니까. (79쪽)

어찌 사치한 스포츠가 아니랴. 100원을 얻으려면 원고지 200매를 채워야 하고, 원고지 200매를 채우려면 피나는 노력의 한 달을 허비해야 한다. 즉 스키는 한 달 노력의 값인 것이다. 확실히 비싼 대상代償이다. 한 달 노력에 드는 육체와 정신력의 소모를 한겨울 동안의 스키의 단련이 설령 회복시켜 준다고 치더라도 비싼 대상임에는 틀림없다. 여름의 수영은 수영복 한 벌만을 가지고 강에 나가면 그만이요 운동장에서의 축구는 신은 신발 그대로 족한 것이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다고 해두고 그 숫자가 결코 스키에 대한 나의 흥을 덜어주지는 못하며 도리어 더욱 불지를 뿐이다. 사치 여부를 묻지 않고 나는 스키를 시작할 것이다. 좀 있으면 신품이 온다니까 눈 오는 날 아침 즉시로 나는 점원에게 한 벌을 날라오도록 분부할 것이다. 눈 오는 날이 내게는 전에 없이 유달리 기다려진다. (88쪽)

수백금의 고물과 한 마리의 얻어온 고양이와―두 가지가 다 사랑하는 것일 때 눈앞에서 그 하나를 멸하게 된다면 물론 나는 고물을 버릴 것이다. 고양이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 도기를 아낌없이 없애버릴 것이다. 사실 고양이를 잃어버리느니보다는 만약 그 죽음을 대신할 수 있는 것이라면 차라리 도기를 깨뜨려버렸더면 한다. 고양이를 잃었음은 이 가을의 큰 슬픔이다. (201쪽)
---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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