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음악 산업의 전근대성이 '국내' 기업 중심의 제작에 기인한다는 1장 서두에서의 주장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을 수 있다. 그렇지만 국내 기업의 음반 제작 관행이 개선되지 않는다면 배급과 유통의 현대화가 이루어진다고 하더라도 음반 판매의 불균형성이 자동적으로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은 분명히 말할 수 있다. 즉, 배급과 유통의 문제뿐만 아니라 기획과 제작의 문제가 현재 비주류나 대안을 논하는 사람들의 불만의 핵심이다. 이는 배급과 유통의 개혁만으로 기획ㆍ제작의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으리라는 것을 의미한다.
재정, 홍보, 배급은 집중화된 관리가 효율적인 반면, 기획과 제작은 소규모의 분권적 단위에서 수행하는 것이 효율적이라는 3장에서 검토한 주장을 수용한다면, 기획과 제작이 소규모의 기획사에 의해 이루어지는 현실을 문제 삼기는 곤란하다. 지금의 주류 대중 음악을 기획하는 주체들의 활동은 음악 컨텐츠의 개발이라기보다는 스타 매니지먼트에 가깝고, 이 때 스타는 '레코딩 스타'도 '라이브 스타'도 아니며 'TV용 연예인'(이른바 '방송인')에 가깝다. 이는 대중 음악의 속성상 어느 정도 불가피한 면이 있지만 현재의 상황은 정도가 지나치다는 견해다. 이는 소규모 기획사라고 하더라도 메이저와 각종 하청 계약을 체결하고 잇는 선진국의 상황과는 대조적인데, 국내외 기획사들은 음반사로부터 '변제 의무가 있는 자금을 대출받는 것' 이외에는 아무런 안정적 관계를 맺지 못하고 있다는 이유도 작용한다.
여기서 다시 한 번 국내 부문과 외국 부문으로 양분된 한국의 로컬 시장의 특징에 대해 점검할 필요가 있다. 앞서 외국의 사례를 언급할 때 신인 아티스트를 발굴하는 것은 인디 레이블의 몫이라 하더라도 이들을 아웃소싱하여 주류의 스타로 육성하는 것은 메이저 레이블의 몫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그렇다면 다국적 기업이 이미 진출해 있는 상황이라면 '로컬 시장의 발전에서 다국적 기업의 역할'에 대해서도 재고할 필요가 있다. 더욱이 국내 부문이 배급면에서의 전근대성뿐만 아니라 음악인의 발굴, 음악인과의 계약 관계, 레코딩ㆍ믹싱 과정 등 제작면에서 낙후성이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라면 다국적 기업을 포함한 외국계 기업과 다양한 형태의 전략적 제휴를 모색하는 일도 신중히 검토할 수 있다.
그렇지만 현재로서는 국내의 메이저 음반사와 다국적 직배사 모두 각자 확보한 시장의 수성에 만족할 뿐 파트너십을 위한 적극적 시도는 보이지 않고 있다. 단, 일본 음악의 전면 개방을 앞둔 상태에서 일본의 메이저 기업과의 파트너십이 관찰되며 이는 앞으로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이런 경우는 개별 기업 차원의 파트너십이 시장 구조의 전반적 개혁으로 이어지지는 못한다는 한계가 있다. 또한 국내외 메이저들 사이의 파트너십의 증가는 국제적 독과점 현상을 강화시킬 것이라는 우려도 존재한다.
이런 위로부터의 제휴가 아닌 새로운 현상이 있다면 국내외 음반을 엄격하게 구분하지 않고 음반 제작 및 배급 사업에 참여하는 새로운 마이너 레이블들의 탄생이다. 이들은 다국적 직배사와 하청계약을 맺어 특정 음반의 홍보ㆍ배급을 대행하거나, 다국적 메이저 레이블의 통제 외부에 있는 음반을 라이선스 배급하는 사업과 더불어 국내 아티스트의 개발과 음반 제작 사업도 추진하고 있다. 이 경우 외국 음반이 경우는 다국적 직배사의 '안이한' 판매와는 달리 국내의 취향을 고려한 적극적 마케팅이 이루어질 가능성이 크고, 국내 음악인과의 계약 및 수입 분배가 보다 투명해질 전망이다. 앞에서 논한 국내의 인디 레이블과 더불어 이들 마이너 레이블들의 활동은 '아래로부터' 전개되는 새로운 움직임으로서 주목할 가치가 있다.
그렇지만 그래도 남는 문제가 있다. 현대적이고 투명한 제작 방식을 선택한다고 하더라도 현실적으로 음반을 홍보할 수단이 지상파 방송 외에 없다면 이런 변화의 의미는 제한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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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두에서 논한 사실들을 고려한다면 음악 산업은 '국내 부문'과 '외국 부문' 아시의 경계가 뚜렷할 뿐만 아니라 국내 부문에서 제작되는 대중 음악의 '동질성'도 강한 편이라서 '국민' 이외에 별도의 로컬을 논할 가치는 그다지 크다고 볼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 부문의 시장 점유율이 크고 다국적 직배사의 역할이 상대적으로 작다는 사실이 '지구적 음악 산업에 대한 국내 음악 산업의 자립성'을 의미한다고 쉽게 단정할 수는 없다. '글로벌 속의 로컬'아라는 대안적 모델은 지구적 음악 산업의 영향력의 정도 및 수준에 관한 것이 아니라 영향력이 행사되는 방식과 양상에 관한 것이고, 로컬의 의미를 세롭게 해석하는 것이다.
따라서, 한국 음악 산업의 특징은 '지구화의 양적 정도가 낮은'것이라기보다는 지구화 과정의 결과 발생한 국지화의 질적 양상으로 보아야 한다. 이는 국내 부문에서 생산되는 음악의 대부분이 '토착적'이거나 '국민적'이라가보다는 국제적 대중 음악을 모방한 것이거나 변형한 것(다소 감정적 표현이지만 이른바 '아류')이 많다는 사실에서 발견된다. 이런 모방과 변형은 역설적이게도 국내 음반의 시장 점유율이 외국 음반을 압도했던 1990년대에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나아가 국내 음반 비중의 증대가 앞에서 언급한 불투명하고 전근대적 관행에 의해 확보된 것이라면, 이는 개혁과 개선의 대상이지 '국민 문화의 보존을 위해 장려할 대상'은 될 수 없다.
결론적으로 한국의 음악 산업을 '국민적(일국적) 산업'이라고 계속 부를 수는 있더라도 그 의미는 새롭게 해석되어야 한다. 즉, 한국을 포함한 각국의 국민적 음악 산업들은 세계 시장에서 서로 경쟁하는 산업이라는 의미보다는 다국적 음악 산업의 지구적 네트워크속에서 로컬하게 구성된 산업이라는 의미에 가깝다. 각국의 산업들 사이의 경쟁과 협력이라는 전통적 시각보다는 글로벌 네트워크의 일반적 지배 아래 로컬 산업이 다양한 반응이라는 새로운 시각이 현실을 파악하는 데 더 유효하다는 뜻이다. 문제는 '로컬' 음악 산업들도 서로 이질적이므로 한국의 특수성을 해명하는 것이고, 이것이 이 글의 중요한 과제 가운데 하나다.
'1980년대 말 이후 한국의 음악 산업'을 주요 대상으로 함에도 불구하고 '이전 시기'와 '외국'에 대한 논의가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는 단지 과거의 다른 나라의 사례 혹은 추종해야 할 전범이라는 의미라기보다는 한국의 로컬 산업의 지구적 환경을 고찰하기 위해서다. 2장에서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선진국의 경험을 검토하면서 음악 산업의 '이상적' 시스템을 소개하는 것은 이런 의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3장은 글로벌 컨텍스트에 대해 설명하고 4장은 (한국의) 로컬한 컨텍스트를 분석할 것이다. 구체적으로 3장은 1980년대 이후 음악 산업의 지구화 과정 및 그 하나의 전략으로서 직배 시스템의 효과에 대해 논하고, 4장은 이런 지구적 환경의 변화속에서 한국 음악 산업의 로컬 시스템이 어떻게 변해 왔는가를 검토할 것이다. 이상의 분석을 마친 뒤에는 한국 음악 산업의 시스템에 대한 대안들을 소개하고 이에 대해 평가해 본다.
--- pp.44~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