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곡은 베토벤의 최대 걸작 협주곡일 뿐 아니라, 고금의 모든 협주곡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명품이다. <황제>라는 표제가 어떤 연유에서 기인되었는지는 몰라도, 이 곡의 분위기를가장 적절히 대변해주는 기막힌 표제라 할 것이다. 곡의 당당함과 그 장엄한 분위기가 마치 황제의 위엄을 연상케 하는 것이다.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 5개 가운데서 맨 끝 번호인 이 황제 협주곡은 4개의 협주곡 창작을 통한 정점에 다다른 작품으로, 거의 완벽한 구성의 내용과 충실한 음악적 내용을 간직하고 있다.
곡은 1808년부터 다음해 사이에 작곡되었는데, 이때는 프랑스 군이 빈을 점령하였던 시기였다. 초연은 1811년 라이프치히에서 슈나이더의 연주로 이루어졌고, 연주는 대호평이었다. 헌정은 루돌프 대공에게 이루어졌다. 1812년 빈에서는 체르니의 연주도 있었으나 별로 평이 좋지 않았다. 이 5번 협주곡도 4번과 마찬가지로 베토벤 생전에는 빈에서 다시 연주되지 않았다. 이상하게도….
제1악장은 독주 피아노의 카덴짜로 시작하는 독보적인 스타일을 구사하고 있어 그 화려한 분위기를 한층더 고조시킨다. 특히 이 악장의 마지막 카덴짜는 베토벤 자신이 적고 있어 종래의 즉흥적인 카덴짜를 금지하고 있다. 제2악장은 아름다운 선율 후의 피아노의 애처로운 독주가 마치 한 폭의 사랑의 슬픔과 같은 느낌으로 눈가에 이슬을 머금게 한다. 이런 곡상은 이미 그의 피아노 협주곡 1번 2악장에서 예견되고 있기도 하다. 이런 숨막히는 아다지오 후 끊이지 않고 연주되는 3악장의 피날레는 그 화려함의 극치를 이루며 장엄하게 곡을 마무리한다. 마치 황제처럼….
곡의 성격상 알려진 명연주는 무척 많은 편이다. 먼저 모노 시대의 연주로는 피셔와 프르트벵글러의 거장적인 격조의 연주가 매우 인상적인 명연주이다. 이후 베토벤 해석에서 권위적인 박하우스의 연주가 주목할 만하다. 박하우스는 모노 시대에 크라우스와의 연주와 스테레오 시대의 슈미트-이세르슈테트의 연주를 가지고 있는데, 크라우스 쪽의 연주가 좀더 정밀한 표정을 가지고 있다. 스테레오 연주 역시 대표적인 명연으로 알려진 훌륭한 것이기도 하다.
명장 미켈란젤리는 많은 실황 연주를 남기고 있다. 구중 특히 첼리비다케와의 영주가 소중한 희귀 명연으로 손꼽히고 있다. 한편, 음질 상태가 좋은 줄리니와의 실황협연 역시 명연주로 그 긴장감은 대단하다. 줄리니의 반주가 다소 낙천적이기는 하지만, 그 찬란히 빛나는 피아노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최고 경지의 명연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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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집을 녹음한 연주자는 많다. 최초 녹음인 슈나벨로부터 박하우스, 켐프, 아쉬게나지, 브렌델에 이르기까지, 폴리니는 전곡을 아직 완성하지 못하였고, 길레스는 전곡 녹음이 아닌 것으로 출발하여 전곡을 완성하려고 하였으나, 여기 소개된 마지막 녹음을 끝으로 전곡 완성을 하지 못한 채 아쉽게도 세상을 떠났다. 길레스의 이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집은 전곡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27곡만을 모은 전집 아닌 전집으로 따로 음반이 출반되기도 하였다. 전곡 녹음이 아님에도 그 완성도가 높아 미완성 녹음으로 전집을 내놓은 것으로 여겨진다.
베토벤 소나타는 모두 32곡으로, 유명한 곡 이외에는 그리 많이 접하지는 않는다. 특히 부제가 없는 곡들은 거의 듣지 않는 것에 속하기도 한다. 특히 내 자신이 그러하다. 거의 듣지 않고 있는 것이 태반! 나는 길레스의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는 낱장으로 출반된 부제가 붙은 유명 소나타 음반 몇 종을 LP로만 가지고 있다. 그러니 낱장으로 나온 길레스의 베토벤 소나타CD 음반은 살 필요가 없는, 거의 잊혀진 상태의 음반이었다. 물론 좋은 명연주로서 말이다.
그러던 중 국내에서 라이센스 CD가 출반된 무렵 이 길레스의 베토벤 소나타도 몇몇 장이 출반되기 시작하였다. 그중 나의 관심을 끈 것은 검은색 바탕에 길레스가 잔뜩 인상을 쓰고 있는 음반이었다. 사진 한켠 구석에는 마지막 레코딩이라는 문자가 자그마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맞어! 길레스가 베토벤 소나타 전곡을 완성하지 못하고 죽었다고 했지, 이게 마지막 녹음인가 보다, 곡은 30번과 31번이네! 마지막 32번도 빠진….
베토벤 후기 소나타 CD가 없으니, 이것을 하나 가져도 괜찮을 듯하여 선뜻 이 음반을 사게 되었다. 마지막 녹음이라는 음반회사의 기획에는 식상한 터였고, 곡 자체가 내가 즐겨 듣지 않은 것이지만 하나쯤 그냥 가지고 있어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사실 거장 길레스의 연주에 대한 막연한 기대감으로 구입하였던 것이 솔직한 심정이었다. CD 자체의 연주시간에 비추어 32번도 들어 있었으면 하였으나, 죽었다니 하는 수 없었다. 정말로 별 기대 없이 산 CD였다. 그냥 길레스 베토벤 소나타 CD가 없으니 LP와 중복되지 안항 구입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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