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날 때까지- 어머니로부터
육군 상사 백우빈의 묘비 앞에 놓인 오석(烏石)에 새겨진 글귀였다. 만날 때까지… 왜 그 어머니는 이 한마디 말을 새겨 놓았을까?
세상 살아가는 일이 고되게 여겨질 때마다, 마음이 상하고 흔들릴 때마
다 아들의 무덤을 찾아와 이 한마디를 되새기며 이 다음에 하늘에서 아
들을 만날 때까지 꿋꿋하게 살리라, 마음을 다져먹곤 하는 한 여인의
모습을 나는 머릿속에 그린다.
나의 조국을 위해
너희들이
너희 나라에 충성하려고
애쓰는 것처럼
나는
나의 조국을 위해
충성을 다할 뿐이다
나를 죽여라
1945년 5월 13일 중국 남경 형무소에서 일제에 의해 참수형으로 순국한
한성수의 묘비에 있는 글이다. 가족의 운명도, 자신의 내일도 바람에 맡기고 오직 잃어버린 나라를 찾겠다는 일념으로 황야를 누비던 독립투사의 꿋꿋한 기백이 조금도 시들지 않고 여직 푸르게 살아 있다.
용재 아빠!
온 가족을 귀국하면 행복하게 해주신다던
사연을 삼백 장이나 띄워 주시고
약속 없이 꿈속에서 사무친 당신께
애통한 마음 하루도 잊지 않고…
하늘같이 믿었던 당신이 나라 위해 가셨으니
아쉬운 정과 성으로 여기 돌 하나 세우고
명복을 비오니 두 남매를 돌보아 주소서
육군 중사 박찬현의 묘비에는 죽은 이의 아내는 이렇게 애절하게 덧붙이고 있다. 사랑하던 남편을 졸지에 떠나 보낸 아내들의 심경은 죽음보다 더 깜깜한 어둠으로 뒤덮일 것이다. 그러다가 차츰 아득한 절망감이 살아 있는 자의 책임감으로 승화되고 깊은 원망이 절절한 그리움으로 바뀌며, 그렇게 열린 언어의 세계는 이제 애통함을 다 씻어 버리지는 못했을망정 지하의 넋을 위로하려는 의연함을 보이려고 안간힘쓰기도 한다.
꿈에나 속삭여 주렴
외롭다면은
엄마 누나 가슴에 웃는 얼굴로
새근새근 잘 자라
우리 광진아
육군 병장 김광진의 묘에서
꿈에서라도 만나 보고 싶은 소망이 몇 줄 말 속에 마디마디 스며 있
다. 어느 시인의 시가 이처럼 절실할 수 있을까? 도대체 이 감동의 출처는 어디일까? 자식을 잃은 부모의 애통함은 그 크기를 헤아릴 수 없다. 자식을 앞세우는 일, 그것은 모진 형벌이 된다. 생때같은 자식을 하루아침에 잃어 버린 부모치고 십 년도 이십 년도 더 한순간에 팍 늙어버리지 않는 부모가
없다. 이것이 부모의 처절한 심정이다. 영원히 지울 수 없는 상처가 아니라 영원히 빼낼 수 없는 못이 가슴에 박혀서 날이면 날마다 새로운 상처로
살아나는 것이리라.
비바람 치던 새벽
포항역 손 잡으며
엄마 울지 마,
나직히 손 흔들며 떠나간 너!
내 아들 사라진 이국 다낭!
보랏빛 라일락 피는
오월 말없이 돌아온 내 아들 석아!
저 하늘나라 주님 품
안에 참 안식 있으니
그 사랑 길이 누리며 영원히 살아라
너와 천국에서 다시 만날 때
기쁜 얼굴로 대하리.
해군 병장 김동석의 묘
사랑하는 사람이 상처를 남기고 떠나갔지만 그 떠남을 이미 용서했을 뿐만 아니라 그 영혼을 위로하고 안심시킨다. 안심시킬 뿐만 아니라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한다. 비록 죽음이 이승과 저승을 갈라놓고 너와 나를 갈라놓았지만 사랑이 있기에 희망이 있다. 그리고 희망이 있기에 따뜻함이 있다.
역사의 현장으로서 국립묘지
역사의 현장으로서의 국립묘지는 대통령에서 무명용사에 이르기까지 나라를 위해 자신의 목숨까지 바치고 일하다가 유명을 달리한 이들의 안식처이다. 서울시 동작구 현충로 210번지 국립서울현충원에 잠들어 있는 영령은 2016년 2월 29일 현재 모두 175,074위이다. 국가 원수 4위, 임정요인 18위, 애국 지사 291위, 국가유공자 68위, 일반유공자 22위, 장군 385위, 장교 6,879위, 사병 53,914위, 군무원 1,997위, 경찰관 1,154위, 외국인 3위 그리고 6.25전사 무명용사 6,364위와 위패 103,978위가 모셔져 있다.
대전광역시 유성구 갑동 산23-1번지 국립대전현충원에는 1986년 이후에 영면한 호국 영령들이 안치되어 있으며, 2016년 2월 29일 현재 잠들어 있는 영령은 모두 117,064위이다. 국가 원수 1위, 애국지사 3,279위, 국가사회공헌자 35위, 장군 646위, 장교 13,349위, 사병 53,720위, 경찰 4,672위, 의사상자 47위, 소방 및 순직공무원 128위, 독도의용수비대 13위, 위패 41,125위, 무명용사 33인이 모셔져 있다.
---「책을 엮고 나서」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