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현대적 맑스주의를 비판적으로 고찰, 본격 연구한 첫 출발
탈현대성은 오늘날 맑스주의의 ‘현재성’을 확보하려는 이론적 재구성의 노력 속에서 핵심적인 접점이 되고 있다. 그리고 들뢰즈, 가타리, 네그리 등으로 상징되고 있는 ‘탈현대적’ 맑스주의가 오늘날 맑스주의의 유력한 흐름으로 부상했다는 데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 ‘탈현대적’ 맑스주의를 전지구적 자본주의 시대에 유효한 맑스주의 이론으로 간주할 수 있는가? ‘탈현대적’ 맑스주의가 맑스주의의 유력한 흐름이 된 만큼 이제 이에 대한 본격적인 비판과 논쟁이 이루어져야 할 때가 되었다. 박영균의 『맑스, 탈현대적 지평을 걷다』는 국내에서 탈현대주의와 탈현대적 맑스주의를 비판적으로 고찰하는 본격적인 연구의 첫 출발이다.
박영균의 『맑스, 탈현대적 지평을 걷다』는 탈현대적 맑스주의의 문제만을 다루고 있는 것은 아니다. 물론 그가 많은 부분에서 탈현대적 맑스주의와 대결하고 있음에도, 그의 연구의 목적과 범위는 훨씬 더 포괄적이다. 그의 연구 목적은 탈현대적 문제설정의 한계성을 넘어서서 오늘날 맑스주의 철학의 현재성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보려는 데에 있다. 이를 위해 맑스주의 철학의 성립에서부터 소련의 ‘정통’ 맑스주의의 흐름, 그람시와 알튀세르의 서구 맑스주의의 흐름, 그리고 탈현대주의의 흐름 등 맑스주의 철학의 역사를 통시적으로 포괄해 고찰하고 있다.
박영균의 『맑스, 탈현대적 지평을 걷다』는 맑스주의 철학의 이해와 해석에서 경청할 가치가 있는 몇 가지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고 있다. 우선 박영균은 그람시와 알튀세를 비교하면서 맑스주의 철학의 핵심이 ‘실천의 철학’에 있음을 확인한다. 그리고 맑스주의의 위기의 원인을 ‘정통’ 맑스주의가 이 ‘실천의 철학’에서 벗어나 유물론적 형이상학의 교조주의로 전락해 버린 데에 있다고 규명한다. 여기에서 박영균은 이른바 그동안 ‘정통’으로 자처해 온 철학은 폐기되고 맑스주의는 ‘실천적 유물론’의 정체성 위에서 새로이 구성되어야 한다는 견해를 피력한다. 그렇다면 ‘실천적 유물론’의 정체성 위에서 새로이 구성해야 할 맑스주의 철학은 과연 어떤 것인지 궁금해진다.
탈현대적 맑스주의가 박영균의 생각에 부합하는 그런 맑스주의 철학에 해당할 수 있는가? 이에 박영균은 그럴 가능성을 부인한다. 탈현대적 맑스주의는 마키아벨리, 스피노자, 니체 등 맑스 외부로부터의 수혈에 불과하기 때문에, “맑스도 아니고 뭐도 아닌 정체불명의 잡탕이 되어버리거나 무늬만 맑스주의 철학”에 불과하다. 탈현대적 맑스주의는 맑스주의를 표방하나 실제로는 맑스주의가 아니다. 맑스주의 철학의 본질은 모순과 적대인데, 탈현대적 맑스주의는 이를 부정하고 대신 차이를 주장한다. 탈현대적 맑스주의는 ‘맑스없는 맑스’에 불과하다. 『맑스, 탈현대적 지평을 걷다』는 탈현대적 맑스주의에 대한 전통 맑스주의 입장의 -물론 저자는 전통 맑스주의의 새로운 지평의 필요성을 본인의 새로운 입장으로 내세우고 있다- 본격적인 비판적 연구서이다. 탈현대적 맑스주의가 왜 맑스주의가 아닌지, 무엇이 문제인지에 대해 많은 새로운 이론적 논의들이 그의 책에서 개진되고 있다. 그동안 탈현대적 맑스주의와 탈현대주의에 대해 이렇다 할 본격적인 비판적 작업이 없었기 때문에, 이에 대한 본격적인 비판을 시도한다는 것만으로도 『맑스, 탈현대적 지평을 걷다』는 충분히 경청할 만한 가치가 있는 연구서이다.
물론 ‘정통’ 맑스주의자로서 개인적으로 청산하지 못한 잔영일지도 모르지만, 저자가 겉으로 표방하고 있듯이, 탈현대적 맑스주의가 저자에게 기각되어야 할 것만은 아니다. 실제로 그의 글 속에서 맑스의 철학과 탈현대적 맑스주의를 융합하려는 시도가 곳곳에서 포착된다. 그 중에서 매우 신선하면서도 눈에 띄는 부분은 포이에르바하의 유물론과 스피노자의 유물론을 한계지우면서 이 둘을 몸의 개념 속에서 통일해 보려는 3부의 ‘유물론의 두 가지 전통과 맑스 철학’이다. 이 시도는 본인이 더 이상 계속해 발전시켜나가고 있지 않지만, ‘현대적’ 맑스주의와 ‘탈현대적’ 맑스주의를 통합하여 더 포괄적인 유물론을 발전시켜나갈 수 있는 철학의 근본문제의 새로운 설정으로 기대된다.
‘정통’ 맑스주의도 폐기되어야 하고, 탈현대적 맑스주의도 아니라면, 맑스주의 철학의 ‘현재성’, ‘실천적 유물론’의 정체성 위에서 새로이 구성해야 할 맑스주의 철학은 과연 어떤 것인가? 저자 본인에게 이에 대한 견해가 있기는 한 것인가? 본인 스스로 밝히고 있듯이, 박영균에게 이에 대한 새로운 견해는 아직 없다. 그러나 그런 것을 저자에게 요구하는 것 자체가 반대로 무리한 요구일 것이다. 한편으로 ‘정통’ 맑스주의를 폐기하고 다른 한편으로 탈현대적 맑스주의와 정면 대결을 시도하면서 탈현대적 맑스주의마저 넘어서는 새로운 맑스주의 철학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것은 이제 저자에게 시작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이 연구서의 이론적 가치가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탈현대적 맑스주의에 대한 철학적, 특히 존재론적 관점에서 최초의 본격적인 시도라는 것만으로 이 연구서는 충분한 이론적 가치를 지닌다. 이 책은 앞으로 탈현대적 맑스주의와 본격적으로 논쟁하는 데 있어 그 디딤돌이 될 것이다. -<추천의 글> 가운데
이성백 (서울시립대, 철학과 교수. 『포스트구조주의의 헤겔 비판과 반비판』공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