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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 수필집 2

무라카미 하루키 수필집 2

: 세라복을 입은 연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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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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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1994년 01월 31일
쪽수, 무게, 크기 269쪽 | 412g | 크기확인중
ISBN13 9788976250124
ISBN10 897625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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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발언을 하면 전철로 통근을 하시는 분들께선 혹 불쾌하게 여기실지 모르겠지만, 나는 분명하게 말해 '철도 스트라이크'라는 걸 좋아한다. 그렇다고 뭐 딱히 운수 관계에 있는 노동자들을 지원하고 있다든가, 사회가 혼란스러워지는 걸 좋아한다든가, 그런 것은 아니고 (사회가 혼란스러워지는 건 약간 좋아하지만), 그저 단순히 '평상시와는 다른' 일이 생기면 아주 기쁜 것이다. 역시 폐쇄되어 횅뎅그레하거나, 야마노테선의 육교 위에서 삼십분 동안이나 선로를 내려다 보아도 열차가 한 량도 지나가지 않곤 하면, 가슴이 두군두근한다.
--- p.15
왜 F심 연필이 하필이면 세라복을 입은 여학생인지를 한 번 생각하기 시작하면 생각할수록 영문을 알 수 없이 머리가 혼란스러워진다. 그리하여 영문도 모르는 채 F심 연필이 어김없이 세라복을 입은 여학생으로 보여지곤 했던 것이다. 이런 경우는 무척 민감하다. 최근에는 F심 연필을 손에 쥘 때마다 세라복차림의 여학생을 상기하고 마는 지경에 이르렀다. 물체가 한 번 어떤 이미지를 창출하고 나면 이번에는 그 이미지가 거꾸로 물체를 규정짓고 만다는 현상일까. 어찌 됐는 내게는 이루 말할 수 없이 폐를 끼치는 현상이다.
--- p.92
드디어 여름도 끝나 간다. 나는 여름을 좋아하는 소년 아저씨 - 라는 표현을 요즘 들어 비교적 자조적인 의미로 자주 사용한다 - 라서 여름이 끝나 가는 것이 무척 애닯다. 여름 따위 내년에 또 올텐데 뭘 하며 스스로를 위로하지만, 해변가에 있던 방갈로가 하나 둘 자취를 감추고, 고추잠자리가 하늘을 빙빙 돌아다니고, 해안에 잠수복 차림의 서퍼들이 늘어나곤 하는 걸 보고 있으면, 신나는 일들은 모두 끝나 버렸구나 싶은 기분이 들어 견딜 수 없다. 이런 발상은 어린이의 그것과 거의 다름없다.

며칠 전 근처에 사는 모 광고 회사 사람 집에 놀러갔더니, 부인이 나와 '죄송하지만 여름 휴가가 다 끝나서 오늘부터 출근이에요' 란다. 그런 말을 들으면 '그렇군, 여름이 끝나서 모두들 사회로 복귀하는군. 수영이니 일광욕이니 불꽃 놀이니 비치 보이스니 서핀이니 하고 아직도 건들건들 놀러다니는 것은 나 정도밖에 없어' 하고 암담한 기분이 젖는다.
--- p.130
늘 의문스럽게 생각하는 것은, 세상에는 과연 오뎅을 먹는 정통적 방법이란게 존재 할까 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생선 초밥집에서는 처음부터 다랑어를 두 접시 연달아 먹는 것이 세련되지 못한 매너인 것처럼, 처음부터 계란말이를 두 접시 계속 먹어대면 안된다든가, 치쿠와와 한펜사이에는 다시마를 끼워 넣는 것이 상식이라든가, 롤 카베츠 다음에는 두부로 입가심을 해야 식도락가가 될 수 있다던가 하는, 소위 '오뎅도'라는 게 있는 것일까?
--- p. 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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