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No, No! Non metterti!(노, 노, 노! 앉지 말아요!)”
“Perch??(왜죠?)”
“Perch? quello sedere ? sporco(그 의자가 좀 지저분해서요).”
나는 친절한 호의를 베푼 사람답게 빙긋이 웃으면서 ‘고맙다’는 그 수녀님의 인사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갑자기 그 수녀님이 화를 벌컥 내더니 뭐라고 중얼거리면서 다른 자리로 가버렸다.
왜 그렇게 화를 내고 가버렸는지는 며칠이 지나고서야 깨닫게 되었다. 아직 이탈리아 단어들이 이것저것 헷갈리던 때라서 내가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저지른 것이었다. ‘좌석’, ‘의자’를 뜻하는 ‘쎄딜레sedile’ 대신 ‘엉덩이’를 뜻하는 ‘쎄데레sedere’라고 말해버렸으니. (…)
그 수녀님과 다시 새로운 친구 관계를 시작하기 위해서 내가 기울인 피나는 노력은 정말 눈물 없이는 들을 수가 없다. (…) 혹시 내 경솔함과 교만함 때문에 어떤 사람들을 잘못 이해하고 그릇되게 판단하는 오류에 빠져 있지는 않은지 돌이켜본다. 지금까지 내가 가졌던 사람들에 대한 많은 오해와 이로 인해 파생된 모든 불화는 사실 나 자신에 대한 오해로부터 비롯되었음을 깨닫게 해준 모든 인생의 선생님들께 감사드린다.
<‘불화의 원인, 오해’ 중에서>
또한 내게는 많은 여자 친구들이 있다. 서품식을 마치고 많은 여자 친구들에게 둘러싸여 기념 촬영을 하고 있을 때 어느 주교님이 그 옆을 지나가시다가 내게 물었던 적이 있다.
“어이구, 최 신부. 다들 어떤 관계들이셔?”
“네, 주교님. 친구들입니다.”
“그래? 흠, 흠, 최 신부는 여고 졸업했나?”
(…) 나이나 성별, 혹은 부유하든 가난하든, 외적인 조건에 따라 친구를 만들지 말라. 모두가 나의 친구이고 모두가 나의 스승이다. 예수님의 친구가 누구이던가?
<‘최 신부는 여고 졸업했나?’ 중에서>
로베르토 신부님은 머리카락은 아직 갈색이 많이 남아 있는데 이상하게도 더부룩하게 기른 수염은 완전히 흰색으로 쇠었다. 마주 앉아 저녁을 먹다가 하도 궁금해서 물었다.
“로베르토 신부님, 왜 수염만 하얗게 쇠었죠?”
대답은 젊은 시절부터 로베르토 신부님과 아프리카 ‘기니비사우’라는 조그만 나라에서 내내 함께 지냈던 마우리찌오 신부님으로부터 들었다.
“최 신부, 이유는 간단해. 이 친구는 먹고 살기 위해서 입을 너무 많이 썼어. 머리는 언제 쓰려는지 도무지 쓰지를 않았거든. 많이 쓴 부위가 먼저 노화한 거지.”
(…) 우리는 눈에 보이는 결과만 보고 사람을 판단하고 고발하고 질타하는 데 너무 열심이다. 그 결과가 있기 전에 그 사람이 얼마나 순수한 동기로 움직이고 있었는지 그 과정 안에서 얼마나 고생하며 땀 흘렸는지를 차곡차곡 담아둘 마음속의 빈자리가 없어서인지도 모르겠다.
<‘마음으로 살아가기’ 중에서>
“콜롬보 신부님, 추우시면 창문 닫을까요?”
“아니 그냥 놔 두게. 창문을 닫으면 밖의 뜨거워진 공기가 들어오지 않아서 더 추워. 또 밖의 소리를 듣고 싶기도 하고…….”
“우리 한국 사람들은 여름이 오기 전에 몸보신을 하기 위해 삼계탕이라는 음식을 먹거든요. 신부님도 한 그릇 드시면 금방 일어나실 텐데 저하고 같이 가실래요?”
“글쎄다. 하느님께서 내게 다시 힘을 주시면 일어나는 것쯤은 문제도 아니지. 하지만 이번에는 그동안 수고했으니 당신 곁으로 와서 쉬라고 하실 것 같네. 이번 여름이 마지막이 될 것 같은데 최 신부는 이번 여름 방학에도 다른 곳으로 가겠지?”
“예, 6월 말에 떠나요.”
“……”
콜롬보 신부님은 그 뒤로도 한참 동안 아무 말씀이 없으셨다. 나도 아무 말없이 그 옆에 서 있었다. 하지만 그 긴 침묵이 전혀 어색하거나 낯설지가 않았다. 아버지께서 먼 여행을 떠나시기 전에 함께 보낸 날들에도 나는 그렇게 아무 말없이 아버지 옆에 있는 것이 좋았다. 나는 그것을 ‘거룩한 침묵’이라 이름 하였고, 그 거룩한 침묵 속에 있는 것이 참 좋았다.
<‘거룩한 침묵’ 중에서>
75세! 사람들은 일흔다섯이라는 나이를 어떻게 생각하고 받아들일까? 2007년 기준으로 한국 남성의 평균 수명이 78세니까, 75세라면 내게는 더 이상 새로운 목표를 향해 달릴 수 없는 종착역에 서 있는 녹슨 기차, 혹은 에너지가 쇠한 다 써버린 건전지 정도가 얼른 떠오른다.
오늘은 일흔다섯, 그러니까 우리 한국 나이로는 일흔여섯의 연세이신 루이지 신부님의 파견 미사가 있는 날이다. 루이지 신부님은 평생을 멕시코의 산간 오지에서 빈민들과 함께 보내시고 그곳에서 ‘몬시뇰’로 서임되셨다가 최근 몇 년간 이탈리아에서 삐메의 총경리 보직을 맡으신 분이다. 루이지 신부님의 출신 교구 주교님은 신부님의 고향집 근처 본당신부로 발령을 내시려고 생각하고 계셨다. 게다가 연세도 연세이지만 파킨슨씨 병까지 앓고 계셨기 때문에 함께 사는 누구도 그분이 다시 선교지로 떠나실 거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 일흔다섯의 연세에 다시 선교지로 떠나가시는 루이지 신부님의 선한 얼굴에서 나는 뿌리를 땅에 깊숙이 박고 하늘을 우러르며 생생하게 살아 있는 들꽃을 본다. 그분은 영원히 그렇게 기쁘고 평화로운 모습으로 내 마음에 살아 계실 것 같다. 하지만 여전히 이별은 슬프다. 그분이 떠나시기 전 마지막으로 나눈 대화가 마음에 아프게 와 닿는다.
“신부님, 내일 바로 선교지로 떠나시나요?”
“아니. 고향에 들러서 친구들, 친척들 얼굴이나 한 번씩 보고 가려고……. 다들 나이가 들어서 언제 또 볼지 몰라…….”
<‘늙은 선교사의 파견미사’ 중에서>
아버지께서 돌아가실 때 남기신 유언이라고 하는 것이 빨리 흙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관을 쓰지 말고 곧바로 흙에 묻어달라는 것과 죽은 자의 행렬이 산 사람들을 방해하지 않도록 사람들의 통행이 가장 적은 길을 택해서 장지까지 가라는 것 정도가 전부였다. 생전에 당신이 조금 가지고 계셨던 재산에 대해서는 아무런 집착도 없으셨고 당연히 그것들에 대해서는 돌아가시는 순간까지도 철저하게 무관심하셨던 분이셨다. 나는 다른 것은 몰라도 옆 산에 소풍이라도 가시듯 초연하게 이 생의 마지막 순간을 맞이하신 모습만큼은 철저하게 우리 아버지를 닮고 싶다.
<‘레퀴엠’ 중에서>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