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당신의 역할 모델은 누구인가요?
11월 27일 일요일 오후 3시 30분
린의 어머니인 도린 피터슨은 딸과 하나뿐인 손자를 보자 반가운 기색을 보였다. 도린은 왜소하고 연약한 노인이었는데, 린이 보기에 요즘 들어 몸이 더 수척해진 데다 벌컥 화를 내는 일이 잦아진 듯했다. 그녀는 린을 따뜻하게 포옹하고 난 뒤 니키를 향해 몸을 수그리고서 환영의 표시로 양팔을 활짝 벌렸다.
“세상에서 제일 멋진 우리 왕자님 잘 지냈니?”
15분 후, 세 사람은 대형 할인점 안에 있었다. 린은 잡지들을 훑어보고 있었고, 도린은 니키와 함께 초콜릿을 고르는 중이었다. 그때 린의 휴대폰에서 신호음이 울렸다. 그녀는 가방에서 휴대폰을 꺼내 화면을 들여다보았다.
당신의 역할 모델은 누구인가요?
발신자를 살펴볼 필요도 없었다. 그것은 그들 부부에게 몇 달 동안 계속 배달돼 온 메시지 중 하나였다.
“역할 모델?” 린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난 역할 모델이 없는데.”
그녀는 휴대폰을 집어넣고서 눈앞의 거대한 선반을 장악한 잡지들을 계속 훑었다. 오래된 친구처럼 낯이 익은 얼굴들이 눈에 들어왔다. 엘 맥퍼슨, 클라우디아 시퍼, 신디 크로포드가 각각 〈코스모〉, 〈글래머〉, 〈헬로우〉 잡지의 표지를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었다.
브룩 쉴즈가 열두 살 때 출연했던 영화의 나체 연기에 대해 회상하는 기사와 네 살 때 아버지가 집을 나가면서 정신적 충격을 받았다는 할 베리에 대한 기사가 눈에 띄었다.
린은 문득 자신의 아버지를 마지막으로 보았던 때를 떠올렸다. 아버지는 그녀가 열세 살이었을 때 가족을 떠났는데, 그 무렵의 린은 아버지가 하는 모든 말들을 믿지 않았다. 아버지는 린이 무용 발표회에 와줄 수 있냐고 물으면 “노력해 보마.”라고 대답하고는 절대 나타나지 않았고, 린이 영화를 보러 가자고 하면 “그럴까?” 하고 대답했으면서도 외출 한 번 함께하지 않았다. 그녀가 새 청바지를 사달라고 했을 때도 아버지는 “그러지 뭐.” 하면서도 지갑을 열지 않았다.
반면, 엄마는 아버지와는 정반대였다. 그녀는 평생 동안 린의 뒤꽁무니만 쫓아다녔고, 린과 관계된 일에 한해서만 사람들을 만났으며, 어린 딸에게 아무리 퍼주어도 아까울 게 없는 것 같았다. 그에 비해 린이 그토록 관심을 갈망했던 아버지는 그녀를 위해 아무것도 하려 들지 않았다.
린은 할인점 안의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도린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엄마, 왜 그토록 오랫동안 아버지를 참고 봐줬어요?”
도린은 난데없는 린의 질문에 깜짝 놀란 듯했다.
“도대체 무슨 말이냐, 린?”
“왜 그토록 오랜 세월 동안 아버지의 거짓말과 실망스러운 행동들을 참아 넘겼냐고요.” 뒤 이은 질문 역시 날카롭기는 마찬가지였다.
“우리에게는 돌봐야 할 네가 있었잖니. 그 시절에는 자식들 때문에라도 함부로 헤어질 수가 없었어.”
“아빠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어요. 원할 때마다 집을 나가셨잖아요. 아버진 정말이지 아버지란 소리를 들을 자격이 없는 사람이었어요.” 마지막 말은 린 자신도 모르게 튀어나왔다.
“그래도 네 아버지가 네가 죽고 못 사는 이 잡지들 속의 연예인들보다는 낫다.” 화가 난 도린이 되받아쳤다.
“그 사람들은 아무래도 좋아요. 나는 나를 믿고 결정을 내린다고요.”
“아니, 그렇지 않아.” 도린은 고집을 꺾지 않고 강경히 말했다. “넌 그들의 식이요법과 조언을 신봉하잖니. 비정상적으로 마른 사람들과 네 자신을 비교하면서 네가 너무 뚱뚱하다고 끊임없이 투덜대잖아.”
그들이 쉬지 않고 날카로운 말들을 쏟아내는 가운데 어른들의 말다툼에 싫증이 난 니키는 커피 주전자 꼭대기에 빈 유리잔을 얹기 위해 용을 쓰고 있었다.
“니키, 내려놔라.” 린이 아이에게 쏘아붙이고는 다시 도린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엄마, 난 과체중이에요. 내가 다이어트를 하고 몸 관리를 하는 걸 비난할 게 아니라 오히려 반기셔야죠.”
“네가 요가로 몸 관리를 하는 건 좋아.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이를 낳지 않은 스물다섯 살짜리 슈퍼모델의 몸매를 꿈꾸지는 말란 말이다.”
“니키, 그거 당장 못 내려놓겠니?” 린이 다시 아이를 말렸다.
“어쨌든 여기에 말싸움하러 나온 건 아니란다. 난…….”
그때 유리잔이 타일 바닥에 부딪혀 산산조각이 나면서 도린의 말허리를 잘랐다.
“니키, 내가 그러지 말라고 했잖니! 왜 엄마 말을 안 듣는 거야!” 린이 소리쳤다.
순간 카페 안에 정적이 맴돌았다. 린은 자신의 뒤통수에 꽂힌 따가운 눈총들을 느낄 수 있었다. 두 여자는 여기저기에 흩어진 유리 조각들을 주우면서도 말싸움을 계속했다.
“카페 안에서 애한테 고함을 지르는 건 훌륭한 엄마의 행동이 아니야. 그렇지 않니?”
“소리를 지르지 않으면 애가 말을 안 듣는 걸 어떡해요?”
“네가 소리를 질러도 애는 네 말을 안 들어!”
건강한 역할 모델의 선택
린과 스티브가 무의식적으로 우러러보는 사람들은 사회 속에서 어떤 역할을 갖고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지침을 제공하는 인물, 즉 한마디로 역할 모델이다.
우리는 대개 부모나 가족, 학교 선생님, 친구들, 종교인 등 과거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던 사람들을 비롯하여 당대의 정치 지도자 혹은 음악과 텔레비전, 영화, 스포츠계의 유명인사들을 역할 모델로 삼는다. 그러나 진정한 자신감과 깊은 행복감을 가지려면 단순히 인기가 많거나 유명하다고 해서 역할 모델로 삼을 것이 아니라 건강한 역할 모델을 찾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왜일까? 건강한 역할 모델은 우리가 올바른 가치관과 행동 양식, 바람직한 생활 방식을 구축하도록 돕고, 나아가 우리의 인생을 윤택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현재 린과 스티브는 둘 다 인생의 미로에서 헤매는 듯한 매우 불안한 느낌에 사로잡혀 있다. 이때 불량한 역할 모델을 선택한다면 전혀 도움도 받지 못한 채 혼란만 느끼다 결국 막다른 골목으로 몰리고 말 것이다.
--- p.111~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