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다섯 살 때, 숲으로 돌아간 고기이는 ‘동자’라고 생각해요. ‘동자’는 시간과 공간을 자유로이 오갈 수 있으니까 고기이는 그때부터 많은 모험을 했겠지요. 뒤에 남은 또 하나의 고기이 역시 결코 게으르지 않게 살아왔어요. 이런 산속에서 자랐으면서도 열 살 때 전쟁이 끝나고 나자 외국 책을 읽는 일에 흥미를 느꼈고, 더구나 도쿄의 대학에서 어학을 공부했지요. 실제로 여러 나라도 다녔고……. 그런데 그러면서도 그는 고기이에게서 버림을 받았던 마음의 상처로부터 자유로워지진 못했어요. 당신이 써온 소설들은 모두 숲에 대한 노스탤지어로 이상해진 머릿속 상상이 아닌가요? 노스탤지어의 중심에는 숲 속 깊은 곳에 살면서 시간과 장소를 순환하고 있는 고기이에 대한……‘동자’를 향한 질투가 있었다는 이야기잖아요?”
--- p.38, 제1장 『돈키호테』와 함께 숲으로 돌아가다 중에서
“제 은사님인 노스럽 프라이 교수님은 바르트를 인용하여 이런 글을 책에 쓰셨어요. ‘성실한 독자는 음미하는 독자이다.’ ……이것은 굳이 책을 한 번 더 읽는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아요. 그보다 책의 구조적인 퍼스펙티브 속에서 읽는 것이죠. 그것이 언어의 미로를 헤매는 독서법을 방향성이 있는 탐구로 바꾸어 놓는 거예요……. 내가 몇 번이고 『돈키호테』를 읽는 것은 그러한 탐구 과정이에요. 고기토 씨가 아카리를 데리고 숲 속으로 돌아온 것은, 당신 자신이 자주 말하는 것처럼 노년에 들어섰다고 자각해서이겠지만, 또 하나는 ‘음미하기’ 위해서가 아닐까요? 그것도 당신의 경우, 다른 작가의 작품을 읽는 것이 아니라. 그걸 포함해도 좋겠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텍스트는 그동안 자기가 써온 것, 해온 일 전부라고 생각해요.”
--- p.64, 제3장 꿈의 통로 중에서
“……고기토 씨의 ‘그것’ 말인데요, 성적인 장난이든, 혹은 범죄에 이를 정도의 것이든 간에 ‘그것’에 의해 마음에 아로새겨진 ‘그림자’는 당신들에게 공유된 것 아닌가요? 어째서 고로 씨에게는 ‘그것’의 기억으로부터 오는 것이 치명적이고, 고기토 씨에게는 그래도 살아 나갈 수 있는 거죠? 당신들의 성격을 봐서는 거꾸로 된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드는데…….”
그날 밤 고기토는 마키히코로부터 도발된 일을, 자신이 깨어 있다는 것을 들키지 않도록 뒤척이는 것조차 남몰래 해가며―애당초 깁스로 싸여 있는 발을 보조대에서 움직일 수 없으니 뒤척임 자체가 제대로 되지는 않았지만―계속 생각했다. (중략) 또 하나의 해결법은 자신의 직업에 근거한 ‘습관’으로 해당 주제를 소설로 써서 갖가지 비평을 받은 후에 찾아온다. 하지만 어떤 방식의 해결이든 시간이 걸리고 의문점을 일소하지는 못한다. 나이를 먹으면서 고기토는 절실하게 그러한 사실을 깨닫고 있었다……. --- p.136, 제6장 그것과 통풍 중에서
새삼스럽게 제어할 수 없는 분노가 고기토를 찾아왔다. 그는 온몸으로 몸부림을 치며 양팔을 빼내려 했다. 어떻게 해서 오른팔을 빼냈지만 그 순간, 여전히 꽉 고정되어 있던 왼팔에 의해, 해머던지기의 해머처럼 자신이 회전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공중에 뜬 고기토는 시커먼 거북이 모양의 적송 줄기를 보았다. 자신의 머리가 거기에 격돌하도록 고기토는 차라리 자신의 의지로 날았다. 여전히 왼팔을 놓치지 않으려 온 체중을 걸고 버티는 양철 병정에게 한 방 먹여줄 수 있으리라는 속셈으로…….
--- p.495, 종장 발견된 ‘동자’중에서
고기토, 고기토, 자아, 눈을 떠요! 자신은 이미 늙은이라고, 당신은 몇 번이나 말했지만 눈을 뜨고 이쪽으로 돌아온다면 나는 ‘새로운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당신이 곧잘 인용하던 블레이크를 생각해요! 눈을 감고 있어도 소리를 내지 못해도, 당신 같은 사람에게는 활자의 형태로 말이 떠오를 거예요. 영혼의 소리를 맞추어가며 나와 함께 그것을 읽읍시다!
Rouse up ‘O’ young men of the New age!
고기토, 고기토, 당신은 그것을 “새로운 이여, 눈을 떠라!”라고 번역했죠?
--- p.504, 종장 발견된‘동자’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