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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토막처럼 뻣뻣한 여자 고래심줄처럼 끈질긴 남자

나무토막처럼 뻣뻣한 여자 고래심줄처럼 끈질긴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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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07년 10월 30일
쪽수, 무게, 크기 398쪽 | 414g | 크기확인중
ISBN13 9788951023507
ISBN10 8951023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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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기억에 없는 만남

은행 입구에 파란색 파라솔을 꽂은 테이블에서 두 여자가 설문조사를 하고 있었다. 한 명은 앉아있었고 한 명은 서 있었다. 서 있던 여자는 은행에서 나오는 훤칠한 키에 꽤나 돈 냄새를 풍기는 젊은 남자에게 꾸벅 인사를 하며 설문지를 내밀었다.
“안녕하세요. 잠깐 시간 되시면 이것 좀 부탁드릴게요.”
“뭔데요?”
“다 작성해 주시면 선물도 드려요.”
남자는 자신에게 허리 숙여 인사하는 여자들을 위아래로 훑어보면서 의자를 끌어 앉았다. 남자는 그녀들의 짧은 스커트 밑으로 쭉 빠진 다리와 풍만한 가슴곡선이 맘에 들었다. 남자는 앉아있던 여자의 가슴에 패인 계곡을 힐끔힐끔 보면서 자신에게 주어진 설문지를 써내려갔다.
-이름: 나태성. 하늘의 가장 큰 별이 되라고 할아버지가 지어주셨지. 하지만 난 별로 큰 인물이 되고 싶지는 않아. 골치 아프잖아. 하지만 밤에 큰 건 사실이지. 크크크.
-나이: 팔팔한 28세.
-성격: 죽이지. 한마디로 화끈해. 누구든 날 보면 반하지 않고는 못 배길 걸.
-여자: 발에 차이는 게 여자 아냐? 언제든 맘만 먹으면 양다리, 아니 문어다리도 가능하다고.
-사랑: 그딴 게 있다고 아직도 믿어? 의외로 순진한 타입이네. 사랑은 섹스야. 섹스의 다른 이름이 바로 사랑이지.
-결혼: 그런 게 왜 필요한지 모르겠어. 내 발로 뭐 땜에 감옥에 들어가? 결혼은 감옥. 바로 무덤이지.
-꿈: 그딴 게 왜 필요해? 그냥 되는 대로 살면 되지. 아! 굳이 말하라면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 주의자! 나 이 노래 무지 좋아해.
-능력: 널리고 널린 게 돈이지. 돈이면 안되는 게 없거든. 아마 내가 평생 먹고 놀며 써대도 남아돌 걸.
앉아서 태성의 설문작성내용을 들여다보던 여자는 태성의 답이 어이가 없어서 그를 빤히 쳐다봤다. 태성은 자신을 쳐다보는 여자의 손에 설문지를 쥐어주면서 입을 열었다.
“자꾸 쳐다보는 거 보니까 자기 나한테 맘 있는 거 같은데. 어때? 이딴 설문조사 때려치우고 나랑 데이트나 하지?”
“여기 선물이나 받으세요.”
여자는 포장된 작은 상자를 내어주면서 태성을 째려봤다.
“하하. 뭘 제대로 아는군. 여자는 역시 튕겨야 맛이지.”
“미친놈!”
태성의 옆자리에서 앉아 설문지를 쓰던 여자가 태성의 행동에 오만상을 쓰면서 태성을 향해 욕을 했다. 자신에게 욕을 한 여자의 설문지를 힐끗 본 태성은 무시하듯 말했다.
“아줌마는 신경 끄시지! 서부용? 이름도 웃기네!”
태성은 다시 고개를 앞으로 돌려 설문조사를 하는 여자가 내민 손에 자신의 명함을 쥐어주며 속삭였다.
“맘 있음 연락해.”
그리고 뒤돌아 가면서 그녀를 향해 손을 흔들어댔고, 주차장에서 빨간 오픈카를 타고 나오면서 그녀를 향해 윙크를 하고 사라졌다. 여자는 빨간 오픈카가 사라질 때까지 바라보다가 자신의 손에 든 명함으로 시선을 옮겼다.
<태성그룹 이사 나태성>
“저거 완전 똘아이 아냐!”
부용이 태성의 행동에 역겨운 듯 헛구역질을 해대며 여자에게 말했으나 명함을 받은 여자는 뭐가 그리 좋은지 싱글벙글하였다.
‘쯧쯧! 끼리끼리 만난다고 하더니만…….’
부용은 여자의 행동에 혀를 내두르며 설문지를 계속 작성했다.
-이름: 서부용. 꽃 이름이야. 쳇! 여자는 남자들의 꽃이나 되라는 거야 뭐야! 난 내 이름이 정말 맘에 안 들어. 그렇다고 이름을 바꿀 생각은 없어. 부모님이 내게 남겨준 건 이름뿐이니까.
-나이: 그딴 것 왜 묻는데? 먹을 만큼 먹었다. 네가 입시에 허덕일 때 이 몸은 선보러 다녔다는 것만 알아둬.
-성격: 한 번 시작하면 끝장을 봐야 돼. 중도 포기란 내 삶에 없지. 아! 그리고 불의는 절대 용납 못해. 요즘 사람들은 자기 일이 아니면 눈 찔끔 감고 모른 체하는데 그럼 안 되지. ‘나 하나쯤이야’, ‘내가 아니라도 누군가’, 이런 생각 자체를 뜯어고쳐야 돼. 내가 아님 절대 안 된다는 생각으로 말이야. 그래야 내가 발전하고 국가가 발전하는 거야.
-남자: 쓸모없는 종족이지. 머리가 허리 아래 달린 멍멍개야.
-사랑: 그 쓸데없는 걸 뭣 하러 해? 시간, 에너지, 돈 낭비야. 그런데 쓸 열정이 있음 일에 투자해서 성공하는 게 백배는 났지.
-결혼: 미쳤어! 그딴 걸 하게? 결혼은 곧 족쇄고 감옥이야. 너도 결혼한답시고 남자한테 이리저리 끌려 다니지 말고 하루라도 빨리 네 살 길 찾아. 돈은 절대 배신하는 법 없이 언제나 네 곁을 든든히 지켜줄 거야.
-꿈: 여자 우습게 보는 놈들 다 짓밟아 버리고 성공하는 거지. 돈, 명예, 이런 거 말이야.
-능력: 그게 문제야. 내 일생일대 가장 큰 고민이고 풀어야 할 숙제지.
‘근데 이딴 설문조사는 대체 뭣에 쓰려고 그러는 거야? 왜 이리 꼬치꼬치 물어보는데?’
부용은 설문지를 제출하고 작은 상자 하나를 받았다. 은행으로 들어간 부용은 번호표를 뽑고 방금 받은 상자의 내용물이 궁금해 의자에 앉자마자 포장을 뜯어냈다.
“뭘까? 에게~, 겨우 볼펜 하나 받으려고 땡볕에 앉아서 이걸 썼단 말이야? 쳇!”
---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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