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민지 근대론은 ‘식민지 근대화’를 주장하거나 옹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식민지의 ‘근대화’를 완전히 부정하려는 것도 아니다. 이것은 제국주의 지배의 ‘수탈’을 부정하지 않는다는 말이기도 하다. 식민 지배를 통한 근대화를 부정하는 것도 수탈을 부정하는 것도 아니라는 것은, 근대화도 수탈도 부분적으로는 인정한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식민지 근대 논의의 본질적 의도가 두 논의를 절충하는 데에 있는 것은 더욱 아니다.
식민지 근대론은 제국과 식민지를 보는 대안적 시각을 제시하고자 한다. 그것은 식민지가 일국적이고 자족적인 정치·경제·사회적인 단위가 아니라 제국의 일부를 구성하고 있었다는 점. 제국과 식민지는 상호작용하는 하나의 ‘연관된 세계’를 구성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인식의 한 축으로 삼는다. 다른 하나의 축은 식민 지배로부터 해방되어 정치·경제·사회적으로 독립된 단위를 구성한다거나 ‘친일파’를 ‘청산’한다고 해서 식민지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것은 식민지 근대가 탈식민 시대에도 이어지는 연속성을 가지고 있음을 지적하는 것이다. 식민지가 지금까지도 ‘현재’ 속에 살아 있다면 식민 지배를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이며,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 ---p. 6 책머리에에서
이는 식민지는 말 그대로 제국에 종속된 ‘식민지’이지, 하나의 독립적인 정치적ㆍ경제적 단위로 사고하거나 분석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식민지 조선이 정치적ㆍ경제적으로 독립적인 실체가 아니었다는 것을 지시하는 정책적 슬로건은 많다. 그것을 세 가지 수준에서 나열해보자. 먼저 식민 본국 일본과 조선의 상호연관을 보여주는 슬로건으로는 내선융화(內鮮融化), 내선융합(內鮮融合), 내선일체(內鮮一體)가 있다. 두 번째로 일본과 조선을 포함하여 여타 식민지를 포괄하는 것으로는 일선만(日鮮滿) 블록, 대동아공영(大東亞共榮) 등의 슬로건이 있다. 세 번째로는 식민지 간의 연관을 표현하는 것으로 선만일체(鮮滿一體), 선만지일체(鮮滿支一體), 만몽일여(滿蒙一如) 등이 있다. 이들 슬로건은 주로 1930년대 이후 일본의 침략전쟁이 확장되면서 제기된 정책적인 것이었다. 하지만 이는 식민지 조선이 제국 또는 식민지 상호 간의 연관된 세계의 일환을 구성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잘 드러내준다.
---p. 34, 나의 근대-연관된 아이러니의 세계에서
해방 이후 남한의 대통령 중 두 사람이 만주국에서 군인과 관료로 일했던 사람이다. 만주군관학교 출신으로 만주군 장교로 근무한 박정희와 만주국 관리양성기관인 대동학원 출신으로 만주국 관리로 근무했던 최규하가 바로 그들이다. 비단 박정희와 최규하만이 아니라, 한국의 관료ㆍ군부ㆍ재계ㆍ학계 등에서 주역으로 활동했던 사람들 다수가 만주국 출신이 아니던가? 대개 그들의 공식적인 이력 가운데에는 만주국에서의 활동경력이 빠져 있었다. 그렇지만 해방 이후 남한을 이끌었던 지도층과 남한 사회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만주(또는 만주국) 경험을 연관해서 생각해야만 한다. 총동원 체제하의 조선에서든 계획경제가 추진되었던 만주에서든, 그 속에서 전쟁 시기를 보낸 한국인들의 의식 속에는 ‘통제’와 ‘계획’이라는 단어와 개념이 머릿속 깊이 각인되었을 터이다. 1950년대의 전후 부흥의 과정에서든 1960년대 경제성장의 과정에서든, 그들이 ‘통제를 통한 계획경제’라는 성장정책의 원형을 과거의 경험에서 떠올리는 일이 그리 어렵지는 않았을 것이다.
만주국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제국과 식민지가 단순히 지배와 피지배라는 일방적 관계만을 맺었다고 볼 수는 없다. 제국은 식민지에 그리고 식민지는 제국에 영향을 끼쳤으며, 심지어 하나의 식민지와 다른 하나의 식민지도 상호 연관된 세계로 묶여 있었다. 그래서 식민지 근대는 잡종성(hybrid)으로 표현되며, ‘식민지 근대’가 잡종화할 운명은 ‘제국주의 근대’(일본)의 잡종화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식민지 근대’와 ‘제국주의 근대’의 잡종성은 근대의 역사적 특성을 구성한다. 이런 인식을 바탕으로 근대를 새롭게 구성해야만 역사 연구에서의 민족주의적 단순구도와 제국주의적 단순구도를 상호 해방할 수 있지 않을까? ---p. 35~36, 나의 근대-연관된 아이러니의 세계에서
일제 지배 하의 ‘수탈’이란 무엇인가? 근대화와 차별화가 동시적으로 발현하는 상황을 수탈로 볼 수 있지 않을까? 이것은 바로 ‘규율권력’의 이중성을 말한다. 식민지배 하에서 미시적인 생체권력은 지속적으로 작동하였다. 이는 욕망과 규율화의 이중성을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근대 국민국가의 규율권력이 작동하는 전형적인 대상으로서 교육과 징병은 일제하 조선에서도 잘 작동하고 있었다. 식민지 회색지대가 근거하는 지점은 바로 규율권력이 작동하는 곳이다. 식민지 회색지대라는 개념은 이항대립의 도식 속에서 말소되어 버린 식민지배 하의 일상생활이 작동하는 광범한 지대를 복구하고자 하는 의도를 담고 있는 것이지, 말 그대로 생활의 회색지대를 의미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식민지 공공성’이란 개념은 식민지기 저항의 외연을 넓히기 위해서 고안된 것이다. 근대 사회가 분화하면서 근대적 ‘공공영역’이라는 문제 영역이 부상한다. 그 이유는 공공성의 체현자로서의 국가의 공권력이 사적 영역을 장악해가는 과정에 대한 저항으로서의 의미를 가지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공권력에 의해 회수되지 않는 ‘공적영역’의 존재는 중요하다. 식민지배하 저항과 협력이 교차하는 지점에 ‘정치적인 것’으로서의 ‘공적 영역’이 존재하고 여기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식민지기 저항의 의미를 새로이 규정하기 위한 것이다.
---p.53~56, ‘식민지 근대’의 패러독스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