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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거리를 편식한다

낯선 거리를 편식한다

김재찬 | 다옴 | 2007년 10월 30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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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07년 10월 30일
쪽수, 무게, 크기 375쪽 | 592g | 153*224*30mm
ISBN13 9788995954713
ISBN10 899595471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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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바다를 품고 목말라 죽은 손톱조개의 그리움으로
지독한 그리움을 겪어본 사람들이라면 그게 얼마나 큰 행복이며 동시에 천형天刑의 고통이라는 것임을 알 것이다. 그리운 사람 하나 가슴에 품고 살아간다는 것은 더할 수 없는 행복이지만 그만큼의 아픔도 감당해야 된다. 해도 해도 다하지 못하는 아픔. 그것은 바다를 품고 목말라 죽은 손톱조개 한 마리의 그리움 같은 것이다.
거센 폭풍이 몰아치던 어느 날 힘없는 손톱조개 한 마리가 큰 파도에 실려 백사장으로 밀려왔다. 큰 파도는 다시 밀려와 데려가주지 않았고, 발이 없는 손톱조개는 제 힘으로는 바다로 돌아갈 수 없었다. 혀를 내밀어보지만 그 연한 살은 땡볕에 달궈진 모래에 닿자마자 타버릴 것 같아 더 이상 입을 열 수도 없었다. 손톱조개 한 마리는 그렇듯 마른 백사장에서 철썩대는 파도소리를 들으며 드넓고 푸른 바다를 그리다 그 바다를 가슴에 가득 품은 채 햇빛에 말라 죽어갔다. 그럼에도 손톱조개는 행복했다. 가슴에 드넓은 바다를 품었고, 그 그리움이 있었으므로.
그렇게 바다를 품고 목말라 죽은 손톱조개 한 마리의 그리움. 가슴에
품은 사람을 향해서도 그렇지만 문학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해도 해도 다하지 못하고, 오히려 그리움만 깊어져서 목말라하다가 죽어갈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러면서 그 그리움만으로도 아프지만 행복할 일이다.
내 문학에 대해, 내 소설에 대해 오랜 동안 갈등했다. 이제 제 길을 찾아 갈 때도 되었지 하고 깊은 숨을 몰아쉬기도 하지만 그것은 그저 잠시의 생각으로 그치고 언제나 분분紛紛 떠돌아다녔다. 그러나 나는 알고 있다. 분분 떠도는 그것이, 천형과도 같은 그리움이 내 문학의 근원이라는 것을.
깊이가 가늠되지 않는, 시간이 지날수록 오히려 깊어지기만 하는 그리움. 부모와 떨어져 지내야 했던 유소년기부터 나는 그리움을 가혹하게 앓아왔고, 한창 예민했던 학창시절에는 그리움이 곧 절망이라는 것을 일찍 알아버렸다. 어쩌면 절망을 알아버린 것조차도 또 다른 절망의 한 가닥일 수 있었지만 적어도 내게는 그러했다.
그렇게 지나온 오랜 날들의 저편에서 보았던 햇빛 한 가닥을 나는 지금 다시 보고 있다. 그 시리던 햇빛 속으로 지나갔던 정淨한 시간들과 절망스럽도록 부시던 얼굴 하나. 그리고 그 순결했던 살 내음… 이미 오랜 시간이 지났건만 다시 내 앞에 던져진 시간의 뭉치를 풀어 모든 것들이 고스란히 남아있음을 보는 순간, 오히려 그것으로도 모자라 다만 멈춰져있을 뿐이던 그것이 시간의 단절감도 없이 물을 머금어 뿌리를 내리고 잎을 피워 올리는 것을 보는 순간, 소름 돋을 듯한 그 절망적 그리움이 다시 한 번 내 몸을 관통하는 것을 느낀다.
잠시 되돌아 보건데 그러기까지는 또 다른 절망의 늪을 건너왔다. 이 작품은 그 절망의 시간들에 대한 기록인지도 모른다. 오랜 방황의 시간들이 있었다. 그리고 아직도 그것이 끝났다고 장담할 수는 없지만, 그러기에 그 시간들에 대한 기록은 여기서 그쳐지지 않고 앞으로도 계속 이어지게 될 것이다. 소름 돋을 듯한 그리움이 내 몸을 관통하고 있으므로. 또한 그것이 내 문학의 근원이므로.
하여,
오늘도 그리운 사람 하나 그리워하기로 한다. 또한 그런 그리움으로 비록 작고 보잘것없을지언정 내 문학 한 그릇도 담아내기로 한다. 이것이 더한 그리움만 깊게 할 것이 분명하지만. 선뜻 손 내밀어 책을 엮어주신 다옴 출판사께 감사드린다.

07년 10월
빗물 흐르는 창가에서 김재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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