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인 라우 군이 인생이 무엇이냐고 묻는다. 평소에는 명랑하기만 하고 돈을 벌어야겠다고 하던 그가 무심코 묻는 이 말은 평소 그의 마음 깊은 곳에 깔려 있던 물음이었을 것이다. 정말 나는 무엇 때문에 어머니를 버리고 외롭게 떠나왔던가? 솔직히 나는 잘 알 수 없다. 잠재적 어떤 꿈에 끌려가는 것인지. 나는 정말 무슨 꿈을 꾸고 있는지. 나는 프랑스로 가는 해상, 여객선 갑판에 서서 눈 위로는 끝없이 퍼진 하늘과 눈 아래로는 끝없이 넓은 바다를 번갈아 권태로이 보면서 대답이 없는 물음을 계속 던지고 있다.
구름이 일다간 어느덧 개이고, 어두운 이 대양 위에 한낱 낙엽처럼 흔들리는 흰 빛 배를 둘러싸고 자욱한 안개가 낀다. 다만 선창에서 비치는 불빛이 배 주위의 물결 위에서 춤추듯 뛸 뿐. 이런 바다의, 아무도 없는 갑판 위에서, 다만 물결이 부딪치는 소리와 귀에 울리는 거센 바람소리와 은은한 배기관의 발동 소리에 싸여 있으면 단번에 물속에 뛰어 들어 영원히 무(無)로 돌아가고 싶은 충동이 순간적으로 느껴진다. 삶의 고민, 정치적 파동, 무슨 역사, 무슨 주의---몇 천 년 동안 사람들이 떠들어오고 있는 소동, 절망, 희망 따위의 언어, 그리고 모든 것이 궁극적으로는 아무런 의미도 없어 보인다. 바다는, 이 넓고 깊고 신비스러운 남양대해가 그것을 말해주는 것 같다. 칠백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이 배에 실려 물 위에 떠간다. 콜롬보, 봄베이, 영국 혹은 프랑스 혹은 독일 등으로 향하는 이들도 각자 나름대로 무엇인가 뜻있는 목적을 달성하곤 하겠지. 그러나 이 대양의 무의 가르침 속에 그들의 목적이 있는 것일까? 사람이나, 배나 바다는 그저 흔들리고 움직일 뿐이다. 영원히 그냥 떠돌 뿐이다. 사멸할 때까지, 무로 돌아갈 때까지. ---1장 항해의 눈: 긴 철학의 여정에 닻을 올리며
프랑스의 젊은 작가 M씨를 알게 되었다. 유행가 가사 같은 점이 없지 않지만 재미있는 시인이라고 생각하는 자끄 프레베르를 만나고 싶다고 하니까 그는 이미 육십이 넘어 지금은 시골에 살고 있다고 한다. 내가 한국에서 간단히 소개한 시인들의 이름을 들면서 어떻게들 지내느냐고 물었다. 시인들은 물론 대부분의 작가들은 작품만을 가지고서는 살 수 없다고 한다. 그래서 모두가 다른 직장을 가지고 있다 한다. 상당히 이름난 P. 엠마뉴엘만 해도 지금 한 문화단체에서 일하고 있다.
“사르트르 같은 사람은 어떤가요?”
하고 나는 물었다. 그가 상당한 부자가 되었으리라고 믿기 때문이었다.
“물론이지요. 그런 예외도 있긴 하지요. 그러나 조금 이름이 나면 저널리즘의 농락에 상품화되기 쉽습니다. 로브 그리예 같은 작가도 그렇거든요.”
아닌 게 아니라 지금 <마리엔바드의 작년>이란 영화가 상영되어 한참 화제를 일으키고 있는데 그 작품의 대화는 로브 그리예가 쓴 것이라 한다. 역시 어딘지 비슷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러이러한 작가나 시인들을 만나게 되었다고 하니까 같은 자리에서 만나지 말라고 알려준다. 왜냐하면 그들은 모두 서로 접촉을 하지 않고 몇몇 동료들끼리만 어울리며 서로가 멸시하고 서로 자기주장만 내세우기 때문에 한자리에서 만나면 거북하다는 것이다. 나는 다시금 ‘역시 어디나 비슷하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소르본느 대학 강좌라고 다 재미있고 훌륭하진 않다. 그 방법에 있어 비판할 여지가 많다. 좁은 나의 소견에도 그렇다. 그러나 그런 강의에도 백발노인, 백발 할머니들이 기를 쓰고 와서 열심히 노트하느라고 야단이다. 시험을 치지 않는다 치고 그저 교양으로 듣는다 치더라도 내일 모레 죽을 사람들이 무엇 때문에 저렇게 열심히 알려고 하는지 의심스럽다. 이제와 어떤 시인을 깊이 이해하고 어떤 작가를 깊이 감상할 수 있다고 해서 무엇 하겠는가? 나는 속으로 되풀이한다. ‘죽을 날이 며칠 안 남았는데…’ 그러나 나는 한편 그들의 모습을 볼 때마다 나 자신이 부끄러워지고 그들 앞에 머리가 숙여진다. 이것은 한 예에 불과하다.
고기를 많이 먹어서 그런지는 모르나 이곳 사람들을 가만히 보면 오십 가량 된 사람이면 대개 숨이 가빠 보인다. 땀을 많이 흘리고 허덕거리는 수가 많다. 그러나 그렇게 허덕거리는 칠팔십 가량 돼 보이는 사람들이 아침부터 국립도서관 같은 곳에 줄을 서서 기다리며 자리를 얻어가지고 종일토록 책을 눈에 바싹대고 열심히 베끼고 외고 읽으며 공부하고 연구한다. 오십이 돼서 손자를 보고 아직도 멀쩡한 건강체인데도 곰방대나 물고 사랑방으로 몰려다니며 술잔이나 놓고 ‘에헴’ 하진 않는다. 그들은 생활에 진지하고 인생을 힘껏 사는 듯하다. 그리고 그런 마음속에서 젊음을 잃지 않고 있는 것이다. ---2장 혼돈의 눈: 이국의 낯선 삶이 내 영혼에 닿을 때
라인강 위 산 뒤에 해는 다시 저물고
지금 들리는 것은 강물에 녹는
함박눈의 자욱한 고요뿐
아무도 대답하는 이 없다
누구도 밝혀 주지 않는다
천년이 넘은 한 도시의 대성당
큰 종소리가 울린다
나는 외국인
나는 지나가는 사람
나는 낯선 행인
함박눈 맞으며 혼자 걷는다
짐배들이 떠가는 라인강 강변
나도 지나가는 바람
나도 스쳐가는 그림자 ---4장 시상의 눈 1: 유럽을 사색하며
수도원들은 도저히 사람이 접근할 수 없을 듯한 높은 바위기둥, 그 접근이 상상할 수도 없을 것 같은 바위 꼭대기나 그러한 바위의 벽에 매달리듯 붙어 있다. 처음에는 누군가가 먼저 바위를 쇠망치로 파서 하나하나씩 계단을 만들어 꼭대기까지 올라가고, 다음 단계에서는 처음에 올라간 수도승이 내린 밧줄을 타고 올라 갔다 한다. 그렇게 올라간 수도승들은 그물이 달린 밧줄을 내려 건축재료와 생활기구를 밑에서부터 끌어올려서 수도원을 조금씩 지어가면서 수도생활을 했다는 것이다. 수도원에의 이런 방식의 접근이 1923년까지 계속되었다 하니 수도원에서의 삶이 얼마나 고난스러운 금욕적 생활이었는지는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
수도승들은 일단 수도원에 들어가면 죽을 때까지 기도, 독서, 성화 그리기, 수공예품이나 일상적 잡일을 하면서 살다가 죽어서도 그곳에 남아야 한다고 하니, 초월의 세계에 가고자 하는 영혼의 수행이라고는 하지만, 그 수행이 얼마나 가혹한 외로움과 고행을 의미하는 것인가.
천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이곳에 와서 수행하다 이곳에서 세상을 떠났을 그 많은 수도승들, 또 모두가 물질적 풍요를 즐기고 육체적 향락을 추구하며, 속세의 행복을 추구하기에 여념이 없는 첨단 기술문명의 오늘날에도 아직도 이곳을 찾아와 수도승으로서 저 험악한 바위 꼭대기에서의 고행을 스스로 선택한 그리스정교의 수도승들은 이 세상을, 이 세상에서의 삶을, 아니 인생을 어떻게 보았기에 그것을 모두 버릴 수 있었을까.
나는 마침 갑자기 쏟아지는 함박눈 속에서 깊은 골짜기 저쪽에 있는 성 스테파노스 수도원을 바라보면서 그들에게는 분명했을 숭고한 세계, 초월의 영역, 참된 삶에 대한 꿈, 즉 진정한 의미에서의 종교적 순수한 희구에 비추어 내가 추구하는 가치와 내 삶의 속됨이 새삼 의식되고 부끄러워진다.
---5장 문명의 눈: 그리스 터키에서 나는 무엇을 보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