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킨의 획기적인 발견에 문화적, 사회적 반향이 따르지 않았다면 그의 성공은 거의 불가능했을 것이다. 결정적인 기여자는 단연 당시 여성들이었다. 염료의 대량 생산 초기에 퍼킨은 한 사업 파트너가 보낸 편지를 읽고 기뻐했다. “우리 사회의 가장 중요한 구성원인 여성들 사이에서 당신의 염료에 대한 열광은 가히 폭발적입니다. 여성들 사이에 불이 붙었으니 당신이 그 수요에 잘 대응한다면 앞날은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 p.42
러시아 화가 카시미르 말레비치는 비테프스크 도로변의 지저분한 벽돌담을 하얗게 칠한 다음, 그 위에 녹색 원, 오렌지색 정사각형, 파란색 직사각형 등등을 그려넣었다. 우중충한 단색에서 화려한 색깔로 변신한 이 산업도시는 주민, 방문객, 노동자, 농부, 시민들의 눈을 즐겁게 했을 뿐 아니라 주민들에게는 소속감까지 느끼게 해주었다. --- p.56
헬무트 콜마저도 이런 ‘재건’의 색조로부터 벗어나, 1983년에는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색이 ‘빨간색’이라고 공표했다. 아마 10년 전이라면 헬무트 콜도 이런 사실을 자유롭게 말하지 못했을 것이다. 당시는 빨간색이 정치 무대를 지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독일에서는 좌우연정(빨강-노랑)이 정계를 지배하고 있었고, 좌파들은 빨간색 비닐 커버가 씌어진 ‘마오쩌둥 어록’을 흔들며 시위했고, 같은 시기에 북경에서는 홍위병이 이 어록을 들고 흔들었다. 그러나 정치적 상징이었던 빨간색은 잔인한 테러 때문에 계몽적 의미의 명성을 잃어버렸다. 왜냐하면 독일의 ‘적군파’는 인질 납치, 협박, 살인을 통해 목적을 이루려 했고, 이탈리아에서는 ‘붉은 여단’이 기차역들을 폭파하고 수상을 저격했으며, 멀리 캄보디아에서는 ‘크메르루즈(붉은 크메르)’가 무고한 양민 수백만 명을 대량 학살했기 때문이다. --- p.70
우리는 회색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회색은 내면에, 바깥 세상에, 아침부터 저녁까지 늘 따라다닌다. 새벽의 어스름 속에서 ‘뇌(회색) 세포’가 움직이기 시작하면, 여러 농도의 회색 색조들이 눈앞에 펼쳐진다. 아침안개는 창문 앞에 회색 베일을 드리우고, 비구름은 하늘을 잿빛으로 만든다. 아침식사 때 많은 사람들이 하얀 혹은 검은 빵 대신에 건강을 위해 회색 빵을 먹는다. 식탁 위에는 무광택의 알루미늄 색이나 은회색 식기들이 준비되어 있다. 식사 후의 출근 차림은 다채로운 색의 재킷, 치마, 원피스, 코트지만 그 안쪽에는 회색 안감이 들어 있다. 출근길에는 회색의 커다란 쓰레기 수거용 박스들을 보게 된다. 보도, 도로, 고속도로는 물론이고 가로등, 도로 표지판, 교통 표지판, 신호등의 기둥도 대부분 회색이다. --- p.98
색깔을 효과적으로 활용할 줄 아는 사람은 전혀 화장을 하지 않고 꾸미지 않은 사람보다 더 많은 시선과 관심을 받게 마련이다. 그래서 많은 안내책자들의 과장된 듯한 문구가 완전히 거짓은 아니다. 실제로 신중한 색깔 활용은 소통과 공감에서 긍정적인 작용을 한다. 체형이나 태도, 제스처나 언어 선택 못지않게 색깔이 친구와 적을 구분하는 데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이 ‘색 언어’가 인생의 성패를 결정할 수도 있다. 파트너 찾기나 면접, 사업적인 거래나 저녁 초대 등에서 색의 활용과 연출은 거의 ‘항상’ 영향을 미친다. --- p.122
이것이 현대 문명사회에서 ‘단체색’이라는 문화로 발전했다. 단체색은 선수와 직원들뿐만 아니라 행사 주최자와 팬, 기업들까지도 이용하고 있다. 저 아래 경기장에서 축구팀이 승리를 위해 싸울 때 팬들은 응원하는 팀의 색깔로 된 숄, 두건, 모자, 깃발을 들고 얼굴 페인팅을 하고는 관중석에서 환호한다. 잔디 위에서는 열한 명의 남자들이 검정색 바지와 하얀 티셔츠와 긴 양말을 신고 공을 따라 뛰어다니고, 그 공을 뺏기 위해 하얀색 바지에 파란색 티셔츠와 긴 양말을 신은 상대편 선수들이 분투하고 있다. --- p.129
이베리아 반도 남쪽의 농민들은 북쪽에서 이주해 온 에스파냐의 대공들을 ‘파란색 피를 가진’ 사람들, 즉 고귀한 사람들로 받아들였다. 그들은 무어족 이민자보다 훨씬 밝은색 피부를 가지고 있었고, 피부색을 창백하게 유지하기 위해 햇빛을 피했다. 스페인의 가난한 주민들은 귀족들의 하얀 피부 속 푸르스름하게 비치는 혈관으로 파란색 피가 흐른다고 생각했다. 작렬하는 더위 속에서 힘들게 일하는, 그래서 더 검은 피부를 가진 농부들이나 그런 농부들을 착취하는 하급 귀족들에게 ‘파란색 피’는 고상하고 타고난, 그래서 의심의 여지없는 특권으로 여겨졌다. --- p.135
괴테는 진심으로, 그리고 이성적으로도 죽는 날까지 상류층 시민이었다. 적절한 다색을 사용한 것은 감정적으로나 지적으로나 삶을 긍정하는 그의 태도에도 부합했다. 그래서 젊은 날의 괴테의 모습이기도 한 베르테르는 멋쟁이 스타일의 파란색 정장과 노란색 조끼를 입고 있지 않은가? 베르테르가 사랑에 대한 절망으로 자살을 시도하는 그 순간에도 말이다. --- p.147
이런 모든 상황에도 불구하고 거리를 바라보면 색의 자유에 경계선이 아주 없지는 않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사례 중 하나로 자동차 색을 살펴보자. 요즘 사람들은 오히려 도가 넘치는 다양화에 싫증이 나 있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즉 선택의 가능성이 열려 있는 다양한 색을 모두 사용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많은 자동차 구매자들이 화려한 색을 기피한다. 주차장에는 어두운 색 혹은 무채색 자동차가 대부분이다. --- p.180
그렇지만 이 세상에는 다른 사람과 혼동될 정도로 비슷하게 보이고 싶은 사람은 거의 없고 또 그렇게 보여서도 안 된다. 그래서 허용과 금기 사이에서 색채적 모험을 시도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정도가 너무 지나쳐서는 안 된다. 뉴욕의 한 전시회 개막식에서 앤디 워홀은 스크린 날염가인 루퍼트 스미스를 기다리고 있다가, 그가 나타나자마자 놀라서 멈칫했다. “루퍼트가 내 사무실에 들어섰을 때 그는 마치 내 아들처럼 보였다”고 팝 아티스트 워홀은 일기장에 적었다. --- p.190
“금발 여자는 게으르고 멍청하다”, “금발의 야수”, “흑발 여자는 민첩하고 교활하다, 속을 알 수 없다, 예측할 수 없다” 등의 말이 있다. 지금까지도 일부 남성들 사이에 만연되어 있는 여성에 대한 편견들을 소설가 구스타프 플로베르는 《통상 관념 사전》이라는 책에서 다음과 같이 비꼬아 표현했다. 그는 “금발 여성은 갈색 머리칼 여성보다 다혈질임. 파란색이 잘 어울림”이라고 쓰고 몇 줄 뒤에 바로 또 이렇게 썼다. “갈색 머리칼 여성은 금발 여성보다 다혈질임.”
--- p.2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