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은 모두 꿈이지 싶었다. 어느 날 문득 꿈에서 깨어나면 우리가 생각했던 현실은 진짜 현실이 아니고 그저 잠시만의 꿈, 진짜 현실은 따로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아무 것도 아닌 잠시만의 꿈속에서 서로 싸우고 죽이고 헐뜯고 빼앗다가 막상 꿈을 깨어 진짜 현실에서 얼굴을 마주 대하게 되면, 그 때는 부끄러우리라, 꿈속에서 행하였던 그 많은 일들이 얼마나 치기무쌍 했었던가를 알게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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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결국 완전한 혼자가 되기 위해 살아가고 있는 것에 불과하거든.그런 것일까. 인간은 결국 완전한 혼자가 되기 위해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그럴는지도 모르겠다. 아무리 혼자가 되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쳐보아도 결국은 혼자가 될 뿐 그 어떤 것으로도 사람과 사람은 완벽하게 혼합되어 질 수가 없다. 마치 물방울이 서로 합쳐져서 하나의 물방울이 되듯이 그렇게 아무런 구분도 없이 합쳐져서 하나가 될 수는 없다. 쌍둥이 조차도 타인은 타인인 것이다. 비록 얼굴은 같을 수 있을는지몰라도 마음 같을 구가 없는 것이다.목사민도 도둑놈도, 스님도깡패도, 교수도 학생도, 장과도실직자도,운동선도간질병환자도, 할머니도갓난애도 , 살아 있는 한은 그 완전한 혼자는 것 쪽으로 조금씩 발을 내디디고 있을뿐이 다. 어쩌면 살아 있는 동안 자신이 완전한 혼자라는 것을 느끼게 되고 그것으로 모든 것을 다이루었다고 생각되어지는 사람이 있을는지도 모르지만 그러나 거의 전부가 사실은 혼자가 아니려고 애를 쓰는 것 하나로 부질없이 한평생을 다 보내어버리고 마는 것 같기도 했다.
--- p.210
'몸이 조금만 나아지면 그리 오랜 시일이 걸릴 것은 없읍니다. 이제 세마리만 더 손질하면 됩니다. 내 정신력으로만 회복 할 수 있도록 해 주십시요. 저 그림을 완성하기 이전에는 절대로 죽지 않아요'
약을 사다 주어도 그는 도무지 먹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비록 육체는 고통스럽지만 정신은 아직도 투명합니다. 눈을 감으면 아주 미세한 붓자국 하나라도 선명하게 기억해낼 수가 있읍니다.'
도대체 그림이라는 것이 무엇이길래 철두철미하게 이 남자를 사로잡고 있는 것일까.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모든 시간이 열정으로 불타고 있는 것 같았다. 지금 그는 연소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의 요구대로 그를 그냥 내버려 두기로 마음먹었다. 그는 정말 그의 정신력으로 다시 그림을 그릴수 있는 기력을 회복할 수가 있을 것 같았다.
--- p.236
나는 비록 술집에 나가고 있기는 하되 세상과 타협하고 있지는 않다고 자부할 수가 있었다. 적어도 그 그림이 있는 한 나의 자부심은 무너지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래서 항시 나는 오만하고 차디찬 모습으로 손님들에게 술을 따를 수가 있었다. 술잔을 받아쥐는 손님이 사업가든 학자든 건달이든 나는 결코 마음에도 없이 상냥하게 굴거나 아양을 떨지 않았다. 그들 중에는 누가 폐허의 텅 빈 건물속에서 잠을 자 보았으며, 그들 중에 누가 사흘 이상을 굶어 보았으며, 그들 중에 누가 쥐고기를 식사 대용으로 생식해 보았단 말인가. 전시도 아닌 지금 좋아졌네 좋아졌어 몰라보게 좋아졌네, 라는 새마을 노래도 있지만 어쨌든 이제는 정말로 굶어죽는 사람 따위는 상상할 수도 없고 사회 곳곳에 갖가지 형태의 복지시설이 갖추어져 있는 지금, 도대체 누가 나처럼 이렇게 비참한 생활을 끝까지 감수하며 살아갈 수가 있단 말인가
--- p.158
나는 그 하늘을 쳐다보면서 아까 술집에서 그가 하던 말을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우리나라 시인들은 귀소 본능의 문제에 있어 대체로 바다 지향적인 시인과 하늘 지행적인 시인으로 크게 나눌수가 있다는 말, 어느 정도는 수긍이 가는 것 같았다. 너무도 많은 시인들이 너무도 많이 하늘을 노래했었다. 너무도 많은 시인들이 너무도 많이 바다를 그리워 했었다.
--- p.174
그러면 꿀맛을 아는 것으로 간주했다. 굴을 한번도 먹어본 적 없는 사람도 그렇게만 대답할 수 있으면 꿀맛을 아는 것으로 간주했다. 꿀을 먹어본 적 없는 사람이 단지 꿀맛이 달다고 말할 수 있는 사실 하나만으로 진정한 꿀맛을 안다고 할 수 있을까.
--- p.2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