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나는 그녀가 없는 방에 살짝 들어가 그녀의 옷에 입을 맞추고 싶은 유혹에 사로잡혔다. 하지만 또다시 평소의 그 자존심이 나를 제지했다. 그녀는 한 남자의 아내이며 나는 그녀의 보살핌을 받는 가엾은 존재라고 말이다. 그러나 결국은 그 유혹에 승복하고 만 적도 있었다. 부엌의 식탁 위에 놓여 있는, 그녀가 먹다 만 빵 조각을 집어들고 몰래 한 입을 뜯어 먹은 것이었다. 범죄를 저지르고 난 뒤의 성취감 같은 것이 느껴졌다. 그와 동시에 마치 벌집을 훔친 것처럼 아파오기도 했다. --- p.308
3월의 추위 탓에 그녀의 입술은 차가웠다. 첫 느낌은 풀을 씹을 때나 바닷물을 맛볼 때와 그다지 다르지 않은 것 같았다.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이제 나도 입맞춤이 무엇인지 알아! 이게 내 첫번째 입맞춤이다!’ 하는 것이었다. 그런 생각과 함께 조금은 으스대는 기분이 되었던 나는 그녀가 마음이 상한 것처럼 보이는 데 적잖이 놀랐다. 처음에는 무방비 상태에서 당한 일이 당황스러웠던지 어떤 대답도 거부도 하지 않던 그녀는 내 입술 사이에서 ‘아서’ 하고 중얼거렸다. 마치 나를 낯설게 느끼는 것처럼 나를 붙잡고는 도움을 구하는 것 같았다. 뻔뻔스럽게 나름대로 확신을 한 나는 더욱 세게 그녀를 붙잡고 입술을 눌렀다.
부드러운 그녀의 눈꺼풀 주위가 놀라 핏기마저 사라졌다. 차가운 입술은 발갛게 달아올랐다. 그때서야 나는 입 안에 달콤함이 느껴지고 잠시 머릿속이 혼란스러워졌다. 갑자기 그녀의 이름이 튀어나왔다.
“눈치아타! 눈치아타!” --- pp.333~334
실베스트로가 표를 가지고 왔다. 손님이 탈 수 있도록 선원들이 계단을 놓았다. 실베스트로가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나는 어젯밤 N이 보낸 귀걸이를 주머니에서 꺼냈다. 그리고 아무도 모르게 그것에 입을 맞추었다.
갑자기 마음이 약해져 눈앞이 흐려졌다. 그 순간 그것이 무언가를 뜻하는 소리가 되어 귓가에 들려왔다. 이별, 신뢰, 슬프고도 놀라운 친근감! 이렇게, 나는 이제야 그 귀걸이가 내가 사랑하는 여인이 보낸 친밀감의 표시라는 것을 알았다! 내가 깨닫지 못했을 뿐, 그것은 사실이었다. 여자의 다른 어떤 인사가 이보다 더 아름다운 사랑의 표현이 될 수 있단 말인가? 그녀는 나의 사랑과 입맞춤에 대한 기억 때문이 아니라, 내가 한 무례에 대한 기억의 표시로 그것을 보냈을 것이다. 너의 무례함도 내게는 사랑의 표현이었어, 하고 말하듯이. --- p.484
엘사 모란테는 주인공이 성숙한 어른이 되면서 겪는 통과의례를 전체적으로 환상적이고도 암시적이며 아름다운 문체와 내용으로 담아냈다. 전설적이고 동화적인 이름 ‘아서’에 대한 소개로 출발하는 주인공의 회상은 상징적이고 가공된 느낌을 주지만, 어른이 되어가는 심리 상태는 극히 섬세한 현실주의적 묘사로 펼쳐낸 것이다. 그 심리 상태에 이용되는 도구들을 살펴보면, 여자-어머니-연인으로 이어지는 민감한 과정과 죽음과 연관된 삶, 그리고 우상화된 아버지다. 어머니의 사랑을 모르고 자란 아서가 ‘금녀의 집’에 들어온 새어머니에게 사랑을 갈구하며, 또 그녀가 낳은 아들이 독차지하는 모성애에 대해 강한 질투를 느낀다. 결국 모성애를 찾아 방황하던 주인공은 섬의 다른 여자와 사랑이 없는 육체관계를 맺게 된다. 또, 어릴 적부터 죽음이라는 것에 커다란 의미를 부여했던 아서는 새어머니의 관심을 끌기 위해서 자신의 용감함을 보이는 구실로 자살을 선택한다. 그가 말한 ‘헤라클레스의 기둥’이란 어른이 되기 위해서 넘는 또 하나의 경계가 아닐까 싶다. 그렇게 사춘기를 맞은 아서는 아버지가 동성애적인 성향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드디어 그에 대한 환상을 무너뜨리기 시작한다. 그 결과, 아서는 섬을 떠남으로써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는 성인의 세계에 도전을 하는 것이다.
이탈리아는 제2차 세계대전을 겪고 난 후, 영화와 문학을 중심으로 네오레알리스모Neorealismo 운동이 일기 시작한다. 이 운동은 파시즘이 부과했던 전쟁과 구속으로부터 벗어난 이탈리아인들이 과거의 전통적인 틀에서 벗어나려는 시도에서 비롯된 것이다. 엘사 모란테는 전후 서정적인 작품들로 이어지는 과도기에서 네오레알리스모에 가까우면서도 그 틀을 벗어났다는 평을 받는다. 특히 인간의 고독과 외로움이 작품마다 그 바탕을 이루고 있으며, 우화적이고 상징적인 문체로도 호평을 받는다. 또한 심리적인 표현에 있어서 순수함과 신비로움이 완벽한 조화를 이룸으로서 그녀의 문학적 성향이 완성되었다는 평을 받는다. 엘사 모란테는 프리모 레비Primo Levi나 파솔리니Pier Paolo Pasolini, 프라톨리니Vasco Pratolini 같은 거장들과 함께 전후 이탈리아 문학을 주도한 작가임에 의심할 여지가 없다. 『아서의 섬』은 출판되자마자 커다란 반응을 불러 일으켜 스트레가상을 수상하였으며, 세계 여러 언어로 번역 출판되었다.
--- pp.491~4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