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죽을 만한 이유가 있다면 이 살인은 당연히 인과응보인 것이다. 그가 만약 죽을 만한 이유가 없다고 하더라도 어쩔 수 없다. 정글에서 죽는 가젤이 이유를 알고 죽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아무쪼록 그가 죽을 만한 이유가 있기를 바란다. 그런 존재감마저 없다면 어찌 인간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그냥 초원에 뛰노는 한 마리 가젤에 불과한 것이다. 역설적으로 본다면 그런 선량함 자체 또한 그가 죽어야 할 이유가 아니겠는가. --- p.257
그의 정신세계가 무죄라면, 그냥 삶과 세상이 부조리한 것일 뿐. 나에게 세상이 부조리했듯이 그에게도 세상이 부조리했을 뿐이지. --- p.264
9·11 테러가 남의 일인 줄 알았다. 눈앞에서 생생하게 목격하고도 나와는 상관없는 다른 세계의 이야기라고 생각하고 살았다. 플러싱의 한글 간판에 분노하는 백인들의 웅성거림을 애써 무시하며, 인종 혐오의 보이지 않는 벽에 둔감했다. 그날 세계무역센터가 무너진 자리엔 새로운 건물이 들어섰다. 수천 명이 사망한 그 사건을 기억하자고 프리덤 타워라고 명명했지만 증오심은 어느새 만개했다. 완공 전 화장실 벽과 구석진 곳에는 인종 혐오 낙서가 뒤덮였다. 이방인과 유색인종을 향한 백인들의 분노는 아직도 가라앉지 않았다. 그 벽 위에 타일과 대리석이 덮여 시야에서 사라지자 나는 그것이 남의 일인 줄 알았다. 내 아킬레스건이 절단된 것은 결국 9·11의 후유증이었다.
『아메리칸 홀리』는 매우 독특한 소설이다. 뉴욕에서 한 언론인이 테러를 당한 후 범인을 추적하는 것이 외형상 골격이다. 하지만 이 소설에서 주인공이 추적하고 있는 것은 다름아닌 자기 자신이다. ‘9·11’이라는 서사를 바탕으로 한 양헌석의 이 작품은 강자의 눈에 비친 냉혹한 세상을 군더더기 없는 문장으로 묘파하고 있다. 선하거나 약한 자의 시각으로 그려진 통상적인 소설과는 달리 악의 심연을 형상화해내는 쉽지 않은 독창성을 보인다. 악의 완성이란 특이한 주제에 도전한 작가 정신에 찬사를 보낸다. 그의 오랜 공백을 메워줄 성공작이다. - 조정래 (소설가)
한국의 고급 지식인이 자본주의 심장 맨해튼에 이민자로 살면서 처절한 테러를 당하며 시작되는 『아메리칸 홀리』는, 테러범을 추적하는 과정이 숨가쁘게 이어져 읽는 이로 하여금 한순간도 눈을 돌리지 못하게 한다. 동시에 인간 내면에 병존하는 복합적인 선과 악의 아포리아를 자본주의 삶 속에 깊숙이 박혀 이미 뼈가 돼버린 우리에게 제기하면서…… 정신병원 앞에 무심하게 서 있는 ‘아메리칸 홀리’는 그 상징이다. 이 근원 화두가 맨해튼뿐만 아니라 지금 이곳, 우리 앞에 제기된 것이라고 깨닫게 해주며 양헌석은 이 땅의 큰 소설가로 귀환하였다. 그 당당한 모습에 가슴이 얼얼해지며 심장이 두근댄다. 강형철 (시인, 숭의여대 문예창작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