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장 =
시끌벅적 젊음의 열기를 불태우며 축제 분위기로 법석을 떨고 있는 교정에서는 어제에 이어 이틀째, 교정을 울리며 교내방송을 하는 방송부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한국대 젊은이들이여! 오늘도 축제를 즐길 준비가 되셨습니까?”
명쾌하고 시원한 여자의 목소리가 한껏 들떠서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오자 너나 할 것 없이 방송을 듣기 위해 하던 일을 멈췄다.
“자, 자! 시간이 없는 관계로 인사는 생략하고 곧바로 한국대학교 축제의 이벤트를 이어 가겠습니다. 제가 듣기론 어제에 이어 오늘도 이벤트에 당첨된 남학생이 없다고 들었습니다. 이렇게 좋은 기회를 놓치다니요! 남성분들 분발하셔야 되는 것 아닙니까? 호호호. 지금부터 5분후, 11시를 기점으로 내일까지 이어지는 이벤트를 다시 시작하기로 하겠습니다. 규칙은 다들 알고 계시죠? 잘 모르시겠다고요? 이런! 그럼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서 다시 한 번 설명 해 드리겠습니다. 귀를 쫑긋 세우세요. 특히 신입생 여러분은 더 잘 들으셔야 할 겁니다. 오예! 우리 한국대학교에서만 있는 거죠? ‘퀸카의 키스를 받아라!’ 2박 3일 축제기간동안 여러 남성분들이 뽑아주신 우리학교의 퀸카 분이 이벤트의 주인공입니다. 그건 알고 계시죠? 워낙에 유명하니까요, 호호호. 이벤트는 오전 11시에 시작해서 오후 5시 안에 끝을 내야 합니다. 기간은 축제기간과 같고요…. 단! 마지막 3일째에는 1시간만이 주어집니다. 여러분도 느끼셨습니까? 제가 너무 들뜬 것 같지 않나요? 그건 다름이 아니라, 이번 25대 퀸카로는 탤런트 은유리 양이 뽑혀서 그렇습니다. 어찌나 몰표를 받으셨는지… 호호호. 그리고 2박3일 동안 은유리 양의 스케줄을 빼기 위해서 무던히도 학장님께서 고생해 주셨습니다. 다시 한 번 깊이 감사드립니다. 솔직히 제 개인적인 생각으론 어제로 이벤트가 마감이 되지 않을까? 라는 무서운 생각을 했답니다. 하지만 오늘까지 이어지다니, 이 무슨 일이랍니까! 아무튼 이 이벤트는 우리의 퀸카 분한테 키스만 받아내면 바로 종료됩니다. 상품으론 당연히 25대 퀸카 분을 3개월 동안 여자친구로 둘 수 있다죠? 홍홍, 무조건 3개월의 계약커플과 무조건의키스입니다. 은유리 양이 싫어하셔도 거부 할 수 없다는 게 규칙이죠! 참으로 이상한 교칙이 다 있다죠? 어디에 계신지 모르겠지만 은유리 양 분발해주시구요. 남학생들 어서 빨리 은유리 양을 잡으세요. 그럼, 카운트다운에 들어가겠습니다. 자, 5, 4, 3, 2, 1, 시작!”
조금 긴 듯한 흑갈색의 머리카락이 멋지게 흩어져 있고 대충 걸쳐 입은 검은색 티가 지금 벤치에 앉아 있는 남자의 매력을 더 해 주는 듯했다. 차갑고 냉정한 카리스마를 내품으며 쌍꺼풀 없이 큰 눈과 붉은 입술을 가지고 있는 참으로 잘생긴 남자는 갑자기 흘러나오는 교내방송을 듣더니 어이없다는 듯이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그 바람에 살짝 내려온 안경을 왼손으로 살짝 치켜 올렸다. 그러고는 읽고 있던 책에서 눈을 들어 옆에 앉아 있는 자신의 베스트 프렌드를 바라봤다.
“아직도 저런 걸 하냐? 왜 저런 걸 하는지….”
“짜식! 뭐 어때서 그래? 좋기만 하구만. 혹시 알아? 이 신정훈 님께서 은유리의 키스를 받을지.”
“허황된 꿈은 패가망신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말이 그렇다는 거지. 넌 꼭 초를 쳐야 직성이 풀리냐? 그건 그렇고 네가 무슨 바람이 불어서 축제기간에 나를 학교로 불러 내냐?”
“축제 끝나고 바로 해외에 나가야 할 일이 생겨서.”
“해외? 나가려면 지금 나갔다 오지. 왜 하필 축제가 끝나고야?”
“후…, 혜린이가 부른다.”
“미친 새끼, 너 아직 도야? 도대체 언제까지 혜린이 한데 매어 살 건데? 이제 혜린이 네 여자 아니야, 인마. 너 이거 불륜인거 알아 몰라? 나야 이해를 한다지만 다른 사람은 그렇게 안 본다고 자식아! 그러면서도 꼭 가야겠어?”
“나도 어쩔 수 없다.”
꽉 눌린 목소리가 남자의 심경을 그대로 내비췄다. 남자는 언제 담배하나를 꺼내 물었는지 자신의 답답한 심정을 내뱉듯 연기를 밖으로 내뿜었다.
“어쩔 수 없긴, 개뿔! 에이 이젠 나도 모르겠다. 네 일이니 네가 알아서 하겠지. 날 불러 낸 이유나 들어 보자. 하물며 해외 간다고 자랑 하려고 보자고 한건 아니지?”
“실없는 놈. 다름이 아니라 유 교수님한테 말씀드렸더니 시험 대신에 리포트를 작성해서 내라고 하시더라. 너도 알잖아. 유 교수님 깐깐하신 거. 도대체 엄두가 나야 말이지. 넌 작년에 유 교수님 수업 A 받았잖아. 그래서 도움 좀 받으려고.”
“자알 한다, 잘 해. 너 내가 작년에 같이 듣자고 하니깐, 혜린이 때문에 미쳐서 대꾸도 안 하더니. 이젠 도와 달라고 하냐? 아주 가지가지 해라, 인마.”
“미안하다.”
“알긴 아냐? 도와달라고 하니까 도와주기는 하겠다만. 친구로서 한마디 충고 하자. 내가 누누이 말했지만, 혜린이는 아니다! 안 된다고! 이젠 알지? 네 형수라는 거.”
“그거 모르면 바보게. 알아, 인마! …내 형수라는 거.”
“알면 됐어! 그것만 잊어버리지 마라. 그리고 도와주는 조건으로 나중에 술사라. 해외에서 돌아오면.”
“훗, 고맙다.”
까무잡잡한 피부를 가진 남자의 친구가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벤치를 붙잡고 스트레칭을 하기 시작했다. 안경을 쓴 잘생긴 남자가 벤치를 붙잡고 용을 써대는 친구를 뒤돌아 봤다.
“너 지금 뭐하냐?”
“뭐하긴! 네가 리포트 도와 달라며? 그러려면 체력을 길러야지. 못해도 오늘 하루 동안은 도서관에서 죽치고 있어야 할 텐데. 노후에 건강한 몸을 간직하려면 지금이라도 몸을 풀어 놔야 돼! 조금만 기다려 자식아, 금방 끝나!”
“정신 빠진 놈.”
“아는 놈이 나한테 리포트를 도와달라고 하냐? 쯧쯧, 세상 말세야 말세!”
“몰라, 새끼야!”
힘줄이 보이도록 벤츠를 움켜잡고 앉았다 일어났기를 반복했다. 정신 사납게 운동하는 친구를 무시한 잘생긴 남자는 손에 들려 있던 책을 펼쳐 다시 들여다봤다.
한 10분정도의 시간이 흘렀을까? 웅성거리는 소리를 동반한 시끄러운 소리에 두 남자는 동시에 고개를 들어 앞을 바라보았다. 어찌된 일인지 한 무더기의 남자들이 모델처럼 매끄럽게 잘 빠진 여자를 열심히 뒤쫓고 있었다. 여자는 그런 다급한 상황에서도 선글라스를 착용하고 미니스커트에 부츠를 신은 잘빠진 다리로 열심히 앞장 서 달렸다.
안경 쓴 잘생긴 남자는 자신과 별반 차이 없이 멍하니 앞만 바라보는 친구를 툭 쳤다.
“정훈아! 저거 뭐냐?”
“그러게, 근데 왠지 이쪽으로 달려오는 거 같지 않냐?”
“네 눈에도 그렇게 보이냐? 내 눈에도 그렇게 보이는데.”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