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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가벗고 춤추마

발가벗고 춤추마

: 장은초 수필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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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07년 12월 02일
쪽수, 무게, 크기 240쪽 | 356g | 149*215*20mm
ISBN13 9788995997116
ISBN10 8995997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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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관련자료 보이기/감추기

저자 : 장은초
경북 포항 출생으로 ‘월간 문학저널’을 통해 등단하였으며 한국문인협회와 편지마을 회원이다. 현재는 수필드림팀의 테마수필 필진으로 활동하고 있다. 국제 환경박람회 환경부 장관상을 수상(1999년)한 바 있고, <나는 너의 마중물이 되고 싶다> 외 다수의 공저를 출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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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략...)
동구 밖에 있는 아름드리 느티나무 밑에서 숨바꼭질은 시작되지만 조그만 마을 전체가 우리들의 술래잡기 무대가 되곤 했다. 동구에서 가장 가까운 순미언니네 집을 ‘마당 깊은 집’이라고 불렀는데, 술래라면 으레 그 집부터 뒤졌다. 넓은 뒤뜰까지 있어 숨을 곳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날도 도둑고양이 걸음으로 순미언니네 집부터 뒤졌다. 온갖 꽃나무와 과실수가 즐비한 앞뜰을 지나 뒤뜰로 살금살금 걸음을 옮길 때 나는 이상한 느낌에 이끌렸다. 뒤뜰 모퉁이에 있는 헛간으로 다가가 문을 홱 열어 젖혔다.
여덟 살 계집아이 눈에 비친 헛간 안의 광경은 더할 수 없는 충격이고 불행이었다. 순미언니와 그 집 머슴이 멍석을 깔아놓고 알몸으로 누워 있었다. 우두망찰해 서있는 나에게 사내의 벼락같은 소리가 들려왔다. 그제야 나는 허둥지둥 그 자리를 벗어났다.
며칠 뒤, 하굣길에서 순미언니네 머슴을 만나게 되었다. 쇠꼴을 한 짐 지고 오던 그는 나를 보자 이내 험상궂은 얼굴을 하더니 내 얼굴 가까이서 낫을 흔들어 보였다. 그 일을 누구에게 이야기했다가는 입이 귀밑까지 찢어지게 될 거라며.
머슴의 겁박이 아니더라도 나는 그 엄청난 일을 나만 알고 있어야 한다는 걸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길을 가다가도 저만치에서 그 머슴이 걸어오면 나는 길 한편으로 비켜서서 딴청을 피웠지만 기실은 오금이 저려 남몰래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그는 나를 제외한 다른 아이들에겐 퍽 자상했던 것 같다. 손재간이 좋았던지 대나무를 쪼개, 낫으로 쓱쓱 다듬으면 이내 늘씬한 뜨개질바늘이 되었고 그 바늘을 여자 애들에게 골고루 나눠주곤 했다. 그러나 나에게만은 지킬박사가 아닌 하이드씨가 되어 금방이라도 쥐어지를 듯 종주먹을 들이대며 *사갈시(蛇蝎視) 하였다.
나름대로 나에게 긴장을 늦추지 않게 하려는 수단이었으리라.
시시각각 조여오는 공포는 여덟 살 계집아이가 감당하기엔 버겁고도 버거웠다. 끝이 보이지 않을 것만 같았던 고난의 시간에서 해방된 건 그 이듬해였다. 머슴은 고용살이가 끝났는지 마당 깊은 집에서 떠났고, 순미언니도 집에서 쫓겨나 부산으로 갔다는 소문만 무성했다.
지독한 악몽에서 깨어나 보니 내 등에는 따스한 햇살이 비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완전한 평화도 포근함도 아니었다. 알 수 없는 그 불안의 정체는 어느 때고 번쩍번쩍 고개를 치켜들고 좀처럼 내 곁을 떠나지 않았다.
몇 달 뒤, 순미언니네도 우리 마을을 아주 떠났고 마당 깊은 집은 타지에서 온 사람이 사서 이사를 했다.
스물여섯에 결혼을 해, 내가 고향 마을을 떠날 때까지 마당 깊은 집의 주인도 두 번이나 더 바뀌었다. 어린 날 나에게 칠흑 같은 고통을 안겨줬던 장본인들도 세월 저편으로 가뭇없이 멀어져갔고 내 가슴속에 남은 상처도 제법 구덕구덕 해졌다.
1980년대 말, 김원일의 ‘마당 깊은 집’이란 소설이 발간되었을 때 지인으로부터 우연히 그 책을 선물 받았다.
(...중략...)
---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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