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프로그램에서는 '조사원'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테마로 잡은 나라에 관한 책을 두루 일곡 나서 취잿거리가 될 만한 사항을 제안한다. 나도 한 덩어리가 되어 취잿거리 찾기에 참가하는데, 그런 작업을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그 나라에 대한 깊은 이해가 싹튼다. 이상과 같은 준비는 그 후 이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내내 습관처럼 돼버렸는데, 나는 이것이 조금도 괴롭거나 귀찮지 않았다. 오히려 차근차근 그러 준비를 해가면서 일에 대한 의욕이 높아져, 내가 스태프의 일원으로 참여하고 있다는 사실을 더더욱 강렬하게 느끼게 되었다.(...)
우라타니 씨의 작업 방식 가운데 가장 신선하게 느낀 것은 나에게 언제나 '놀라움을 주려는' 수법이었다. 무얼 취재할 것인지 미리 손발을 맞춰놓지만, 세상에서 보기 힘든 진귀한 '광경'에 맞닥뜨렸을 때 리포터가 깜짝 놀라면서 감동하는 순간은 일종의 다큐멘터리이기도 하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잡아내면, 시청자들에게 마치 그 자리에 함께 있는 것 같은 현장감을 줄 수 있다. 이것이 그의 지론이었다.(...)
로케를 마치고 일본에 도아오면 '편집'에 들어간다. 담배연기와 커피 향, 밤낮없이 형광등 아래에서 계속되는 작업에 편집실 공기는 늘 탁하다. 정밀기계가 가득 들어찬 좁은 방에서 방대한 양의 영상을 편집해 나가는 일은 아찔할 정도로 치밀하면서도 끈기가 필요한 작업이다. (...) 끝업이 계속되는 작업을 보고 있는 동안에 '편집'이란 장면을 연결시킨다기보다는, 어떻게 솎아내는가가 훨씬 더 중요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따.
1시간짜리 프로그램 가운데 '출제 부분'이라 불리는 해외로케 분은 20분이 채 되지 않는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 열 몇 배, 때로는 스무 배나 되는 시간 동아 촬영이 이루어진다. NG 부분을 제외해도 방대한 분량인데, 어떻게든 그걸 압축해야 한다. 개중에는 도저히 버리기 아까운 부분도 있고, 과정을 진득하게 살펴보아야만 재미이쓴 부분도 있게 마련인데, 대개의 경우 시간과의 싸움 속에서 눈물을 머금고 싹둑 잘라내며 앞으로 나아간다. 항상 '궁극적인 선택'에 내몰린다는 느낌을 받지 않을 수 없다.(...)
출제 VTR의 편집이 끝나자 어느덧 'MA'라고 불리는 음성입력 작업에 들어갔다. 인형을 만드는 작업에 비유하자며 마지막으로 '눈을 만들어 넣는' 과정으로 음악과 내레이션을 첨가하여 작품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것이다. 나는 이 'MA'가 너무 좋았다. 로케이션 단계에서는 미리 정해둔 대사나 현장에서 떠오르는 대로말할 뿐이다. 그러나 내레이션을 집어넣는 작업만큼은 나 나름의 궁리, 아이디어 혹은 기술을 활용해 공들일 여지가 있다.(...)
"영상을 절대로 내레이션으로 설명하지 않는다."
즉 하늘을 찍은 영상을 두고 '푸른 하늘'이라든지, 사람들로 붐비는 영상에다 '대도시를 오가는 사람들'이라는 식으로 보이는 대로의 내레이션을 싫어했다. '내레이션에는 보이는 것 외에 정보를 실어야 한다'라는 것이 우라타니 스타일인 것이다.
--- pp 25~29
당시 방송계에서는 한반도에 관한 보도가 '터부시'되는 측면이 있었다. 반도가 두 개의 나라로 분리되어 있기 때문에 예를 들어 '한반도'로 하느냐 '조선반도'로 하느냐의 표기 문제부터 걸렸다. 괜히 용어 하나를 잘못 썼다가 낭패를 당하는 일이 생겨나므로, 방송기관들은 신경을 곤두세우게 마련이었다. 사소한 실수가 커다란 문젯거리로 발전할 소지가 있는 한반도에 관한 화제는 '아무도 손대고 시어하지 않는' 테마가 되었고, 암묵적으로 '손대지 않는 편이 무난한' 주제가 되고 말았던 것이다. (...)
그런데 88 올림픽을 앞두고 갑자기 한국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서, 한국을 다룬 프로가 절실히 요구되는 상황을 맞이했다. 그러나 현장에는 한국에 관한 지식을 갖춘 스태프들이 거의 없었다. 그런 상황 속에서 나는 안성맞춤의 존재로 떠올랐던 것이다. 한국에 대해서 대학교수나 시사평론가가 아니면 제대로 알고 있는 인재가 없는 상황에서, '수차례 한국을 왕래했고, 한국말도 할 줄 알고, 최근에는 리포터까지 한 적 있는 여배우'라니. 이는 강을 건너려는 데 마침 배를 만난 격이라고 할 수 있었다.
처음엔 의뢰받은 프로 속에서 자잘한 재미거리를 제안하는 정도에 불과했으나, 차츰 프로를 구성하는 단계에서부터 의견을 개진해달라는 요청을 받고 나서는, 아이디어를 짜내는 등 프로 만들기에 직접 참가하게 되었다. (...)
그러는 사이에 나에게 어느덧 '연예계 최고의 한국통'이라는 꼬리표가 붙었다. 나는 이 과분한 수식어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라도 없는 시간을 쪼개 더 자주 한국을 오가며 재미있는 소재를 찾아다니는 데 열중했다.
이리하여 일본에서는 이제껏 겪어본 적이 없는 한국보도의 열풍이 불어닥쳤다. 당시 신문에 실린 TV 프로그램 편성란을 보면 하루에 한국 관련 프로가 두세 가지가 넘는 일이 흔했다.
그런데 나는 어쩐지 아쉬움을 떨칠 수가 없었다. 이렇게도 법석을 떨며 한국을 보도하고 있는데도 왜 '한국이 친근해졌다'는 느낌이 하나도 들지 않는 것일까? 도대체 어디에 원인이 있는가 곰곰이 생각하다가 문득 대부분의 프로가 '특집'형태로 다루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는 그때 한국에 관해 좀더 지속적으로 다뤄야 할 필요를 절감했다. 예를 들어 '세계의 차창 너머로'처럼 말이다. 단 5분에 불과한 프로일지라도 그렇게 지속적으로 방송된다면 우연히 눈길이 머물렀을 때, "아니?" 하며 재미를 안겨줄 수 있다. 거기에 신문 TV 프로그램 편성란에 매일 '한국'이라는 문자가 등장하면 한국이 친근한 존재라는 인상을 안겨줄 것이 틀림없다. 또 평판이 좋은 프로에서 다뤄질 필요도 있다. 언제까지 먹을거리나 관광지에 대한 화제만 다룰 것이 아니라, 켰다 하면 뉴스만 보는 중장년층에게도 사회적인 화제로 어필해야 한다는 생각도 해보았다. 예를 들어 '뉴스 스테이션'같은. (...)
나는 이런 프로에 한국을 정기적으로 소개하는 코너를 만들 수 없을까 고민했다. 한국에는 '병역의 의무'가 있다. 스무 살을 넘은 건강한 남자면 누구든 2년 2개월 간 국방의 의무를 져야 한다. 바로 이웃 나라에서는 청춘의 꽃다운 시절을 2년 2개월 간 군대에서 허비해야 하는데, 그 사실을 일본에서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 아울러 지금도 미국 등지로 이민 가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 배경에 한국이 안고 있는 복잡한 문제점이 있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다.
--- pp 35~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