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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찾아 떠난 젊은이들

꿈을 찾아 떠난 젊은이들

: 한국사 유학생 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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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07년 12월 30일
쪽수, 무게, 크기 295쪽 | 492g | 153*224*20mm
ISBN13 9788991508408
ISBN10 8991508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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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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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최초의 조기유학생 최치원
최치원이 아버지 손을 잡고 서라벌에서 지금의 전라도 영산포까지 10여일을 걸어와 중국행 배를 탄 것은 869년. 12살 소년이 걷기에는 다소 먼 길이었으나 그는 불평 한 마디 없이 아버지 뒤를 따랐다. 중국으로 떠나기 전 아들과 함께한 많은 시간 동안 아버지 최견일은 아들에게 왜 중국에 유학을 가야 하며, 객지에서 어떻게 어려움을 극복해야 하는지 가르쳤다. 아버지는 또한 기울어져가는 신라의 정세에 대해서도 아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했다. 총명한 치원은 아버지의 말을 한 마디도 놓치지 않고 깊이 가슴에 새겼다. ---p. 16

최견일은 6두품 관리였다. 그러나 그는 시대를 읽는 감각이 있었고, 특히 자녀교육에 남다른 관심을 가졌다. 그는 신분사회의 한계를 극복하기 어렵다는 것, 천재적 자질을 타고난 아들을 신라에서 키워서는 크게 출세시킬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6두품이 진골과 같은 지배계급으로 올라서는 데는 당나라에서 과거에 급제하는 것이 첩경이었다. ---p. 22

근세 유학생 효시 김대건 ·최양업
세 소년의 유학길은 세속의 잣대로 볼 때 결코 축복의 길이 아니었다. 지금이야 유학을 떠난다면 모두가 부러워하고 축복하지만 그들이 걸어간 길은 천길 낭떠러지에 난 소로였다. 고통과 죽음이 입을 벌리고 있는 형극의 길, 신앙이 아니고는 결코 걸어갈 수 없는 길이었다. ---p. 59

김대건과 최양업은 신학생이 되기 위한 공부를 하면서 기초교양 과목을 철저히 배웠다. 지금도 신학생들은 사제가 되기 위해 먼저 철학 공부를 끝마쳐야 신학과정에 들어갈 수 있다. 김대건을 1841년 철학과정을 마치고 신학과정으로 진급했다. 사제가 되기 위한 긴 여정에서 반환점을 돈 셈이다. 조선은 그 당시 굳건하게 쇄국정책을 고수했지만 김대건과 최양업은 서구 학문을 배우며 최고의 엘리트로 탈바꿈했다. 나중에 김대건이 조선 관헌에게 잡혀 심문을 받는 기록에도 나오지만 조선 조정도 학문이 뛰어난 김대건을 살려 쓰고 싶어했다. ---p. 66

모방 신부가 조선 천주교회 지도자들과 함께 계획한 ‘맞춤 유학’이 절반의 성공으로 끝난 것은 큰 손실이 아닐 수 없다. 만일 김대건과 그 친구들의 유학이 성공을 거두고 그들이 조선 천주교회의 사제로 공식 활동했더라면 한국의 역사는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그들의 포교활동이 발전된 서구 문화와 문명을 받아들이는 계기가 됐을 것이기 때문이다. ---p. 78

조선 최초 미국 유학생 유길준
유길준이 갑신정변 발발 소식을 듣고 그토록 충격을 받았던 것은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가 그와 뗄 수 없는 인물들이었기 때문이다. 갑신정변 당일 쿠데타 주도 세력에게 칼로 난자당한 뒤 천우신조로 피신, 알렌 선교사에게 치료를 받고 목숨을 건진 민영익은 유길준이 보빙사 사절로 미국에 올 때 특명전권공사로 모셨으며 자신이 일본과 미국에서 유학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준 은인이었다. 동시에 갑신정변을 주도한 세력들도 모두 친구이자 동지였다. 세상의 인연이 선연과 악연으로 교직돼 있다곤 하지만 이렇게 얽히고설키기도 힘들 것이다. ---p. 85

전권대신 민영익은 1883년 11월 10일 뉴욕 항을 떠나 귀로에 올랐다. 그는 수행원으로 따라온 유길준에게 미국에 남아서 새로운 문물을 더 익히고 돌아오라고 했다. 유길준을 국비 유학생으로 남겨 개화 작업을 지속적으로 추진할 수 있기를 바랐던 것이다. ---p. 108

진실은 알 수 없지만, 유길준이 품었던 조선 개화의 꿈과 열정은 식지 않았다. 그는 미국 유학을 포기하고 돌아가는 배에서 모스 교수에게 긴 편지 한 통을 보냈다. 그 편지에서 자신이 조선에 돌아가 어떤 역학을 할지에 대해 썼다. ---p. 116

한국 최초 미 의대 졸업생 서재필
서재필은 샌프란시스코에 남아 노동을 하며 공부를 했다. 지체 높은 양반이었던 서재필, 과거시험에 합격까지 한 그가 일당 2달러를 받고 가구상 광고지를 붙이기 위해 하루에 40여리 길을 뛰어다녔다. 양반으로 어려운 노동이라고는 해본 적이 없는 서재필이 날품팔이로 생계를 이어간다는 것은 견디기 힘든 일이었다. ---p. 132

당시 군의사령부 도서관에는 일본과 중국의 의학 잡지가 많이 있었으나 일본어와 중국어에 능통한 사람이 없어서 자료들이 그냥 방치되어 있었다. 도서관측은 이를 정리할 사람이 필요했다. 조선에서 한문을 배워 과거에 합격을 하고, 일본에서 유학을 했던 서재필만한 적임자는 없었다. 그는 일본어와 중국어 시험에 합격하고 곧바로 도서관에서 일자리를 얻었다.
서재필은 워싱턴 DC에서 일자리를 구한 후 시내에 있는 코크란 대학에 등록해 일년 동안 정규과정을 밟았다. 수업은 저녁 6시에서 밤 10시까지였다. 서재필은 일년 후인 1889년 가을학기에 콜롬비아 대학 의학부에 입학했다. -136

그는 해방과 함께 진주한 미군정의 요청으로 1947년 7월 1일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후 많은 이들은 그가 대통령으로 출마해주기를 간청했으나 그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정쟁에 휘말리지 않고 조용히 미국으로 돌아갈 결심을 굳힌 터였다. 그는 마지막으로 옛 제자인 이승만에게 5·10 총선에 불참한 김구, 김규식 등 남북협상파를 끌어안을 것을 권유했다. ---p. 150

개화의 새벽을 연 박에스터와 하란사
1909년 4월 28일 경복궁에서는 고종의 지시로 윤치호와 김필순이 주관한 관민합동 ‘초대 여자 유학생 환국 환영회’가 열렸다. 열여섯 살 때부터 일본, 벨기에, 영국, 프랑스, 독일, 미국을 거쳐 음악과 미술을 배우고 관립 한성고등여자학교 선생으로 부임한 윤정원과 1900년 볼티모어 여자의과대학을 졸업하고 귀국해 한국 최초 여자 의사로 활동 중인 박에스터 그리고 1906년 미국 오하이오 웨슬리언 대학에서 문학사 학위를 받고 귀국해 상동교회 영어학교 교사를 하고 있는 하란사를 위한 자리였다. ---p. 144.

쉽지 않은 유학생활이었지만 총명했던 박에스터는 일년여 만인 1896년 볼티모어 여자의과대학에 입학했다. 신입생 300명 가운데 최연소였다. ---p. 152

하란사는 1906년 오하이오 웨슬리언 대학교에서 문학사 학위를 받는다. 한국 여성으로는 최초였다. 그녀는 졸업 즉시 귀국해 1906년 11월 시작된 상동교회 영어학교 교사직을 맡아 이화학당을 세운 스크랜튼 부인을 도왔다. 또한 하란사는 민족운동에도 참여했다. 고종의 밀지를 받아 1919년 6월 파리에서 열린 파리강화회의에 의친왕을 밀사로 파견할 준비를 하기도 했다. ---p. 160

한국 최초의 미국 대학교 박사 이승만
밀사로서의 역할을 끝낸 이승만은 귀국을 포기하고 자신이 가고자 했던 길을 찾는다. 기록들을 보면 이승만은 미국행을 택했을 때 이미 그곳에서 공부할 생각을 굳히고 있었다. 그는 미국으로 떠나기에 앞서 한국 내 저명한 미국인 선교사들로부터 무려 19통의 추천서를 받아놓았다. 선교사들이 써준 추천서에는 한결같이 이승만이 정치범으로 7년 간의 감옥생활을 하면서 40여 명의 동료 죄수들을 개종시킨 사실과 그가 조선의 기독교계 거물로 성장할 것이니 미국에서 공부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달라고 요청하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p. 174

이로써 그는 1909년 8월 하버드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동시에 프린스턴 대학원에서 박사논문 작성에 들어가 그 이듬해인 1910년에 집필을 끝냈다. 이승만은 1910년 6월 14일 프린스턴 대학교 졸업식에서 윌슨 총장으로부터 박사학위를 받았다. 우리나라 유학사에 또 하나의 기록이 추가되는 순간이었다. 이승만은 명시상부하게 세계 최고의 대학에서 한국인 첫 번째로 박사학위를 취득한 것이다.
---p. 179~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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