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바닥을 아무리 굴러봐도 보이는 건 답답한 좁은 방 안뿐이었다. 정사각형의 1평 반 남짓한 방 안에는 오래된 텔레비전, 옷장, 책상, 컴퓨터가 전부였고 지저분한 방바닥에는 만화책들이 사방에 흩어져 있었다. 그 답답한 현실세계를 벗어나려는 듯이 그녀는 만화책 세상에 흠뻑 빠져들면서 가끔가다 겨드랑이에 손을 집어넣고는 북북 소리가 나게 긁으면서 큰소리로 웃었다.
“골 때리네.”
밖에 나갈 일이 없는 그녀는 벌써 3일째 머리도 감지 않았다. 그 덕에 기름기로 찌든 부스스한 머리카락은 비듬으로 엉망진창이었고, 운동도 제대로 하지 않아 얼굴은 푸석하면서도 포동포동했고, 뱃살은 불룩 튀어나와 삼겹살을 만들었다. 그녀는 방구석에 처박혀서 손끝에 물기 하나 묻히지 않으면서 만화책 삼매경으로 빠져들었다. 요즘 낙이라고는 방바닥을 뒹구는 일뿐이었다. 몸을 돌려 배를 바닥에 깔면서도 여전히 만화책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그때 갑자기 문이 벌컥 하고 열렸다. 깜짝 놀란 그녀는 반사적으로 몸을 벌떡 일으켰다.
“이걸 죽여? 살려? 내가 이런 꼴 보려고 널 낳은 줄 알아? 지금 네 나이가 몇 살이냐? 스물여덟 살이다. 스물여덟! 이제 내일이면 스물아홉 살이 되는 거야. 그런데도 아직까지도 부모한테 빌붙어 살아? 정 공부하기 힘들면 시집이라도 가든지. 아이고, 내 팔자야. 저걸 딸자식이라고 미역국을 먹었으니, 나도 한심하지. 가져다 버릴 수도 없고. 네 몰골 좀 봐라. 벌써 6년째다, 6년째!”
어머니는 혀를 끌끌 찼다.“내가 어때서?”
그녀는 입술을 삐죽거렸다.“어이구, 입은 있다고 말대답은 꼬박꼬박 해요. 직장을 구하든 시집을 가든 둘 중에 한 가지는 해. 나도 이제 더 이상 네 뒷바라지하며 이러고는 못 산다.”
“누가 이런 딸 낳으래? 이왕 낳을 거면 좀더 괜찮은 딸로 낳던가? 얼굴도 그냥 그렇지, 똑똑하다고 생각했는데 맨날 떨어지는 것 보면 나도 멍청한가봐. 이런 나더러 어떡하란 말이야?”
그녀는 가슴 밑바닥에 쌓여 있던 울분을 해소하듯이 소리를 꽥 질렀다.
“뭐? 이것이……. 아이고, 내가 전생에 뭔 죄를 지었길래 이러면서 살아야 한단 말이냐. 내일부터는 하루 종일 집에 있을 생각도 하지 마. 열심히 시험 준비한다 싶더니 요 근래 왜 이러는 거야? 이젠 포기하는 거야? 그렇다면 나도 대환영이다. 정 시험 포기가 안 된다면 아침 9시 전에 나가서 저녁 6시 이후에나 들어와. 이젠 더 이상 나도 봐줄 수가 없어. 나도 이젠 동네 창피해서 도저히 얼굴 들고 다닐 수가 없어. 내 사정 모르는 사람들은 나한테 답답한 소리만 하는데 더 이상 나도 못 참겠다. 그리고 하루 종일 집구석에 처박혀 만화책이나 보는 건 이제 나도 용납 못해. 이건 딸이 아니라 웬수여, 웬수.”
“알았어, 그러면 나가면 될 거 아니야. 나갈 때 돈 줘.”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어머니의 눈초리가 살벌해지자 그녀는 놀라서 몸을 움츠렸다.
“한푼도 없어. 네가 아르바이트를 하든 직업을 구하든 알아서 해.”
“나한테 몸 팔라는 소리야?”
“뭐? 딸내미라는 것이 못하는 소리가 없어? 어휴! 내 팔자야. 저걸 죽여? 살려?”
“문 닫고 가!”
소리를 꽥 질렀지만 마음은 편치 않았다. 방금 전까지 즐겁게 읽었던 만화책을 다시 집어 들었지만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신경질적으로 손에 꼭 쥐고 있던 만화책을 벽을 향해 힘껏 내던졌다.
“누군 직장 구하기 싫어서 이렇게 방바닥을 박박 긁고 있는 줄 아나? 후우! 내일이 신정이라서 며칠만 머리 식힐 겸 만화책이나 읽으려고 했던 건데. 당사자인 내가 얼마나 힘들어하는 줄도 모르고 엄마라는 사람은 그거 하나 이해해주지 않으니……. 후우!”
바닥에 등을 대고 누워 천장을 뚫어지게 노려봤다. 왜 이리 그녀의 인생은 지겹고 재미가 없는 건지 하는 허탈한 생각에 한숨이 저절로 나왔다. 재미없는 인생이라도 만화책 속에 나오는 성공한 주인공으로 탈바꿈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에 마음이 더 착잡해졌다. 아니, 그녀가 진정으로 원하는 건 단 한 가지뿐이었다.
잘나가는 멋진 여검사.
대학교를 졸업할 당시만 해도 자신의 모습이 이럴 거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했다는 사실에 또다시 한숨이 저절로 입술을 비집고 흘러나왔다.
“누구는 이렇게 살고 싶어서 사는 건가? 어디 특별하게 예쁘기나 해? 그것도 아니면 귀엽기라도 해? 키는 똥자루만 해서 여성적인 매력도 없고, 가슴도 납작하고 힙은 크고……. 으아! 말하다보니 미치겠군. 결론적으로 내가 할 수 있는 건 공부밖에 없다는 말이잖아.”
머리를 쥐어뜯으면서 얼굴을 우거지상으로 일그러뜨렸다.
“뭐 신나는 일 없나? 왜 내 인생은 이렇게 지루한 거지? 허릿살은 자꾸만 늘고……. 한숨이 저절로 나오는군. 느는 건 두툼한 살과 주름살뿐이니 내 청춘을 돌려줘!”
혼잣말로 중얼거리다가 방바닥을 박차고 일어난 그녀는 얼굴을 거울에 바짝 가져다 대고는 손가락으로 눈가를 만지작거렸다. 화장기 하나 없는 푸석한 얼굴을 보고 있노라니 두려움이 엄습했다. 이러다 결혼도 해보지 못하고 노처녀로 30대, 40대를 거쳐 50대, 60대 할머니가 되는 건 아닌가 하는 공포에 사로잡혔다.
“그래. 이 살들 때문이라도 동네 한 바퀴 돌고 오자.”
물컹거리는 옆구리를 만지작거리다가 추리닝으로 갈아입고 남들이 그녀를 알아보지 못하도록 모자를 푹 뒤집어쓰고 하얗다 못해 누렇게 변한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문을 열었다. 혹시라도 어머니 눈에 띌까봐 007작전처럼 주위를 두리번거리면서 소리 나지 않게 발뒤꿈치를 들고 집을 나선 순간 숨을 깊이 내쉴 수가 있었다. 하지만 차가운 겨울바람이 몸을 사정없이 떨게 만들었다. 그녀는 본능적으로 추위를 이기려는 듯이 몸을 잔뜩 웅크리고는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1, 2월이 지나면 봄이 올 것이다. 지금 그녀의 인생은 겨울이지만 빨리 봄이 와서 꽃을 활짝 피웠으면 하는 희망이 가슴 가득했다.
마두도서관을 지날 때쯤, 냉기가 펄펄 나는 바람 때문에 머리를 완전히 숙이고 발끝만 보면서 내달렸다. 도서관을 나서는 서너 명의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들을 보는 순간 동병상련을 겪는 사람처럼 마음이 심란해졌다. 그녀의 일상생활도 도서관에서 시작해서 도서관에서 끝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곳을 지나 정발산 정상을 향해 오르막길을 힘차게 내달렸다. 숨이 턱에 차오르면서 서서히 발걸음이 무거워졌다. 드문드문 조깅하는 사람들이 보였지만 그녀처럼 젊은 사람은 눈에 띄지 않고 대부분이 할아버지, 할머니거나 적어도 40대 이상이었다. 여기서도 그녀는 환영 받지 못하는 사람처럼 여겨지자 저절로 한숨이 튀어나왔다.
“한숨만 늘겠군. 우울한 생각만 하면 빨리 늙는다는데 걱정이다, 걱정. 그런데 달리기 말고 할 거 없나?”
주위를 둘러보다가 훌라후프를 발견하고는 발걸음을 재빠르게 옮겼다. 세 개가 하나로 묶여 있어서 무게가 만만치 않았지만 돌리기 시작하자 수행하는 기분이 들었다. 입김이 나올 때마다 하얗게 서리가 생겼다. 하지만 마스크 덕에 그 입김은 눈썹 위로 올라가 그녀의 눈썹을 하얗게 만들었다. 잘하면 산타클로스 할아버지의 보조 꼬마요정, 아니 할머니라고 해도 어울릴 것 같았다. 어쨌든 조깅에 이어 훌라후프를 하다보니 몸에서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올해는 무슨 수를 쓰더라도 꼭 합격하고 말 테다. 언제까지나 이렇게 공부만 하다가 늙어 죽을 수는 없잖아. 그리고 무엇보다 이렇게 괄시 받고 살 수는 없지. 난 할 수 있다!”
두 주먹을 불끈 쥐고는 하늘을 향해 소리치면서 곧게 팔을 내뻗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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