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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몬향기를 맡고 싶소

레몬향기를 맡고 싶소

: 이상 산문집

이상 | 예옥 | 2008년 01월 25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리뷰 총점7.0 리뷰 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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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08년 01월 25일
쪽수, 무게, 크기 238쪽 | 370g | 140*200*20mm
ISBN13 9788995761298
ISBN10 89957612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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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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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자 : 박현수
경북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문학평론가이자 시인. 시집 『우울한 시대의 사랑에게』 『위험한 독서』가 있고, 연구서 『현대시와 전통주의의 수사학』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의 수사학』 『한국모더니즘 시학』, 시비평집 『황금책갈피』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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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버릴까 그런 생각을 하여봅니다. 벽 못에 걸린 다 해어진 내 저고리를 쳐다봅니다. 서도西道 천리를 나를 따라 여기 와 있습니다 그려! 등잔 심지를 돋우고 비망록에 불을 켠 다음 철필로 군청빛 ‘모’를 심어갑니다. 불행한 인구人口가 그 위에 하나하나 탄생합니다. 조밀한 인구가. 내일은 진종일 화초만 보고 놀리라, 탈지면에다 알코올을 묻혀서 온갖 근심을 문지르리라, 이런 생각을 먹습니다. 너무도 꿈자리가 뒤숭숭하여서 그러는 것입니다. ---「산촌여정」 중에서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는 상태 이상으로 괴로운 상태가 또 있을까. 인간은 병석에서도 생각한다. 아니 병석에서는 더욱 많이 생각하는 법이다. 끝없는 권태가 사람을 엄습하였을 때 그의 동공은 내부를 향하여 열리리라. 그리하여 망쇄忙殺할 때보다도 몇 배나 더 자신의 내면을 성찰할 수 있을 것이다. 현대인의 특질이요 질환인 자의식 과잉은 이런 권태치 않을 수 없는 권태계급의 철저한 권태로 말미암음이다. 육체적 한산閑散 정신적 권태 이것을 면할 수 없는 계급이 자의식 과잉의 절정을 표시한다. ---「권태」 중에서

나는 그분들게 돈을 갖다 드린 일도 없고 엿을 사다드린 일도 없고 또 한 번도 절을 해본 일도 없습니다. 그분들이 내게 경제화를 사주시면 나는 그것을 신고 그분들이 모르는 골목길로만 다녀서 다 해뜨려버렸습니다. 그분들이 월사금을 주시면 나는 그분들이 못 알아보시는 글자만을 골라서 배웠습니다. 그랬건만 한 번도 나를 사살하신 일이 없습니다. 젖 떨어져서 나갔다가 23년 만에 돌아와보았더니 여전히 가난하게들 사십디다. 어머니는 내 대님과 허리띠를 접어주셨습니다. 아버지는 내 모자와 양복저고리를 걸기 위한 못을 박으셨습니다. 동생도 다 자랐고 막내누이도 새악시 꼴이 단단히 박였습니다. 그렇건만 나는 돈을 벌 줄 모릅니다. 어떻게 하면 돈을 버나요, 못 법니다. 못 법니다. ---「슬픈 이야기」 중에서

과거를 돌아보니 회한뿐입니다. 저는 제 자신을 속여왔나 봅니다. 정직하게 살아왔거니 하던 제 생활이 지금 와보니 비겁한 회피의 생활이었나 봅니다. 정직하게 살겠습니다. 고독과 싸우면서 오직 그것만을 생각하며 있습니다. 오늘은 음력으로 제야除夜입니다. 빈자떡, 수정과, 약주, 너비아니, 이 모든 기갈의 향수가 저를 못살게 굽니다. 생리적입니다. 이길 수가 없습니다. 가끔 글을 주시기 바랍니다. 고독합니다. 이곳에는 친구 삼을 만한 사람이 없습니다. 아직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언제나 서울의 흙을 밟아볼는지 아직은 망연합니다. 저는 건강치 못합니다. 건강하신 형이 부럽습니다. ---「편지 3」 중에서

나는 내 아내를 버렸다. 아내는 “저를 용서하실 수는 없었습니까” 한다. 그러나 나는 한 번도 ‘용서’라는 것을 생각해 본 일은 없다. 왜? ‘간음한 계집은 버리라’는 철칙에 의혹을 가지는 내가 아니다. 간음한 계집이면 나는 언제든지 곧 버린다. 다만 내가 한참 망설여가며 생각한 것은 아내의 한 짓이 간음인가 아닌가 그것을 판정하는 것이었다. 불행히도 결론은 늘 ‘간음이다’였다. 나는 곧 아내를 버렸다. 그러나 내가 아내를 몹시 사랑하는 동안 나는 우습게도 아내를 변호하기까지 하였다. ‘될 수 있으면 그것이 간음은 아니라는 결론이 나도록’ 나는 나 자신의 준엄 앞에 애걸하기까지 하였다.
---「19세기식」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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