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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맑고 고요한 빛 - 선사부터 고려까지
시원 - 반구대 암각화 영원 - 안악2호분 무덤 주인공의 초상 신명 - 무용총의 춤그림 활달 - 무용총의 사냥그림 긴장 - 강서대묘의 현무도 아늑함 - 산수문전 발금 - 천마총의 천마도 정성 - 대방광불화엄경변상도 섬세 - 어제비장전의 판화 기쁨 - 관경변상도 빛 - 아미타삼존도 투명 - 수월관음보살도 은은함 - 지장보살도 뜻 - 이제현의 기마도강도 2. 삶 혹은 꿈의 기록 - 조선 초기 꿈 - 안견의 몽유도원도 그림과 시 - 적벽도 명상 - 강희안의 고사관수도 선 - 이상좌의 나한상 고결 - 이수문의 묵죽 신령 - 석경의 운룡도 선비정신 - 양팽손의 산수도 여운 - 소상팔경도 만남 - 독서당계회도 부드러움 - 이암의 모견도 따사로움 - 신사임당의 초충도 3. 밝고 너그러운 마음 - 조선 중기 해학 - 김시의 동자견려도 느림 - 함윤덕의 기려도 곧음 - 관폭도 호젓함 - 고사탁족도 호방 - 이정의 산수도 기운 - 윤의립의 산수도 깨달음 - 김명국의 달마도 의연 - 김명국의 탐매도 담담함 - 조속의 노수서작도 화려 - 조속의 금궤도 중후 - 송시열 초상 꿋꿋함 - 어몽룡의 월매도 상큼함 - 황집중의 묵포도도 4. 조선의 멋과 맛 - 조선 후기 혼 - 윤두서의 자화상 미소 - 윤두서의 노승도 현장감 - 윤두서의 석공도 장엄 - 정선의 인왕제색도 화음 - 정선의 금강전도 단아 - 정선의 독서여가 장쾌 - 정선의 박연포 경쾌 - 정선의 만폭동 정갈함 - 조영석의 조영복 초상 섬세 - 변상벽의 묘작도 생동 - 김두량의 흑구도 고적 - 심사정의 강상야박도 초월 - 심사정의 선유도 굳셈 - 이인상의 설송도 탈속 - 이인상의 검선도 포근함 - 김윤겸의 지리산 안목 - 강세황의 자화상 산뜻함 - 강세황의 영통동구 운치 - 이인문의 누각아집도 한마당 - 김홍도의 씨름 인정 - 김홍도의 서당 추억 - 김홍도의 단원도 동경 - 김홍도의 군선도 청아 - 김홍도의 마상청앵 참함 - 김홍도의 구룡연 쓸쓸함 - 김홍도의 추성부도 여유 - 박제가의 목우도 넉살 - 김득신의 야묘도추 어여쁨 - 신윤복의 미인도 은근 - 신윤복의 월하정인 싱그러움 - 신윤복의 연소답청 화창 - 신윤복의 소년전홍 무애 - 최북의 공산무인도 괄괄함 - 최북의 풍설야귀인 기품 - 정조대왕의 파초 일상 - 이방운의 빈풍도 그리움 - 정약용의 매조도 질박 - 윤제홍의 한라산도 시원함 - 신위의 묵죽 터 - 이의성의 하회도 고요 - 이재관의 오수도 5. 그림의 깊이와 넓이 - 조선 말기 푸르름 - 김정희의 세한도 오묘 - 김정희의 불이선란 향기 - 조희룡의 묵매 바람소리 - 허련의 산수도 명쾌 - 전기의 계산포무도 견고 - 정학교의 괴석 힘 - 장승업의 호취도 고상 - 장승업의 고사세동도 기개 - 채용신의 황현 초상 떳떳함 - 채용신의 최익현 초상 친근 - 까치호랑이 새김 - 문자도 기원 - 십장생도 흐뭇함 - 책거리 |
글박영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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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그림은 물기를 어떻게 잘 조절하느냐에 따라 그 격이 달라진다. 종이의 미세한 결에 따라 스며드는 수분의 양을 적절히 조절하는 것은 화가의 노련한 감각에 의해서 가능하다. 뿐만 아니라 화가는 붓을 쓰는 속도의 완급을 잘 운용하여야 생동감을 얻을 수 있는데, 그런 필치는 오랜 습작에 의해서도 가능한 것이지만, 사물의 생리를 관찰하고 체득하는 가운데 몸으로 느껴서 얻어내는 것이 아닌가 한다. 대상이 가진 명료한 기질과 물성을 생동감 있게 읽어낸 화가 가운데, 가히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이가 바로 오원吾園 장승업張承業(1843~1897)이다. 「호취도」를 보면 그가 얼마나 능숙하게 뭇을 다루었는지 가늠할 수 있다. 그림이란 따지고 보면 물질의 세계를 얼마나 이해하느냐에 따라 보기 좋은 것이 되기도 하고 자연스럽지 못한 것이 되기도 한다. 그 물질의 세계란 소재에 따라 다리 나타나는 운동감과 변화가 그 하나이고, 그것을 질료를 통해 드러내는 물리적 특성이 또 다른 하나이다. 장승업은 이 물질의 세계를 천성적으로 터특한 거장이다.
p.368 |
어느 따사로운 봄이었던가. 저 존재의 의미를 환기시키는 정면 대결의 눈빛을 보기 위해 해남에 갔다. 공재 윤두서(1668~1715)의 자화상은 연꽃마을 윤씨 종가에 대를 이어 보존되어 오고 있다.
해남에 다녀온 이후, 좋은 인쇄본을 구해 대학에서 학생들과 같이 그대로 그려보기로 했다. (중략) 원본의 재료와 기법을 연구하여 임모(臨摹)하는데 꼬박 한 한기가 필요했다. 학생들은 이구동성으로 기가 질렸다. 이 그림의 빈틈없는 묘사는 우리의 모필이라는 물건과 그것을 다루는 이의 필력(筆力)에 기인한 것이었다. (중략) 가장 어려운 부분은 수염과 눈이다. 철사처럼 빳빳하고 예리한 선으로 수염을 그을 수 있다 하더라도 부드러운 안면에서 시작하는 연결 부위가 자연스럽지 않을 것이 문제다. 이 부분은 제비가 물을 차고 날아가듯 노련한 필법이 필요하다. 더 큰 문제는 눈빛이다. 안광(眼光)의 기운이 그림의 등급을 결정한다. 이즈음에서 윤두서와 오늘 사이의 삼백년 시공을 건너 뛰어야 한다. 윤두서가 누구인가. 저 오우가(五友歌)로 유명한 윤선도의 증손이다. 스물다섯에 진사가 되었지만 당쟁에 휘말려 벼슬을 포기해야 했고, 피붙이와 벗들이 저 세상으로 줄줄이 떠나가자 고향에 내려와 붓한자루에 시름을 맡긴 인물이다. 자신보다 먼저 저 세상으로 떠난 친구 정재 심득경(1673-1710)을 그린 초상을 보면 그가 대상의 겉모습과 속모습을 표현하기 위해 얼마나 애쓴 화가인지 알 수 있다. 친구가 별세한지 석 달 만에 그린 이 초상을 보고 그 집안 사람들이 마치 친구가 살아서 돌아온 것처럼 울었다고 한다. 생각만으로 그린 그림이 그토록 진한 감동을 줄 수 이는 것은 대상에 대한 화가의 극진한 애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속마음을 읽어야 느낌도 큰 법이다. pp.178~181 |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는 또 다른 「자화상」에, 그의 얼굴은 세월의 무게로 패인 깊은 고랑이 역력하나, 아무나 함부로 침범할 수 없는 위엄과 고집이 배어난다. 이 자화상은 직경이 한 뼘도 안 되는 아주 작은 것인데도 그 치밀한 짜임새로 보는 이를 압도한다. 나는 이 그림의 임모작 한 점을 집에 걸어 놓고 본 지 오래되었다. 얼핏 보면 깐깐한 성미가 먼저 느껴지지만, 한편으로 오랜 시간 내공의 힘을 키워 역사 속에 두렷한 족적을 남긴 한 인간의 올곧은 의지 앞에 숙연한 마음이 들기 때문이다. 그 얼굴 그림에 부쳤음직한 또 하나의 「화상자찬畵像自讚」을 보자
세상일에 어둡고 소홀한 얼굴에 쇠락한 마음을 지녔다. 평생 갈고 닦은 것을 시시험해 볼 기회가 없었으니, 세상은 그 깊이를 알지 못한다. 홀로 한가한 시간을 내어 시를 쓰고 그림을 긜니, 때로 기이한 모습과 예스런 마음을 담아 낸다. 그런 그가 61세에 비로소 첫 벼슬길에 올라 마침내 정2품에 이르니, 할아버지 이래 삼대가 정경正卿에 70세 이상 장수하여, 기로소耆老所회원이 되는 이른바 '삼세기영지가三世耆英之家'의 영광을 누리게 된다. 그러나 무엇보다 그는 한 사람의 격조 높은 문인화가이자 서화평론가로서 18세기 예단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였으니, 특히 김홍도와 신위를 키워낸 안목 있는 스승으로도 높이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pp.244~24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