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다양한 일들 중 드물게 일어나는 일 하나가 절정에 다다른, 아주 좋은 시기였다. 결국 그게 환각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절정의 순간에 이르러 이제까지 걸어온 길이 어쩌면 환상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그런 점에서 절정이란 전환점의 다른 말이다.--- p.24
문제는 진짜냐 가짜냐가 아니라는 것이죠. 보는 바에 따라서 그것은 진짜일 수도 있고 가짜일 수도 있습니다.(…) 이상과 관련해서는 열정이나 논리를 뛰어넘어 믿느냐 안 믿느냐의 문제란 말입니다. 진짜라서 믿는 게 아니라 믿기 때문에 진짜인 것이고 믿기 때문에 가짜인 것이죠.--- p.97
운명이 아무리 광대하고 폭력적이라고 하더라도 인간만은 그 운명과 맞서 자신의 의지를 실현시킬 수 있는 존재다. 그러나 과연 우리가 의지를 가지고 맞선다고 할 때, 맞서는 그 대상을 일러 운명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한 번이라도 전기를 써본 사람이라면 우리의 의지가 맞서는 그 대상이 아니라, 바로 우리의 의지 자체가 운명이라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할 것이다.--- p.147
운명은 마지막 순간에 이르러서야 자신의 진짜 얼굴을 보여줄 뿐이다. 운명은 논리적으로 인간의 의지에 맞서지 않는다. 다만 마지막 한순간에 모든 것을 보여준다. 씨앗이며 고목을, 꽃이며 과실을, 새순이며 낙엽을, 탄생이며 죽음을. 그 속에 인간의 보잘것없는 의지까지 포함돼 있음은 물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