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공학도의 자괴감을 대신하여
학기 중간에 받은 한 학생의 글이 마음을 무겁게 했다. 그 학생은 글쓰기 수업을 들으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지만 실망감과 자괴감을 가장 크게 느꼈으며, 신경을 많이 써서 열심히 했는데도 점수가 좋지 않아 속상하다고 했다. 그래서 글쓰기 교수인 저자는 물론 자기 자신에게도 화가 난다고 썼다. 내가 읽을 줄 뻔히 알면서도 그렇게 써 놓은 걸 보면 마음에 맺히는 바가 컸던 모양이었다. 나는 미안하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했다. 이 책은 그런 미안함과 부끄러움을 조금이라도 만회하기 위해 쓴 것이다. 더불어 이공계 학생들이 글쓰기 시간에 실망감과 자괴감을 조금이라도 덜 느끼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에서 집필한 것이기도 하다.
올해로 8년째 글쓰기를 가르치면서도 이공계 학생들의 글쓰기 스타일이 인문 사회 계열 학생들과 다르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은 얼마 되지 않는다. 고작해야 2~3년에 불과하다. 그 이전까지는 그냥 학생들의 수준 차이라고만 여겼다. 한 반의 32%에 달하는 학생들이 중도에서 포기하는 사태가 벌어져도, 나는 그저 그들이 게으르고 의지가 박약한 탓이라고 치부했다. 글쓰기는 기본적으로 책을 많이 읽고 많이 써봐야 실력이 느는데, 실상이 그렇지 못하니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들의 취향이나 생각의 패턴, 학습 지향성이 다르다고는 조금도 생각지 못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 똑같은 내용으로 진행하는데도 인문 사회 계열 학생들은 대부분 잘 따라왔고 결과도 좋았기 때문이었다.
문제는 내게 있었다. 계열 구분 없이 똑같은 내용으로, 똑같은 강도로 진행했다는 게 문제였다. 계기가 있었다. 대학에서 공학교육인증제를 도입하면서 기초-중간-기말 설문을 받게 되었는데, 그 결과 학생들의 적나라한 요구와 불만이 터져 나왔던 것이다. 문제 생산성이나 창의력 향상을 위한 글쓰기보다는 기본적인 글쓰기 능력을 키워 달라는 게 학생들의 희망이었다. 공과대학 교수들의 요구도 마찬가지였다. 기본적인 문장 훈련조차 안 된 학생들이 많다면서 다른 건 몰라도 되니까 제발 말이 좀 되게, 정확하게 쓰는 법부터 가르쳐 달라는 것이었다. 사실 우리나라의 글쓰기 교육은 기본적이고 효과적인 문장 훈련이나 논리적 구성보다는 생각하는 힘과 창의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러한 사정은 더욱 강화되고 있는 추세이다. 특히 가르치는 사람과 배우는 사람이 모두 문과인 논술 시장은 그 정도를 더욱 심화시키고 있는 듯하다.
그런데 이공계 학생들의 속사정은 전혀 그렇지 못했다. 오직 수능에 '올인'한 결과 중고교에서 제대로 된 글쓰기 교육을 받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문과 학생에 비해 언술 텍스트 자체를 대하는 빈도수도 훨씬 낮다. 그래서 언어에 대한 감각이 뒤떨어지는 게 사실이다. 인지과학자 하워드 가드너의 말을 빌려 얼마간의 위험을 무릅쓰고 말한다면, 이공계 학생들은 문과생에 비해 논리수학 지능이 뛰어난 반면 언어 지능은 조금 낮은 것 같다. 이는 근본적으로 언어에 대한 취미나 취향 자체가 다른 데서 기인된 듯하다. 처음부터 언어 과목이 싫었다는 학생들의 고백이 이를 뒷받침한다. 이런 특징은 이들의 문장 구사에도 그대로 드러난다. 이공계 학생들은 글을 쓸 때 마치 수학 문제를 풀듯이, 혹은 순서도를 그리듯이 한 문장 안에 여러 가지 정보를 연속적으로 늘어놓기를 좋아한다. 원인과 결과를, 주장과 근거를 모두 한 문장 안에 집어넣는다. 그러니까 더 이상 쓸 말이 없다. 이미 할 말을 다한 것이다. 인과를 한 문장 안에 다 넣으려니 문장이 길어지고, 문장이 길게 이어지니 자연히 앞뒤가 안 맞는 비문이 생길 수밖에 없다. "말이 안 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기본적인 글쓰기 훈련을 학생 개인에게 맡길 수는 없다. 내가 아는 한 자발적으로, 자기 혼자서 글쓰기 연습을 할 수 있는 학생은 거의 없다. 글쓰기는 고통스런 작업이다. 때문에 어떤 형태로든 외적 강제가 주어지지 않으면 안 된다. 문제는 '어떻게'이다. 어떻게 가르치느냐는 것이다. 이 책은 그 점을 가장 깊이 고민하였다. 글쓰기를 싫어하고 힘들어하는 학생들에게 어떻게 동기를 유발할 것인가, 가능한 한 단시일 내에 글쓰기의 기본기를 갖추게 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더 나아가 어떻게 하면 글쓰기를 잘해서 좋은 학점을 받고 원하는 회사에 취직할 수 있는가 등을 고민한 것이다.
이 책은 원론을 강조하지 않는다. 글을 잘 쓸 수 있는 여러 가지 요령과 전략을 강조한다. 어떤 측면에서는 창작의 방법이 아니고 모방의 기술이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그래서 글쓰기에 대한 접근법은 매우 구체적이고 실제적이다. 철저하게 예문 중심으로 씌어졌다. 예문의 대부분은 글쓰기의 교육 현장에서 직접 생산된 것들이다. 내가 과제를 내주면 학생들은 써 오고, 내가 그것을 첨삭해서 되돌려주면 학생들은 다시 쓰기를 반복하는 과정에서 나온 것들이다. 따라서 학생들은 이 책의 공동 저자들이다.
한 사람의 시인으로 돌아가 말하자면, 글이란 이 세계에 대한 '앎'과 자신의 '삶'을 소통시켜 주는 가장 내밀한 통로이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믿고 있다. 글은 다른 감각 기관이나 질료들과 달라서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으며 만져지지 않고 냄새 나지 않는 무엇인가를 드러낸다. 어쩌면 그곳에 우리 삶의 진면목 혹은 또 다른 의미가 있는지도 모른다. 의미는, 대상과 달리 스스로 참여해야만 발견할 수 있고 만질 수 있다. 비록 그것이 글로는 표현될 수 없는 불립문자(不立文字)일지라도, '쓰기' 그 자체가 대상에 대한 적극적 참여이며 의미의 발견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았으면 한다. 물론 그 과정은 참으로 지난하다. 결코 끝나지 않는 여행이다. 하지만 기이하게도 바로 그 점에 글쓰기의 매력이 있다. 나는 학생들이 지난하지만 매력적인 그 길의 입구를 이 책에서 발견하기를 바란다.
고마운 사람들이 많다. 가장 먼저 이 책의 공동 저자인 학생들에게 깊은 애정과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그들은 내 수업이 힘들다는 걸 알면서도 잘 따라주었다. 그리고 집필에 필요한 자료를 도와주신 분들께도 깊은 감사를 드린다. 서울시립대학교 환경공학부의 구자용 교수, 전자전기컴퓨터공학부의 박병은 교수, 화학공학과의 정철수 교수, 한국산업기술대학교 홍보실의 송영승 과장, 쌍용양회 홍보실의 이중민 차장, KT문화재단의 김창수 부장, 중앙일보와 한겨레신문의 여러 기자들께서 도움을 주셨다. 또 생능출판사의 여러 식구들께도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특히 원고가 늦어졌는데도 꾹 참고 기다려주신 생능출판사의 김봉석 상무님과 편집을 맡아 고생이 컸던 강소연 씨께 각별한 마음을 담아 한 잔 따라야겠다.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