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의 첫 번째 부분은 전근대 동아시아의 국제관계에 관한 내용이다. 여기에 포함된 글은 네 편인데, 그 내용은 대체로 다음과 같다.
하원수 교수의 「唐後期 對外認識의 兩面-李德裕와 牛僧孺를 중심으로」는 9세기 중엽 失地의 회복과 回遺民의 포섭에 소극적이던 牛僧孺와 이에 대하여 적극적이던 李德裕의 상이한 대외인식을 설명하고, 이것이 각각 황제와 관료·士人들의 입장을 반영한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종래 이 두 사람이 주도하였다고 여겨진 ‘牛李黨爭’의 성격을 국제관계라는 측면에서 재검토할 수 있는 가능성을 시사하며, 이를 통해 士大夫들이 주도한 宋代 이후 사회에서 內治를 강조하는 소극적 對外政策이 두드러진 까닭도 이해할 수 있다.
박종기 교수의 「11세기 고려의 대외관계와 정국운영」은 고려 顯宗 시기 이래 거란과의 관계를 둘러싼 두 가지 상이한 세력의 움직임을 분석한다. 즉 단교를 주장하는 강경론과 화친을 통해 민생을 안정시키자는 온건론이 병존하다가, 거란과의 외교 재개 이후 정국의 주도권은 온건론자들의 손으로 넘어간다는 것이다. 이들은 內治를 중시하는 文治主義的 성향을 보이는데, 이러한 정국 운영은 國王權의 대두와 연관된 현상이라고 한다.
김성규 교수의 「入宋高麗國使의 朝貢儀禮와 그 주변」은 宋에 파견된 高麗國使·副使의 황제 알현 의례를 기록한 「高麗國使副見辭儀」라는 글에 치밀한 주석을 달면서 그 내용을 철저히 해부한다. 이것은 일면 단순한 문헌고증 작업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北宋 중기 11세기에 만들어진 『太常因革禮』에 실려 있는 이 글이 당시 송과 고려의 관계는 물론 동아시아의 전통적인 외교 의례를 자세히 보여주는 희귀한 자료임을 생각하면 이러한 연구의 의의는 결코 무시할 수 없다.
민덕기 교수의 「에도 막부의 동아시아 국제사회로의 진입노력-무로마치 막부와 비교하여」는 17세기 전반기에도 막부가 동아시아 국제사회에 대하여 어떤 의식을 가지고 있었으며, 스스로 이 사회와 어떤 관계를 맺고자 했는지를 그 이전 무로마치 막부 시기와 비교하며 설명한다. 여기에서 드러난 에도 막부의 조선의 권위에 대한 한층 높아진 평가는 한·일관계사의 전개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측면이다. 그리고 말미에 언급된 동아시아 각국들 사이의 표류민 송환체계의 차이는 당시 국제사회의 실상에 다가가는 새로운 인식 틀로서 주목된다.
전근대 동아시아에서 근대적인 ‘국제(international)’관계의 개념을 상정할 수 있는지는 의문의 여지가 있다. 그러나 위의 연구들처럼 복수의 정치집단 사이의 상호 관계를 다루고 있다면, 이를 넓은 의미의 국제관계사라는 범주에 넣어도 큰 무리가 없을 것이다. 물론 이렇게 국제관계의 개념을 확장할 때 이와 관련된 연구들은 매우 많지만, 여기에 실은 논문들은 다양한 문헌들의 면밀한 검토를 특징으로 한다. 우리가 이 글들을 한데 모은 까닭도 바로 여기에 있는데, 본 사업단의 한·중·일 역사분쟁의 연구는 이처럼 사료에 입각한 실증적 연구를 바탕으로 삼고자 하기 때문이다. 아울러 이 논문들의 다기로운 주제 역시 우리들의 연구 방향과 무관하지 않다. 국제관계를 단순히 정치사만으로 국한하지 않고, 이와 관련된 사상이나 의례 등으로 그 관심의 영역을 넓히고자 하는 것이다. 이 책의 내용은 아직 제한된 시기와 논제에 머물고 서문있으나, 이를 기반으로 하여 앞으로 더욱 폭넓고 깊이 있는 연구들이 생산되기를 기대한다.
이 책의 두 번째 부분은 전근대 동아시아의 대외무역과 관련된 내용이다. 여기에도 모두 네 편의 글이 실려 있는데, 그 내용을 간단히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박옥걸 교수의 「10∼13세기 宋商과 麗·宋 무역정책」은 전통적인 책봉조공체제가 당시의 급변하는 국제관계로 인하여 정상적으로 작동되지 못한 상황 속에서 오히려 양국 사이의 상인의 교역이 더욱 활발하였음에 주목하고 있다. 특히 고려에 온 宋商을 來航時期, 항로, 출신지역, 상단규모 등에 따라 구체적으로 밝혀 고려와 송과의 상인무역을 구체적으로 고찰하고 있다. 아울러 고려와 송의 무역정책을 분석하고 있는데 고려가 소극적 대외무역정책을 편 데 비해 송에서는 적극적인 보호·장려책을 시행하였음을 대비시키고 있다.
박한남 박사의 「12세기 고려와 金의 경제교류에 대하여」는 종래 고려와 金의 무역관계가 역사적 의미가 별로 없는 것으로 치부되는 연구경향에 대해 무역을 통한 경제적 이익 추구에 의미를 두고 분석하고 있다. 무역규모에 있어서는 麗宋무역에 미치지는 못하지만 금과 고려는 사신무역을 중심으로 한 조공무역이 적극적으로 행해지고 있었고, 상인들의 민간무역도 활발히 행해지고 있었다. 금으로부터 金銀이나 비단, 생사가 도입되어 고려로서는 경제적으로 유리한 무역이었다고 결론짓고 있다.
김동철 교수의 「17세기 일본과의 교역·교역품에 관한 연구-밀무역을 중심으로-」는 17세기 조선과 일본 사이에 전개된 밀무역이 공무역이나 사무역과 연관하여 전개되었다는 입장에서 밀무역의 전모를 고찰한 글이다. 인삼·미곡·유황·무기 등 밀무역 품목, 역관·군관·상인·아문 등 밀무역 행위자의 신분과 직업, 일본인에 대한 조선인의 채무인 倭債 문제, 各房散入 금지책·밀무역 규제 約條·商賈定額制 등의 각종 밀무역 통제책을 검토하여 밀무역의 실상을 자세히 살피고 있다. 종래 등한시되어 왔던 밀무역의 실상을 사료에 근거하여 규명하려는 노력이 돋보인다.
박기수 교수의 「阿片戰爭 이전 廣東의 대외무역과 廣東 사회경제의 변화」는 종래 淸代 대외무역이 쇄국정책으로 인해 정체되었다는 견해를 비판하면서 18세기 중엽에 비해 아편전쟁 직전에는 무역액이 무려 4배 이상 증가하였고 그 액수도 7,000만 냥에 달하였을 것이라 추정하고 있다. 이러한 대외무역의 증가는 대외무역과 관련된 광동의 수공업을 발전시키고 광동의 상업을 번영시켰다고 논증하면서 상업의 번영에 따른 각종 유형의 상인이 출현하였음을 밝히고 있다. 대외무역이 초래한 사회경제의 변화를 심층적으로 그리려고 노력하였다.